Fritz X

1 개요

Fritz X
사용국가나치 독일
사용기간1943-1944
생산량약 1000기
제원
무게1362kg
길이3.32m
너비1.3m
사정거리5km
최고속도1,235 km/h
탄두무게320kg

관련 다큐멘터리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개발한 유도폭탄으로 최초로 실전투입된 유도폭탄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나치 독일은 기존에 보유했던 항공투하 대함폭탄인 SD 1400같은 단순한 자유낙하 폭탄으로는 움직이는 배를 맞추는게 매우 어렵다는걸 깨달았고, 유도할 수 있는 폭탄을 원했다.

이미 1938년에 전파로 조종되는 항공 폭탄을 만든 경력이 있는 맥스 크래머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조이스틱으로 조정하면 발신기를 통해 전파가 쏘아지고 금속제 동체가 안테나 역할을 해서 그에 따라 폭탄이 유도되는 방식으로 만들어 졌다.

당연히 현대의 미사일같이 제트엔진을 탑재해서 날라가는 형태는 아니고 JDAM같이 자유낙하 시 조작을 통해 목표지점에 활강하여 탄착시키는 형태이다. 움직이는 배를 조준하기 상당히 어려운 수평 폭격임에도 이같은 방법을 통해 마치 급강하폭격기와 같은 상당한 명중력과 동시에 수직으로 갑판에 탄착한다.

참고로 성능이 지나치게 좋아서(?) 배를 뚫고 들어가 바다 밑에서 터지기도 한 무기이다. 그래서 운 좋게 살아남은 함선들이 있다.

2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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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217을 베이스로 폭탄을 탑재할수 있도록 개조한 Do 217 K-2

주로 도르니에 Do 217에 탑재되어 쓰였는데, 소수의 하인켈 He 111에도 탑재된 기록이 있다. 하지만 모두 항공탑재 무기로 쓰였고 지상이나 함상에 쓰인 적은 없다.

첫실전은 1943년 7월 21일에 시실리에 발사된 기록인데, 묘하게도 독일군이나 연합군이나 확인된 전과나 피해가 없는 걸 보면 불발되었거나 엄한데서 폭발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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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해군의 전함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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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격 후 유폭하는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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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착 지점

같은 해 9월 3일, 이탈리아의 추축군 탈퇴와 항복 선언 뒤 당시 영국령이던 몰타로 향하는 이탈리아 해군이 연합군에 합류하는 걸 막기 위해 6대의 Do 217이 Fritz X를 각기 한 발씩 탑재하고 출격했다. 함대의 기함이던 리토리오급 전함 로마에 3발을 투하, 2발은 명중했고 1발은 가까스로 빗나갔다. 하지만 2발의 320kg 폭약은 로마의 탄약고를 유폭시키기 충분했고 1,255명의 수병과 카를로 벨가미니 제독은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자매함이자 이름을 바꾼 네임쉽 이탈리아도 역시 두 발을 맞았지만 가까스로 몰타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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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9월 11일 살레르노 침공작전에 참가했던 미국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사반나도 Fritz X에 피격되었고 3번 포탑과 그 밑에 있던 탄약고가 유폭하면서 급파된 데미지 콘트롤팀이 전원 사망하고 배 자체에 심각한 손상을 주었다. 긴급 수리 완료 후 본토로 돌아간 사반나는 수리와 개장을 완료했지만, 전선에 복귀하지 않고 훈련함으로 활동하다 종전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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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같은 9월 13일 크라운 콜로니급 경순양함 우간다의 함수 바로 밑에 Fritz X가 폭발했고 이 충격으로 보일러가 폭발, 대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6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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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에는 살레르노 침공 작전을 지원하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워스파이트의 4번 보일러실에 직격했고 보일러가 폭발하면서, 보일러실 아래 2층을 걸래짝으로 만들어 엄청난 침수를 유발했다. 이 피해로 9개월간 영국에서 수리 받아야 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완전히 수리가 안 된 상태[1]로 출격해야만 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수병의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상선이나 수송선 슬로프급 같은 기타 함선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준 기록이 여럿 있다.

3 몰락

당연히 이런 병기를 얻어맞은 연합군은 독일이 뭔가 희한한 폭탄을 쓴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고,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안지오에서 노획한 또다른 유도 대함미사일인 Hs 293과 추락한 He 111의 잔해에서 발신기를 복원하면서 대략적인 유도 방식을 알아낸 연합군은 아주 간단하게 방해전파를 쏘아서 방어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사실 이 때쯤에는 동부전선의 지옥에서 이미 정신차린 소련군과 정신없이 난타전을 벌이면서 비행기와 숙련된 파일럿이 극심하게 소모되던 때였고, 제공권을 점차 상실하고 있었기에 낙하 궤적상 근처까지 접근해야만 폭탄을 투하 할 수 있는 폭격기가 적함에 접근하기도 전에 격추되는 터라 그렇게 위협이 되던 때는 아니였다.

하지만 만약 나치 독일이 우세이던 상황에 이 무기가 만들어져 개량형이 대량으로 나왔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이 폭탄 수십개가 떨어진다는 시나리오가 나왔는데, 만악 그랬다면 연합국 해군은 끔살... 시기를 잘못탄 무기들 중 하나다.

4 의의

제대로 쓰인 기간이 반 년도 안 됨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전함 1척 격침, 2척 대파에 경순양함 2척 대파... 이 정도면 독일 수상함대가 올린 전과 전체에 맞먹는 거나 다름없다.[2] 비록 오늘날 유도병기의 직접 조상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최초로 실전투입된 유도병기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3]
  1. 속도도 느려지고 3번 주포탑이 회전이 안되어 사용 불가. 노르망디에서의 해안포격 사진을 보면 주포탑 3개만이 측면으로 향하고 있다.
  2. 이건 오히려 독일 수상함대가 별 활약을 못한거에 가깝기는 하다.
  3. 오늘날 유도병기의 조상은 미국의 VB-6 펠릭스라고 보는쪽이 더 정확하다. 프리츠 X와 달리 펠릭스는 완전 자동유도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