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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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仁線 / Suin Line

수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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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번호2015
노선명경부선 수인선 (京釜線 水仁線)
종류지선철도
영업거리19.5㎞
궤간1435㎜
역수14
기점금정역[1]
종점인천역
전기교류 25000V 60㎐ 가공전차선
신호ATS
개업일1937년 8월 5일
운영노선수도권 전철 수인선

1 수도권 전철 수인선


수도권 전철 수인선 문서 참조.

2 협궤철도 수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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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선수도권 전철 1호선의 지선으로 운행되던 시절 안산역에 정차한 수인선 협궤열차와 1호선 열차의 모습. 크기 차이에 주목하자.

▲ 1991년 안산역-송도역 구간 답사 영상[2]

1937년 8월 6일에 개통된 수원시에서 안산시, 시흥시를 지나 인천광역시까지 오가는 철도노선. 대한민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궤간 762mm의 협궤철도였다.

최초에는 일본인 소유의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사철로 부설되었으며, 부설 목적은 물론 일제의 식량 수탈이다. 주로 경기도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진 소금과 더불어 같은 협궤노선이었던 수려선과 연계하여[3] 경기동부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까지도 인천항으로 실어날라 일본으로 반출하는 역할을 했다.[4]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철도청 산하의 국철로 이관되어 운영되고 화물수송보다는 여객수송의 비중이 커졌으며,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정책이 본격화 되고 자동차 도로가 뚫리는 등 교통수단이 다양화 되면서 효용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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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볼 수 있듯, 매우 선형이 불량했다.

1973년 7월 14일 부로 인천광역시의 시발역이었던 남인천역이 폐쇄되고 송도역으로 구간이 단축되었고, 1988년 10월 25일에는 안산선이 개통되어 한대앞-안산 구간을 수인선과 병행하게 되면서, 이후 원곡역 위치가 현 안산역으로 재조정되고 일리역이 한대앞역으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있었으며, 수인선안산선이 병행하는 구간의 기존 수인선 정차역들은 안산선의 전철노선 취급을 위해 역사가 새롭게 지어지고, 수인선은 안산선 옆에 작게 지어진 승강장에서 여객취급을 했다.

1990년대 초반 남동지구의 택지 개발사업이 확정되자 1992년 7월 20일 부로 송도역-소래역 구간의 열차운행을 중단시키고 기존 선로는 철거했지만, 해당 지역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고자 철도청은 운행중단 직후 부터 1993년 12월 13일까지 한시적으로 이 구간에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도 하였다.[5] 1994년 9월 1일 부로 소래역-한대앞역 구간이 폐쇄되며 사실상 반쪽짜리 노선이 된 수인선 협궤철도는 폐쇄가 기정사실화 되었고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중지 후 폐선되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안산시 성포동, 중앙동 쪽에 흔적이 남아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없다. 성포동 홈플러스 근처의 고가도로라기엔 너무 낮은 도로 밑을 지나가면 풀밭이 이상할 정도로 폭이 넓은데, 그게 바로 수인선 협궤의 흔적이다. 또한 한대앞역에 가면 4호선이 지나가는 가운데 말고 차도쪽으로도 승강장이 나있는데, 이것 또한 과거 수인선의 흔적. 여기는 2000년대에 이미 상당히 소실되었다. 그때도 철도인지 어디서 주워온 쇠파이프인지 싶은 선로만 남아있고, 코레일 소속 포터들이나 있었다.

