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우리누나에서 넘어옴)

[1]식빵누나로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V-리그 10주년 올스타
신진식 / 최광희
DL
문성민 / 김연경
OL
김세진 / 황연주
R
최태웅 / 김사니
S
이선규 / 정대영
C
신영석 / 양효진
C
여오현 / 김해란
Li
페네르바흐체 SK No.10
김연경(金軟景 / Yeon-koung Kim)
생년월일1988년 2월 26일
출신지경기도 안산 [2]
출신학교안산서초등학교
원곡중학교
수원전산여자고등학교[3]
포지션레프트윙
신체사이즈신장 192cm, 체중 73kg
점프 높이스파이크 높이 317cm
블로킹 높이 299cm
소속팀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05~2009)
JT 마블러스 (일본) (2009~2011)
페네르바흐체 SK (터키) (2011~)[4]
2005-06 KOVO V-리그 여자부 신인상
황연주
(천안 흥국생명)
김연경
(천안 흥국생명)
한수지
(인천 GS칼텍스)
2005-06, 2006-07, 2007-08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MVP
정대영
(마산 현대건설)
김연경
(천안 흥국생명)
베따니아 데 라 크루즈 데 빼나
(인천 GS칼텍스)
2010 KOVO컵 프로배구 MVP
Wang Li
(톈진 브리지스톤)
김연경
(천안 흥국생명)
김선영
(성남 하이패스)
2006-07 올스타전 스파이크서브 퀸
해당부문 신설김연경 78km
(천안 흥국생명)
카리나 94km
(천안 흥국생명)
김연경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세르비아 배구 대표팀 감독 조란 베르치치

"당신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두 번째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ㅡ 런던 올림픽 배구 조별예선 경기가 끝난 이후 외신 기자의 질문

김연경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내 배구 인생 20년에 저런 선수는 본 적이 없다.

"Kim Yeon-Koung is something special. I have never seen anything like that in my 20 years in volleyball."
ㅡ 지오바니 귀데티. 네덜란드 배구 대표팀 감독.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예선에서 맞붙은 후.기사

배구 여제

대한민국 배구계 [5] 사상 최고의 거포이자 캐사기 유닛. 아시안 가모바.[6]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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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여자 배구 최고의 공격수

실력, 책임감을 모두 갖춘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여자배구 선수

연경신

192cm의 큰 키를 가진 대한민국 대표 여자 배구선수. 인천 흥국생명과 JT 마블러스를 거쳐 페네르바흐체에서 뛰고 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선수였던 큰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이후 원곡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7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아 벤치 멤버를 전전했다. 출전할 때도 세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했다. 본인은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로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독하게 훈련을 하기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으며, 11시가 되어서야 운동을 끝내고 귀가하였고, 잘 때조차 공을 안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 [7] 이후 한일전산여고로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3년동안 기적적으로 키가 20cm나 자라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고, 초고교급 선수로 각광을 받게 된다. 처음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5년이었다.

또한 특유의 밝고 긍정적이며 승부욕 넘치는 성격은 어렸을때부터 여전하다고.[8] 그 승부욕 때문에 피자 6조각 겹쳐먹었다가 병원 실려간건 안비밀.. 더 궁금하다면 링크를 참고하자.

2.2 흥국생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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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시절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9](현대건설), 동기 김수지(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10]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흥국생명과 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11]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개소리[12]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2005-06시즌 신인왕 수상. 그것도 모자라 정규 리그 MVP,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모두 싹쓸이하는 괴력을 보였다.[13] 덤으로 서브상, 득점상, 공격상, 보너스로 트리플 크라운 1회 달성하였다! 이런 사례 [14]는 지금까지 배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사상 최초이자 유일하다.

