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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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翊鉉
1934년 02월 17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종교불교다. 호는 정암(亭岩)이다. 임태희대통령실장이 그의 둘째사위이다.

1934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능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하였다.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64년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정호용 등과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승승장구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1973년 제26사단 제76연대장(대령)으로 있을 때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1974년 8월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 삼성정밀주식회사 전무이사를 지냈다.

1980년 잠깐 제2무임소장관 보좌관을 역임하였다가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거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권당 임채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경질된 권정달의 후임으로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83년 5월 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전두환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김영삼이 입원한 병실에 갔다. 1984년 투서 사건으로 사임한 정래혁의 뒤를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김동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공천 탈락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되자 윤필용 사건 때 육군보안사령관이던 강창성과 재회하여 한 때 험악한 분위기가 오갔다.그리고 선배인 강창성한테 내리 얻어터졌다. 제15대 국회의원 임기 중 뇌일혈로 쓰러져 이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하고 그대로 정계를 떠났다.

이후 2013년까지 한나라당, 새누리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1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거창군)민주정의당-당선[1]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거창군)민주정의당-당선[2]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민주자유당-당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신한국당-당선
  1. 민권당 임채홍 후보와 동반 당선
  2. 신한민주당 김동영 후보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