2.1 특징

40km/h 전후의 속도[6]로 인천-수원간 편도 구간을 약 1시간 30분~2시간 정도에 주파하였다.[7] 초창기에는 증기기관차나 일제시대에 도입된 가솔린 동차 편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65년 디젤동차가 도입되면서 기존 가솔린 동차를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1972년 수려선의 폐선으로 디젤동차의 여유분이 수인선으로 모두 배속되면서 운행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증기기관차가 퇴역한 1978년 이후에는 디젤동차로만 편성되고 기존 증기기관차 시절부터 사용되었던 무동력 객차는 탑승수요에 따라 디젤동차에 추가로 함께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열차편의 경우 50석 정원의 좌석을 설치한 객차 및 디젤동차를 여러대 편성했는데, 과거 탑승수요가 많을때는 디젤동차 2량에 무동력 객차 2량을 추가해 총 4량으로 정규 편성하여 다닐때도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 부터는 탑승수요 급감으로 디젤동차 2량으로 정규편성하여 다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주말 한정으로 관광수요가 많을때는 객차 1량을 추가하기도 했다. 운행편수 또한 1970년대 까지만 해도 하루 왕복 7차례까지 운행되었으나, 1980년대부터는 왕복 3차례로 줄어들었다.

기본적으로 속도나 서비스를 중시하는 노선이 전혀 아니다 보니 당연히 완행열차 수준으로 운영되었고, 1984년 부터는 비둘기호 등급으로 배정되어 폐선되기 전인 1995년까지 운용되었다. 노선운임도 이런 등급에 맞추어 저렴한 수준이었는데, 1990년 기준 기본운임 160원에 수원-송도간 운임이 370원 정도로, 당시 서울 지하철 기본운임이 250원 정도였으니 얼마나 저렴했는지 느낄 수 있다. 매표의 경우 안산역, 송도역 등의 주요역 5개역에는 철도청 소속 역무원들이 상주하여 직접 매표를 하였으나, 예외적으로 소래역, 고잔역 등의 일부 역들의 경우는 철도청으로 부터 매표액의 10%를 마진으로 받는 조건으로 그 지역에 사는 개인이 매표를 대행하기도 했다. 이 외의 나머지 역들은 역무원도 배치되지 않는 간이역 수준이었기에, 해당 승객들은 일단 열차에 탑승하고 열차 내에서 차장이 직접 매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일반 표준궤 노선과 달리 노반과 철로의 관리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고, 무엇보다 상술했듯 협궤철도라 차체의 폭이 좁아서 승차감은 영 좋지 않았다. 위의 동영상에서 보이듯 열차 운행시에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마냥 좌우로 엄청 심하게 흔들려서 서서 가는 경우엔 고역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좁은 차체 탓에 좌석도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간격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는 형태였다.[8]

소래철교를 비롯한 일부 구간은 해안가가 바로 옆에 있어 갯벌염전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전망 하난 좋았다고 소문난 노선이었고, 거기에 더해 수도권과 가까우면서도 낙후된 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여러 사진작가들의 주요 기행 테마가 되어왔다.

동차의 화장실비산식으로 되어 있다.화장실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배설물이 그냥 선로로 바로 떨어지는 방식을 바로 비산식이라 한다. 흔히 철도박물관통일호나, 탕엥에서 제작한 무궁화호 같은 옛 열차를 보면, 정차중 사용을 금함 이라는 글씨가 써져 있을 건데, 플랫폼 앞 선로에 배설물이 쌓이게 되어,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에게 불편을 주게 되기 때문에 금지했기 때문.

3 몰락

과거에는 이용객이 적지 않던 노선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도로교통의 발달로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기존 인천 시점이었던 남인천역을 비롯해 인천 도심 통과 구간들이 연달아 폐선되면서 인천과 수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일부 잃게 되어 효용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이후 1980년대 부터는 간척사업 등으로 경기도내 해안들이 매립되면서 서해안 포구들도 하나 둘씩 사라져 주 이용객이던 어패류를 운반하던 어민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채소를 도시에 내다파는 부녀자와 통학생 그리고 주말 나들이 관광객들만이 이용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때 부터는 이용객 수치 또한 줄어들며 하루 평균 3백여명 수준에 그치는데다 그마저도 무임승차 대상인 65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매표 수입은 하루에 겨우 6~7만원 정도로 하루 열차 연료비인 15만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어서 연간 수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미 철도청은 만성 적자운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라 1980년대부터 여러차례 수인선의 폐선을 고려해 왔으나, 현지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무산되다가 결국 1990년대에 철도청공사 전환의 계획이 확정되면서 부터 수인선 협궤철도의 폐선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안이 시행된다. 수인선의 완전폐선은 통과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심할 수 밖에 없었기에 리스크가 너무 컸던데다 수인선 노선 자체만 보면 잠재수요가 어느정도 있다는 결론이 나면서, 완전 폐선이 아닌 기존 협궤철도 폐선 후 표준궤 복선으로 재부설하여 수도권 전철로 운영하는 방안으로 가닥이 잡혔다.
협궤 당시의 수인선 상태가 어땠는지 체험해 보려면, 762mm궤간으로 달리는 일본 미에현의 산기철도 호쿠세이선이나 욧카이치 아스나로 철도를 타보자. 다만 내륙 쪽 노선이라 바다는 못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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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행 막바지 당시의 수원의 한 건널목. 수원역 남쪽 세류동(덕영대로 세평지하차도 앞.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세평지하차도가 보인다)에 있었다(위치).