흥국생명[15]에서 뛸 때는 공격 순위를 거의 혼자 정복하면서 리그를 평정, 2005-06, 2006-07, 2008-09시즌 V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한편 2014년 현재 시점으로 외국으로 진출한지 꽤 됐지만 현재도 김연경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국내 선수든 외국 선수든 통틀어 거의 없는 상황. 그래서 2013-14 시즌 올스타전을 앞두고 열린 V-리그 출범 10주년 기념 역대 베스트 7의 공격형 레프트 부문에 뽑혔다. 그것도 여자부 전체 1위로 말이다.[16]

2.3 일본 JT 마블러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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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 마블러스 시절 연경 히메 시절

이후 2009-10시즌에 일본 JT 마블러스로 임대 이적[17], 일본 여자배구계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연경이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2009-10 시즌 10연패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사실은 2008-09 시즌에도 흥국생명은 정규 시즌을 겨우 3위를 해 플레이오프부터 봄배구를 시작했지만 김연경과 카리나 오카시오의 크레이지 모드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 어쨌든 흥국생명의 리즈 시절을 이끌고,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캐사기 유닛 소리를 듣게되자 '국내 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라는 여론과 김연경 본인의 외국 리그 진출 의지가 합쳐져 결국 2009 오프시즌에 외국 리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사실 김연경은 완전 이적을 바랐겠지만, 흥국생명이 선수 임대 방식을 이용, 당시 V-리그 선수 이동 규정에 없던 방식으로 제대로 신분 정리도 안 한 채 이적을 진행했고, 이것이 3년 후에 이적 파동의 도화선이 된다.

어쨌든 이런 사정을 접어두고라도, 김연경은 일본 프리미어리그에서까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으니 일본 리그의 감독들까지 일본에서조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들었다. 일본 여자 배구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좋은 케이스. 2009-10 시즌 초에 신종 독감으로 고생하더니 2010-11 시즌 초에 역시 독감으로 몇 경기 결장한 바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결국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JT 마블러스의 시즌 우승을 또 한 번 이끌어 냈다.[18]


임대 이적이라는 신분 때문에 2009-10시즌 종료 후 비시즌인 9월 KOVO컵 때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기도 했고 2010-11 일본 V리그 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 시즌이 조기 종료되어 한국으로 일찍 귀국했다. 마침 그 시기가 국내 V-리그 포스트시즌과 맞물리는 바람에 흥국생명으로서는 '김연경 룰'[19]을 적용해 김연경을 포스트 시즌에 반짝 출장시키고 싶었으나 여론의 뭇매로 김연경은 한 달여 간의 휴식을 취하고 컵대회인 흑취기에 참가하기 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여담으로, 팬들이 김연경이 뛰었던 팀중 선호도가 꽤나 높은 팀이기도 하다. 다케시타 요시에라는 일본의 명세터와 손발을 맞출 수 있는 기회였고, 김연경 본인또한 JT 마블러스에서 뛰며 배구 외적으로 문화, 음식, 예절 등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언급했기 때문. 팬들 입장에서는 초록색, 흰색의 유니폼과 아주 잘 어울려 좋아하기도 했다.

2.4 터키 페네르바흐체 시절

JT 마블러스의 흑취기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운 뒤 JT 마블러스와의 임대계약이 종료된 결국 2011년 5월 터키 명문 페네르바흐체 SK에 입단하게 된다. 역시 JT 때와 같은 임대계약. 여자배구에 있어서 터키 아로마 리그는 유럽 최대의 빅리그 중 하나인지라 얼마나 적응에 성공할 지는 미지수였던지라 페네르바흐체와도 1+1 계약을 맺었다. 그래도 일본에서도 '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거포'라고 칭송했으니.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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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의 첫시즌인 11-12시즌

페네르바흐체에서의 첫 시즌인 2011-12시즌의 활약은 아래와 같이 요약 가능. #

터키 아로마리그에서 시즌 무패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플레이오프 최종 3위) ㅎㄷㄷ. 거기에 CEV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했다! MVP와 득점왕을 수상했다. 공격, 서브 분야도 1위이다.[20] 팀은 22연승. 홍진호 뭔가 일본에서 본 것 같은 기사가 다시 보인다. 그냥 기분 탓으로 하자

2012-13 시즌에는 김연경 본인이 이적 파동 때문에 힘든 시즌을 보내기도 했고, 소속팀 페네르바흐체 역시 주전 세터였던 나즈 아이데미르가 페네르바흐체의 라이벌 팀인 바키프방크로 이적하면서 팀은 2011-12 시즌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쉽게도 페네르바흐체는 시즌 3위에 CEV 컵[21]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사기캐 팀이 이 정도 성적을 거둔거라면(...)

