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homore Jinx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5집 소포모어 징크스.

2004년 12월 발매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5집 앨범.

이 앨범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목처럼 1집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달빛요정은 1.5집 이후로도 지속적인 앨범 발매에 성공했으며, 통신판매 전략이 지속되어 큰 실패를 거두지는 않았다. 다만 2010년 가수 본인이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달빛요정의 앨범활동은 3.5집으로 그치게 된다. (2.5집 없음, 앨범 5개, 싱글 1개, 사후 앨범 1개)

1 본인의 앨범 설명

가내수공업 한정판으로 만든 첫 앨범이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 매진되고 기획사와 정식계약을 맺어 정식유통으로 재발매까지 했으니 뭔가 홍보활동을 해야 할 거 같은데 "IMF 실직 설움, 음악으로 달래"같은 불쌍한 제목이나 붙는 인터뷰를 몇 개 하고 나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인디뮤지션이 될 생각은 없었으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디뮤지션이 되었으니 홍대 인디신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밴드를 조직해서 공연을 하면 좀 웃길 것 같아서 가벼운 싱글앨범을 하나 내고 거기에 맞춰서 전국투어(!)를 하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한 음반이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밴드 멤버를 수소문했다. 원맨밴드의 세션인데다 금전적인 보상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사람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기타나 베이스는 인터넷 음악동호회에서, 세컨드 기타와 코러스, 키보드는 동아리 후배들을 꼬셔서, 드럼은 2009년 현재 달빛요정 밴드에서 베이스를 도와주고 있는 혁조의 소개로, 총 6인조의 거대밴드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 동아리에서 기타 중심으로 편곡하고 놀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아무래도 밴드 편곡은 어려웠다. 음악도 음악이려니와 밴드 여섯 명이 다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지라 연주자들에게 내 편곡을 맞춰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 와서 밴드에 대해 내린 결론은 정상급 세션맨이 아니면 그 음악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네 명이 일주일에 두 번식 3년은 연습해야 손발이 맞는다는 것. 이 멤버로 전국투어도 하면서 1년 정도 공연을 했다. 요새는 큰 공연이 아니면 4인조 기본편성으로 공연을 한다. 연습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리허설하기도 힘들다. 어쩔 수 없다. 다 자기 경제 수준에 맞춰서 공연을 하는 거다. 그래도 매일 아쉬워서 6인조 기본 밴드에 퍼커션, 코러스 등등이 합류된 10인조 밴드를 꿈꾼다. 2012년 달빛요정 데뷔 10주년 때면 해볼 수 있을까.
이 음반에 <소포모어 징크스Sophpmore Jinx>라는 음반 이름을 붙인 건 내가 언제나 주제파악을 하고 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현실인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음악을 때려치우려고 마지막으로 만든 음반보다 더 좋은 음반은 나올 수 없을 거다. 1집이 그랬고 3집이 그랬다. 배수의 진을 치고 작업을 해야 그나마 남들도 들을 만한 음반이 나오는 것 같다. 다 음악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야 하나. 그렇나 삶은 치열해야지. 아무 데서나 자고 일어나면 주위에 과일이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의 섬이 아닌걸. 그물만 던지면 물고기를 한 가득 건져올리는 걱정 없이 풍요로운 나라가 아닌걸. 하지만 이 음반은 설렁설렁 만들었는걸. 그래, 이 음반은 별로일거야. 하는 심정이 반영된 앨범 제목.
작업실이 있던 마지막 시기의 음반이다. 이 음반 이후 집에서 작업하고 있다. 크게 음악 듣고, 크게 노래 부르고, 큰 소리로 그르렁거리는 기타앰프를 울릴 수 있는 공간이 갖고 싶다. 그때까지 정규앨범은 내지 않을 생각이다. 가을에 내는 앨범은 3.5집. 내년에도 작업실이 생기지 않으면 그다음 앨범은 3.6집이 될 것이다. 3.7집, 3.8집, 3.9집을 낼 때까지도 작업실이 생기지 않으면 3.91집을 낼 것이다. 정규음반은 내 자존심과 같은 것이기에, 함부로 싸지르는 건 이제 그만.

- 달빛요정의 에세이집 '행운아'에 수록된 달빛요정의 음반 설명.

2 곡목

  1. 맞춤법이 틀린 것이 정식 제목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
  2. 원곡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