1994년 9월 부로 단축된 후에도 끝까지 남아있던 한대앞역-수원역 구간도 결국 1995년 12월 31일에 운행이 중지되었다. 이렇게 해서 협궤철도 수인선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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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행 마지막 날 동차에 붙은 현수막

'복선화 후 재개통'이기 때문에 영업거리표 상으로는 '영업중지선'이지 '폐선'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협궤철도만 놓고 보자면 폐선이 맞다.

그리고 안산~오이도 구간마저 표준궤화 되어 4호선에게 빼앗겼다. 4호선을 죽입시다. 4호선은 나의 원수

'58년간 달리던 협궤열차, 수원역에서 마지막 기적 울려' MBC뉴스

4 복선전철화 및 재개통

복선전철화를 이유로 수인선은 무기한 영업중지에 들어갔지만, 예산 부족과 IMF로 복선전철화 공사는 티스푼 공사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2012년 6월에 오이도역~송도역간 복선전철화 공사를 완료하여 수인선이란 이름으로 다시 운행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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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전동차.(사진은 신 소래철교. 오른쪽에 구 소래철교도 보인다. 출처는 경인일보)

나머지 구간인 송도역~인천역 구간은 2016년 2월 27일에 개통했다. 한대앞역~수원역 구간은 2018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사실 2018년에 개통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기는 하다. 전 구간 공사가 완료되면 안산선 오이도역~한대앞역 구간은 수도권 전철 4호선과 공유하여 인천역~수원역 구간을 운행할 예정. 원수에서 동지로 바뀐 4호선 또한 이때부터 수원역에서 분당선과도 직결 운행할 예정이다.