2013-14 시즌에 김연경은 소속팀 페네르바흐체의 CEV 컵 우승의 선봉장으로 서며 또다시 MVP가 되는 위엄을 보여줬다. 오오. 갓연경. 게다가 엠스플에서 김연경 출전 경기를 중계해 줄 정도로 김연경의 위상을 다시 한번 올려주는 시즌이 되었다. 그런데 아로마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페네르바흐체는 바키프방크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경은 득점 1위, 공격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역시 갓연경. 한편, 챔피언 결정전 1차전 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김연경은 실종자·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태극기 문양을 넣은 검은색 팔꿈치 보호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고, 팀 동료들도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같이 달고 뛰었다. 김연경의 본가가 안산에 있고, 또한 초·중학교를 안산에서 나온 만큼 귀국 후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할 일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종료 후 아제르바이잔 리그, 중국 리그 등 타국 리그의 팀에서 연 20억을(!)[22]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 속에서도 거취 문제 당시 도와줬던 것을 잊지 않고 페네르바흐체와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관련 기사 1관련 기사 2

2014-15 시즌에서는 터키 프로 여자배구리그 우승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페네르바흐체는 김연경 이적 직전 2010-11시즌에서 터키 여자리그를 우승한 이후로 터키리그 우승을 거머쥔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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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12년~2013년 이적 파동

리그베다 위키 시절, 한때 해당 항목에 논란 틀이 달려 있었을 정도로 문제가 됐던 사건. 선수의 '자유 이적의 권리'와 구단의 '선수 운영의 권리'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2년이 넘게 벌어졌다. 사건 당사자간 원만하게 해결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사건이었다.

2.5.1 사건의 발단 : '김연경룰'의 적용 여부?

2012년 들어 유럽 금융위기로 유럽 배구계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주전급 선수들이 러시아 리그나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옮겨가는 가운데 김연경 역시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다. 일단 2012 FIVB 월드 그랑프리 전까지는 거취를 결정짓겠다고 밝혔고, 결국 여러 이적설 끝에 페네르바흐체와 2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2012-13 시즌에 페네르바흐체가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한다 아쉬움은 있지만, 김연경은 구단에서 팀내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잔류 결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에이전트를 둘러싼 흥국생명과의 마찰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2012-13 시즌을 앞두고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에 난항을 겪었다. 이후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두 측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아직 김연경이 김연경 룰에 의해 국내 V리그에서 FA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원소속구단' 임을 주장하였다.[23]
  • 김연경 측
흥국생명에서 4년을 뛴 뒤 해외로 3년 간 임대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임대된 기간도 흥국생명에 몸담고 있는 기간으로 치는 논지를 폈다.

그런데 김연경의 임대 계약이 체결된 시점에서 KOVO 규정상 국외의 구단에 임대 계약시 선수 신분에 대한 조항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양측 모두 할 말이 있다.[24]

2.5.2 전개

게다가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JT마블러스와 페네르바체에 임대했을 당시 기부금 명목으로 매년 선수 연봉 중 6천만 원을 갈취했다는 의혹이 있다.[25] 터키 아로마리그에 참가하는 배구팀인 '페네르바흐체' 에 김연경을 임대하면서 김연경이 받아야 할 연봉인 100만 유로 중 20만 유로를 흥국생명이 착복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선수의 신분을 두고 대립했던 문제가 구단의 금액 착복 문제까지 겹치자 결국 이 사건은 시궁창 싸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남은 것은 흥국생명이 표면상 '대승적인 차원' 에서 배려해주는 것 뿐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였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전에 결정짓겠다던 이적 문제가 올림픽을 지나 9월 초가 되도록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김연경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대한배구협회높으신 분의 말씀 한마디이면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사실 진짜 일해야 할 곳은 계약기간과 신분부터 확실히 해줘야 할 한국배구연맹(KOVO)고 대한배구협회는 이적동의서 쓰는 것이 할 일. 따라서 이 일이 대한배구협회로 가는 것부터가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그 높으신 분은 김연경 이적 파동 발생 때 대통령 해보고 싶으시다고 나대셔서...[26]

2012년 9월 7일 14시에 김연경의 이적 문제에 관련한 기자회견을 연다고 대한배구협회가 밝혔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김연경 선수를 위한 결론이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대한배구협회에서는 선수와 구단, 리그 어느 한쪽의 의견을 편향되게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제배구연맹(FIVB)의 유권해석으로 넘기게 됐는데 FIVB에서는 당사자인 김연경과 흥국생명과의 재협상을 명령했다. 이는 계약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된 선수도 소속팀이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단년계약으로 갱신하려는 행태와 함께 FA 신청 연한이 지났음에도 임대라는 이름으로 선수등록 권리를 가지려 하는 한국 배구계의 선수계약 방식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염두해둔 FIVB의 의중이었다. 다만 FIVB에서는 로컬 룰 존중이 우선이고 당사자 간의 숙고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우선적으로 제시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FIVB가 흥국생명의 편을 들어주고 말았다. 흥국생명-김연경 간의 합의서를 뒤늦게 알고 흥국생명의 손을 들어줬다는데 문제는 그 합의서는 FIVB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문서이다.[27] 이를 안 김연경 측은 선수 은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농담이 아니라 제대로 선수 생활하려면 이젠 해외로 귀화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28] 현재 네티즌 여론도 귀화를 바랐다. 그러나 김연경 자신은 귀화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이렇게 되자 김연경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가운데 2012년 국정감사 때 '김연경 사태' 가 이슈로 떠오르며[29] 정치권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19일 김연경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줄 것을 호소했으며(기사 1, 기사 2) 이 날 국회 문방위원회가 주재한 국정감사 정책질의에서 민주당 최재천 의원 등이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에게[30] 국제이적동의서 발급 및 FA 규정 개정을 촉구하였다. # 사태가 커지자 결국 2012년 10월 22일 대한배구협회는 김연경에게 1년 기한의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초 논란의 핵심이었던 FA 규정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연경 사태' 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으나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 사이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했다.

2.5.3 2013년의 경과 : 진전 없이 제자리 상태

선수 신분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김연경은 일단 대한배구협회에서 임시로 이적동의서를 발급받고 2012-13 시즌에도 페네르바흐체에서 뛰었다. 아주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가 정리가 되지 않아서 어려운 시즌이 될거라 우려도 많았지만, 김연경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팀의 에이스로서 제몫을 다했다. 그러나 여전히 매듭짓지 않은 문제는 2013년 오프시즌에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다.

2013년 7월 1일, 흥국생명은 결국 김연경 선수를 임의탈퇴 공시했고, 한국배구연맹(KOVO)는 이를 승인했다. 흥국생명 입장으로는 김연경 선수가 해외 진출하는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지원 뭐? 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결정을 무시했다며 뭐?? 임의탈퇴 공시를 했다고. 다만 김연경 선수가 규정을 준수하고 성의있는 사과를 한다면 선수계약이 아닌 노예계약 임의탈퇴를 해제하겠다고. 지금 이 상황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마침 흥국생명이 임의탈퇴 공시를 한 즈음,팀 내부의 고민이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류현진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허락해 준 한화 이글스와 비교되어 더욱 까였다. 흥국생명의 행보야말로 전형적인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못 가지게 하겠다 혹은 망가뜨려버리겠다' 라는 전근대적인 쓰레기 마인드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류현진 포스팅의 경우는 류현진의 소속팀이었던 한화 이글스도 상당한 포스팅비(이적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이 있었던 데 반해, 흥국생명의 입장에서는 김연경이라는 선수를 거의 뺏길 판이었다. 김연경이 엄연히 흥국생명 소속 선수인 건 맞고 페네르바체에 임대를 간 것이었기 때문에 흥국생명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이고 KOVO와 FIVB은 그 점을 중히 여긴 건지 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제는 그 때문에 세계급 에이스가 국내에 발목잡히고 만 것. 이에 팬들은 이런 흥국생명의 입장을 알려주면 알바 취급하면서 흥국생명 깠다. 하지만 애초에 규정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구단이 리그 의사와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해 계약을 했고 리그가 이를 방치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KOVO의 주체 중 하나가 바로 흥국생명임을 고려하면...