5 연혁

  • 1937년 8월 5일 : 개통
  • 1949년 7월 20일 : 야목역(무배치간이역) 영업재개
  • 1955년 7월 1일 : 역명개정(수인역→남인천역)
  • 1958년 11월 8일 : 소래역 역사착공
  • 1958년 12월 30일 : 소래역 역사준공, 어천역 역사복구
  • 1964년 7월 27일 : 배치간이역 승격(야목역), 소급화물취급 지정(야목역)
  • 1965년 1월 5일 : 용현역(보통역) 영업개시
  • 1965년 5월 1일 : 달월역(무배치간이역) 영업개시
  • 1966년 9월 1일 : 사리역(무배치간이역) 영업개시
  • 1967년 6월 5일 : 논현역(임시승강장) 영업재개
  • 1967년 9월 1일 : 을종승차권대매소 지정(달월역·고잔역·사리역)
  • 1969년 4월 10일 : 배치간이역 승격(고잔역)
  • 1969년 8월 1일 : 무배치간이역 격하(고색역)
  • 1972년 7월 20일 : 무배치간이역 격하(야목역)
  • 1973년 1월 1일 : 무배치간이역 격하(고잔역)
  • 1973년 7월 14일 : 남인천역↔송도역간 운행중지, 폐역(남인천역·용현역)
  • 1974년 3월 11일 : 소화물취급 중지(고잔역)
  • 1974년 6월 1일 : 폐역(논현역)
  • 1974년 8월 15일 : 폐역(고색역)
  • 1975년 10월 2일 : 어천역 역사신축준공
  • 1976년 7월 10일 : 화물취급 중지(남동역·일리역)
  • 1977년 5월 16일 : 수소화물취급 중지(남동역·소래역·야목역·어천역)
  • 1977년 9월 1일 : 화물취급 중지(송도역·소래역·군자역·원곡역·어천역), 수소화물취급 중지(송도역·군자역·원곡역·일리역)
  • 1977년 10월 24일 : 배치간이역 격하(남동역·군자역·일리역)
  • 1981년 1월 1일 : 무배치간이역 격하(군자역)
  • 1982년 9월 1일 : 배치간이역 격하(소래역·어천역), 무배치간이역 격하(남동역·일리역)
  • 1983년 8월 1일 : 무배치간이역 격하(어천역)
  • 1983년 10월 1일 : 을종승차권대매소 지정(소래역)
  • 1985년 7월 1일 : 배치간이역 격하(원곡역)
  • 1985년 10월 15일 : 역사철거(남동역)
  • 1988년 10월 25일 : 중앙역(보통역) 영업개시, 역명변경(원곡역→안산역, 일리역→한대앞역)
  • 1992년 3월 2일 : 운전간이역 변경(고잔역)
  • 1992년 7월 20일 : 송도역↔소래역간 운행중지, 보통역 승격(소래역), 을종대매소 격하(송도역)
  • 1994년 9월 1일 : 소래역↔한대앞역간 운행중지, 송도역·남동역을 포함한 해당구간 폐역
  • 1996년 1월 1일 : 수인선 운행중지
  • 2012년 6월 30일 : 오이도역↔송도역간 복선전철화 완료 및 운행 재개
  • 2014년 12월 27일 : 달월역 개업
  • 2016년 2월 27일 : 송도역↔인천역간 복선전철화 완료 및 운행 재개

6 트리비아

협궤선로 시절 운행하던 차량또한 선로만큼이나 아기자기한 크기를 자랑하는지라 그에 따른 이야기도 나돌곤 한다. 수인선 협궤열차 운행중에 철길건널목을 통과하는 대형차량이나 작업중인 중장비와 충돌을 한 사고들이 몇 건 있는데, 보통 표준궤 열차의 경우라면 가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충돌할 경우 큰 요동 없이 차량을 밀고 나가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인선 협궤열차는 그 크기나 무게가 너무나 아기자기하기에 차량과 충돌하고서 차량은 별로 꿈쩍도 안하고 오히려 열차가 탈선 및 전복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 # 2번째 링크의 시내버스는 경원여객 소속 BF101인데, 그 차량 역시 휘어져 있다.

2005년까지만 해도 거의 전 선로가 온전히 남아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예전에 선로가 있던 곳이 새로 개발이 되고 표준궤 교체를 위해 기존의 철로를 뜯어낸 상태다. 다만 송도 일대 및 고잔역 일대에서는 과거 열차가 다녔던 옛 수인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9] 하지만 2015년 들어와서는 안산시 일대에서 그나마 상태가 온전하던 수인선 중앙역 선로는 뜯겨나가 버렸다. 안습. 다만 이것이 성포동 홈플러스 근처의 고가도로 밑과 한대앞역까지 포함한 것인지는 추가바람. 또한 시종착역인 수원역에서는 수인선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지는 꽤 되었고,[10] 서수원체육공원 뒤쪽으로 개천을 넘어 오현초등학교로 가는 오목천철교 역시 수인선 복선전철화 공사를 하며 철거되었다. 2015년 4월에 촬영된 사진2016년 7월자 로드뷰를 비교해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박차를 가하며 차례차례 개통되어 완공을 바라보고 있는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이제는 대부분의 구간이 유실되었다시피할 지경이지만, 1995년 구 수인선 폐선 이후 2010년대 초의 사업 추진 직전까지 가장 유실이 심한 구간은 용현역에서 송도역까지의 구간과 수원역 인근의 구간으로 이 구간은 아예 철도 노반의 대부분이 도로로 바뀌어 있거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인천역에서 용현역까지의 구간은 표준궤화 되어 동양화학의 인입선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주변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복선 노반을 설치할 공간은 없기 때문에 이 구간은 지하 구간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송도역에서 소래역까지의 구간은 아예 도시 개발을 하면서 노선을 직선화하고 기존 노반을 완전히 갈아엎어 흔적이 거의 없다. 공원화된 소래역 부지와 구 소래철교, 남동역 인근의 승기천철교 정도가 구 수인선의 흔적이다.