결국 7월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7월 25일까지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국가대표팀 은퇴도 불사하겠다' 는 초강수 배수진을 쳤다. # 사실상 선수로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셈이라 팬들은 말 그대로 복창이 뒤집어질 지경. 그리고 흥국생명은 가루가 나노분자로 분해되도록 까였다. 그런데 기레기들은 오히려 노골적으로 김연경 선수를 깠다. 그것도 모자라서 김연경 선수보고 귀화하라고 하는 팬들을 싸그리 디스하며 하등 쓸모없는 애국심만 들먹였다. 이런 와중에도 흥국생명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언플이나 하면서 자신들의 멘탈이 쓰레기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쯤 되면 정말로 답이 없다.

다만 국가대표 자리를 담보로 흥정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김연경을 비판하는 입장도 좀 있는 편. 그런데 사실 국가대표 은퇴란 카드를 꺼내들 필요도 없었다. 임의탈퇴 조항은 V-리그에서만 적용될 뿐이고 협회가 이적동의서만 써 주면 어디서든 뛸 수 있다. 국가대표 은퇴란 카드는 지나치게 극단적이었다는 입장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후 긴급 기자회견이 기자회견이 아닌 김연경 측의 일방적인 발표였고 에이전트가 기자들의 질문을 전면 차단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김연경은 7월 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입장을 자세히 밝혔다. ### 한편, 협회와의 대화를 하러 변호사와 에이전트와 대동했으나, 협회에서는 이 조력자 둘을 빼고 김연경과 직접 대화를 했으며, 협회 관계자가 김연경에게 폭언을 했다는 후문을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남기기도 했다.

2.5.4 결과

2013년 9월10일 FIVB에서 사실상 김연경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렸다. 2013-2014 시즌까지는 흥국생명 소속이고, 페네르바흐체에선 상한선 22만 8,750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해야 하며, 흥국생명은 그 이후 김연경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고 결정지었다. 또한 김연경이 2013~2014시즌 이후 흥국생명과 계약을 맺지 않을 경우 다음 시즌은 원 소속 구단이 없어진다고 판정했다. 참조.

이번 최종 결정은 터키 구단인 페네르바흐체가 끝날 것 같지 않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단을 꾸린 것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스포츠 국제룰을 근거로 들면서 FIVB에 흥국생명과 김연경 간의 계약서가 없음을 어필했고 보통 판결을 뒤집지 않는 선례에도 불구하고 FIVB는 판결을 바꾸었다. 하지만 김연경의 소유권을 계속 주장하고 싶은 흥국생명은 FIVB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재심을 요청했고 페네르바체 역시 김연경의 계약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싶어 재심을 받아들였다.

2014년 2월 7일 국제배구연맹(FIVB)이 김연경이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 일로 인해 대한민국 배구계는 망신을 당했으며 후진적인 룰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나 우물 안 개구리의 그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어디는 안그러냐? 배구만 그런게 아니다. 선수 대 구단의 분쟁이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겠지만, 흥국생명으로서는 선수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혹은 흥국생명-김연경-페네르바흐체 3자간 이적협상을 진행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흥국생명 측의 생각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더군다나 김연경의 원 소속구단이 되고 싶었던 흥국생명의 글자를 FIVB가 지워 줌으로써 김연경은 후에 이적시 발생할 이적료는 고스란히 대한배구협회가 챙겼다. 김연경의 해외 이적을 계속적으로 방해하는데 한몫했던 배구협회는 생각지도 못한 이적료라는 콩고물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돈은 배구회관 관련 대출 상환으로 꼴아박고(...)