대한민국 최후의 협궤철도라 그런지 1995년 12월 31일에는 수인선 종운(終運) 소식이 9시 뉴스의 첫번째를 장식하기도 했다. 종운기념 행사도 꽤 성황리에 치러진 듯. #

만약 수인선이 표준궤로 개궤되지 않고 협궤로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옆나라 일본우츠베선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해당 항목 참조. 물론 선형이 불량해서 고쳐야했던데다가 수송량도 적어서 코레일이 굳이 협궤를 유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천 공영급행의 노선인 급행간선 910번(제물포역-논현지구)이 수인선 대부분의 인천 구간을 따라갔었다. 수인선 1차 개통 이후 감차가 진행되더니 결국 폐선되었다.

김국환이 부른 '수인선 협궤열차'라는 노래가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이 철도 노선이 나온다.

현재 태화상운, 대원고속를 위협하고 있으며, 무기는 바로 운임이다. 현재 일부구간 개통으로도 이 정도인데, 전구간이 완전히 개통되면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리라 판단된다.[11]

7 연령별 인지도

역사적으로 1937년에 개통하였던 오래된 노선이지만 1995년 말에 무기한 영업중지되었던 경력 때문에 연령별로도 인지도에서 차이가 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인선이 영업중지 되었던 시기인 1995년 이후에 태어난 미성년자 95%가 1937년 ~ 1995년에 존재했던 협궤열차 시절의 수인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답이 많고 그 이전 세대들 사이에서는 과거 소래포 놀러갔을 때나 어물이나 소금 사러갔을 때, 인천에서 수원으로 통근갔을 때 타 봤던 추억이 있다, 소금 짠내 가득한 열차 안에서의 기억 진짜 잊지 못하고 있다고 답할 정도로 과거 옛 수인선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1985~1989년) ~ 1990년대 초반(1990년~1994년) 태생 세대 및 그 이후는 당연히 수인선 협궤열차에 대한 기억이 없다. 반면 1970년대~1980년대 초반(1980~84년) 태생 세대의 경우 어렸을때 타봤다는 정도고 그 이전 세대는 기억이 뚜렷하다. 당연히 현 20-30대가 볼때 소위 말하는 옛날사람들이 기억을 갖고 있다. 당장 열차가 폐선되던 1995년 당시 영유아 내지 초등학생이던 세대가 기억을 갖고 있을 턱이 없다. 당장 1995년 폐선 당시 초등학생이던 1986~88년생들만 해도 이 사실조차 몰랐던 경우가 거의 전부일 정도이다. 굳이 안다면 짤막하게 사회과 부도에서 언급하던 정도. 다만 소수의 이들이 한대앞역과 중앙동의 흔적 등으로 무엇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철도가 있었다는건 알기도 한다. 2000년대 후반이 되자 대부분 철거되고 풀이 자라나서 이제는 알 수 없지만.

8 인천발 KTX

수인고속철도
수인고속선
KTX 수인선
그동안 인구수가 300만명에 근접한 인천광역시내에서 KTX가 운행하는 구간이 전무했다. 그나마 가까운게 광명역이었는데 연계교통이 안습하기 그지 없는데다 이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안산선2017년이 되어야 겨우 착공을 할지 안할지도 불확실한 노선이다. 때문에 인천에서도 고속철도가 이용이 가능한 노선을 확충하는 문제는 계속 제기되어왔다. 현재는 공항철도에 KTX가 운행하기는 하지만, 서울역을 경유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어 인천광역시에서 고속철도의 실효성에는 아직 물음표라 할 수 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은 수인선을 이용한 인천발 KTX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부고속선에서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에 연결선을 지어서 KTX를 운행할 예정이다. 현재 국토교통부에서 타당성 용역을 발주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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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송도역에 KTX가 정차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안산선 구간에서도 중간 정차역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국토부 측 중간 타당성 결과 B/C 값이 1.23이 나온 상태로 타당성이 있다고 나온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 타당성 조사를 마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최종 확정은 아니다.