추가적으로 김연경 이적 파동과 직접 당사자였던 흥국생명 구단,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의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얽히고설켜 삽질을 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박상설 KOVO 前 사무총장이 기금전용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대한배구협회 임태희 회장은 김연경 이적 파동이 생길려고 하던 시점에 공석이었던 KOVO 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며 물밑 작업을 시도했었다. 여기에 흥국생명이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주최인 대한배구협회에 떡밥을 던졌고, 흥국생명 권광영 단장은 당시 KOVO 총재 추대위원회에 속해있어 KOVO 총재에 눈독을 들이던 임태희 회장의 대한배구협회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또한 흥국생명은 온갖 비리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박상설 총장에게도 추파를 던져 박 총장에 대한 연임 지지를 약속하며 김연경의 해외진출건을 KOVO 이사회 차원에서 막아달라는 ‘딜’을 성사시켰다. 이후에 임태희 회장이 새누리당 18대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하고,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의 ITC 발급 불가에 대해 SNS 구명활동에 응하는 엉뚱한 짓으로 우왕좌왕하며 망신을 자초했다. 해당기사

결론은 기업과 협회가 선수개인을 자기들 맘대로 해서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다가 우리나라를 국제적으로 개망신 시킨 사건이라고 볼수있다.

결국 김연경은 이적 파동을 통해서 해외 이적시 완벽한 FA가 되었으며, 김연경은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 준 페네르바흐체와 재계약함으로써 '의리'를 지켰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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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인터뷰 당시


2016년 현재 국가대표 부동의 에이스이자 절대 빠져선 안 되는 선수.
빠지는 그날 한국 여자배구의 헬게이트가 열린다 정말로 우리나라 한국 배구는 김연경에게 의지하는 거다.

한국 여자배구 거포의 계보를 잇는 선수이자 한국 여자배구 역사상 본격적으로 장신의 피지컬을 갖춘 최고의 거포로 평가된다. 이제는 선배들을 뛰어넘어 한국 여자배구 역사 이래 가져보지 못했던 입지전적인 월드 스타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사실상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김연경 혼자 풀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같은 위상을 지녔다고 보면 된다.[31] 국제전을 보면 한 경기에 평균 20~30점을 책임지고 늘 공격부문 Top 5에 오른다. 물론 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김희진 등 여자대표팀 주 공격원이 평균 10점 이상이며 크레이지 모드 때 10점대 후반 가까이 찍어주기는 하나 김연경은 팀 득점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베로보다 잘하는 서브리시브이기도 해서 김연경이 잠깐이라도 쉬러 벤치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헬게이트를 걱정해야 한다.

특별히 부상이 없는 한 향후 10년은 여자배구계를 이끌 대형 선수이나 프로 입문 이후 무릎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황현주 감독이 막 굴려먹은 게 문제인 듯 고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나 정규시즌 전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김연경의 컨디션이 어떠냐에 따라 국제전의 성패가 달려있기도 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수상, 선수 생활 최초로 메달을 획득했다.

2011 월드그랑프리 조별예선에서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가모바를 가볍게 뛰어넘고 득점부문 1위를 기록했다. 특히 8월 19일 대 러시아전에서 거둔 31득점은 김연경이 월드 클래스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러나 경기당 평균 22.5점을 올리는 걸 보면 다른 선수들의 분발이 필요했다. 결국 대표팀은 최종 8강 라운드에는 오르지 못하면서 김연경의 기록은 소멸되고 말았다. 지못미.

2012년 올림픽 최종 예선대회에서 김연경은 대표팀을 8년 만에 2012 런던 올림픽으로 영도했다. 특히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 한일전에서 22연패라는 수모를 끊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시 맹활약했다. 조별리그-8강전 6경기 동안 평균 27.5점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보였다. 게다가 김연경이 막힐 때마다 한송이, 김희진, 양효진 등이 10점 중후반 대의 점수를 올려주면서 '김연경과 아이들' 이나 다름없는 여자배구 국대팀을 밸런스를 갖춘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갔다. 결국 2012년 8월 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전에서 3-1로 이기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여자배구 국대팀을 4강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4강전에서 미국에게 지고 3, 4위전에서 과거 '김연경과 아이들' 시절의 경기력으로 회귀해 버리는 바람에[32] 올림픽 4위로 마감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2위와 40점차득점 1위.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중에 유일하게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선수이기도 하다. 양효진이나 이숙자, 김사니, 한송이, 한유미 등도 간간히 교체되고 황연주는 김희진의 원포인트 서버로 전락했으며 김희진은 당시 신인이었던지라 황연주와 번갈아 투입되었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김연경 선수 개인으로서는 국제배구연맹에서 선정한 런던 올림픽 MVP로 뽑히는 영광을 받았다. # 우승은 커녕 메달 획득도 실패한 국가에서 대회 MVP로 선정되는 것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사상 두 번째라고 한다. 또한 대회 총 득점 207점으로 종전 올림픽 기록이었던 예카테리나 가모바의 204점을 능가했으며 당연히 득점왕에 선정되었다. 이젠 배구게의 펠레 소리가 나올 판

후에 올림픽 조별리그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의 반월성 연골판이 파열되었지만 본인의 수술 때문에 국대가 올림픽 광탈하는 게 싫어 고통을 참고 계속 경기를 치뤘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33] 오오 대인배...

그러나 제아무리 강철 체력에 승부욕 강하고 멘탈 강한 김연경이라 할지라도 2012~13년 두 해에 걸친 이적 사태와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가 겹쳐 앞서 농담처럼 얘기한 그 헬게이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3년 9월 아시아선수권대회 3~4위 한중전에서 오른쪽 어깨 탈골 부상을 입은 채로 끝까지 경기를 뛰어 대표팀을 3위에 올려놓고 FIVB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열흘이 지나고 벌어진 2014 세계선수권대회 대륙별 예선 초반 김연경의 결장과 대표팀의 카자흐스탄전 패배로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진출에 실패했다.[34]

2014 FIVB 월드그랑프리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뽑혔다. 물론 김연경보다 나이가 더 있는 언니들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중고참의 위치라는 점과 김연경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박지성이 주장이 된 것과 같은 비슷한 맥락. 그만큼 김연경은 국가대표팀의 무게감있는 에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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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IVB 월드 그랑프리에서도 역시 그룹1 득점부문 1위를 달렸다(조별예선 종료 기준 242점-평균 26.89점). 2위와는 무려 60점 가까이 차이났다. 공격 1위, 서브 1위를 기록했다. 블로킹을 빼더라도 공격만큼은 김연경이 쌈싸먹고도 남았다. 뭔가 데자뷰같아 보이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어! 대표팀의 확실한 제2 옵션인 김희진과 충격적인 성인대표팀 데뷔를 한 신성 이재영, 국가대표팀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박정아 등도 도움을 줬지만, 역시 어려운 볼이나 결정적인 상황은 김연경이 주로 처리하였다. 이 때문에 블록 높이가 좋은 팀들에게 집중 마크가 되었다. 한편, 8월 10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러시아전에서 무려 42점을 올리는 맹활약으로 종전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후 AVC컵-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팀 리더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며 결국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2015년에는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서 준우승, FIVB 월드컵에 참가해서 신진 세터진을 데리고도 하드캐리하며 6위를 기록했다. 월드컵에서는 득점 1위, 리시브 4위로 공수 양면에서 출중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입증했다. 아직 더 입증할게 남았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진출권을 놓고 일본에서 펼쳐진 세계 최종예선에서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패했으나, 네덜란드-일본-카자흐스탄-페루를 연파하며 대한민국은 6경기인 태국전 2세트에서 무난하게 올림픽 진출권 획득. 당연하게도(?) 김연경은 맹활약.
다만 국내용 공격으로 여겨지던 개인 시간차가 국제무대에서 통하기 시작한 양효진, 서브 맹폭 일본 킬러 김희진, 반전의 리시브 실력을 보여준 박정아 등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고무적인 현상.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35]로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는 걸 보면 주장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

리우 올림픽 조별예선 A조 1경기 운명의 한일전에서 30득점을 기록하며 3-1로 승리, 4년 전의 아픔을 일본에 설욕했다. 점유율은 37.5%로 무난한 수준이었지만 이 선수에 비하면 성공률이 워낙 넘사벽이어서 일본 배구에 '알고도 못 막는다'를 다시 한번 시전했다. 게다가 토요일 황금시간대에, 그것도 한일전이라 KBS, MBC, SBS 공중파 3사에서 동시 생중계한 덕분에 경기하는 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걸크러쉬, 우시지마 연경토시[36], 착한 제빵사 등의 별명은 덤.