이 계획에 대한 내용은 어천삼각선 항목 참고. 아기자기한 협궤열차가 빌빌대며 다니다가 운행 중지된 노선이 20년 가까이 지나 겨우 부활했으면서 이제는 수도권 전철은 물론이고 KTX까지 들어오려하니 정말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기존의 경부고속철도가 대도시인 인천과 수원을 빗겨간 까닭도 있고, 마침 수인선의 경로가 인천과 수원을 이어주다보니 두 권역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까닭도 크다.
  1. 실질적 기점은 오이도역. 경부선 지선이지만 아직 수원 방향 노선이 완공되지 않아 임시로 경부선과 직접 접속되는 금정역을 선택한 듯. 이처럼 지선이 본선 혹은 본선의 지선에 접속하지 않는 노선은 수인선과 동해북부선밖에 없다.
  2. 일본 모 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한국 외에도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철도노선을 답사하는 시리즈 물로 제작되었다. 1991년 당시 교통부 및 철도청으로 부터 정식 협조를 받아 제작된지라 당시 새마을호에서 절찬리에 운영되던 식당차도 나오며, 식당차에서 제공되는 메뉴들로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도시락 메뉴들의 준비과정도 하나하나 다 나올 정도로 나름 체계적이고 퀄리티가 높은편. 다만, 스위치백 등으로 유명한 강원도 지역의 영동선태백선 구간 답사를 못한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3. 수원역를 거치지 않고 수려선과 수인선을 직결하는 삼각선도 존재했다.
  4. 이런 역사 때문에 남인천역 근처에는 지금도 "수인시장"이란 곡물&소금 도매 재래시장이 존재하는데, 사실 남인천역의 원래 역명이 수인역이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현 42번 국도수인로와 달리 수원-안산 간에서 남쪽으로 우회한다.
  5. 사실 이는 택지 개발사업과 더불어 이 구간 선형을 직선화하는 계획으로 운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이라 알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셔틀버스 운영기간도 한시적임을 사전에 고지했기에, 당시 지역 주민들은 직선화 공사가 끝나고 재개통할 것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었던듯 하다.
  6. 디젤동차 스펙으로는 최고속도가 105km/h였지만, 협궤선로 특성상 노반 및 철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정차역 문제로 이 속도까지 내긴 어려웠다. 참고로 40km/h라면 철티비 열심히 밟아도 낼 수 있고 로드바이크를 타면 금방 나오는 속도다.(...)
  7. 과거 남인천역까지 전구간 운행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8. 현대의 경전철보다도 좁다! 물론 경전철의 궤간 규격이 표준궤이므로 열차 규격도 그에 맞춰서 협궤보다 넓은 것이 당연하긴 하다.
  9. # 2015년 4월 말에 찍은 사진
  10. 급수탑과 더불어 구 수인선 수원역사로 알려진 건물, 그리고 수원역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수인선 세류공원 방향으로 선로가 나오는 수인선 전용 출구가 잔존하였으나 철거와 환경정비사업 등으로 급수탑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덕영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해당 지점의 2014년 6월자 로드뷰2016년 6월자 로드뷰를 비교해 보자.
  11. '송도~인천' 구간이 개통되면 인천~경기 안산 간 시외버스는 직행좌석버스로 형간전환이 불가피해질테고(그러나 운행횟수를 점점 줄이면서 운행하고 있었다가 최종적으로 폐선되었다.), 전 구간 개통이라면 인천~경기 수원 간 시외버스마저 직행좌석버스로 형간전환해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