8강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선 팀의 절망적인 수비와 서브리시브로 패배해가는 경기[37]에서 혼자서 공격을 다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활약했으나 3세트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후 마지막 세트인 4세트에선 좋은 찬스를 놓치고 서브범실을 범하는 등 급격히 지친모습을 보이며 안타깝게도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과장 좀 보태서 김연경 VS 네덜란드라고 할 정도의 투혼을 보이며 리우올림픽을 마감했다. 겨우 따낸 3세트의 1승은 거진 김연경이 혼자 해먹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

4 플레이 스타일

국내 여자배구 선수 중에서 아주 큰 편인 192cm의 키[38]초대형 공격수이며 여자 신현철이다.

고교 입학 시절엔 키가 작아서라고 해도 고 1때 170cm였다. 위너 리베로와 세터를 맡기도 하였으나 키가 급격히 컸음에도 월등한 운동 능력과 리시브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사기캐릭터로 진화했다. 고득점을 올리는 주포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 능력 또한 출중한 그야말로 완전체이다.

190cm의 장신이지만 단신 공격수들의 주공격 방법인 왼쪽 측면 C속공과 중앙 시간차 공격 등 스피드 배구가 가능하다. 물론 압도적인 신장과 스파이크 높이가 있어 상대편 전위의 블로커가 투 블록 내지는 쓰리 블록을 떠도 상대 블로킹 위를 넘어 코트 먼쪽의 대각으로 넣는 공격도 가능하다. 백어택 능력 또한 뛰어난데, 국가대표팀에서 정대영이 A퀵을, 김희진이 이동B퀵을 뛰는 척 상대편을 속이면 김연경이 백어택을 해 주는, 남자부 경기에서나 볼 듯한 파이프(PIPE) 공격과 같은 고난도 플레이도 가능하다.


한편 이런 캐사기적인 플레이도 가능하다. 장면은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 정대영이 2단으로 연결하는 상황에서 미처 도움닫기 준비를 못한 김연경이 제자리뛰기로 백어택을 성공시켰다. 오오. 그리고 무진장 배를 아파했다. 코레와스고이키무욘굔노 박쿠아타쿠

수비 면에서도 최고의 선수. 앞서 언급했듯, 한일전산 신입 시절에 리베로를 본 적이 있어 상대 서브 캐치를 잘 해낸다. 김연경이 만능플레이어인 이유. 그런데 이런 능력 때문에 김연경의 대각에 서는 윙리시버들은 종종 김연경과 비교를 많이 당한다. 이를테면 한송이라든가... 그리고 전위에 있을 때 양효진과 함께 같이 투 블럭을 이뤄 '통곡의 벽'을 만들기도 한다.[39] 다만, 김연경이 날개공격수를 전담해서이기도 하고, 흥국생명에서 뛰던 시절보다 수직점프 부분은 살짝 낮아졌기 때문에 블로킹을 전담하는 센터에 비해서는 블로킹 부분이 조금 약해지긴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신장이 비슷하거나 작은 나라를 상대로 해서는 김연경 자체의 키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

5 이모저모

  • 외모도 운동선수 중에 상당히 미인인 편이고 굉장히 큰 키와 방송 출연에서의 시원시원한 성격 등으로 인해 배구를 전혀 모르는데도 외모만 보고 팬인 사람들이 제법 있는 편. 보통 키가 굉장히 큰 미녀라 하면 양효진과 함께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은근히 예능프로 출연이 상당히 잦은 편.
  • 김연경은 3녀 중 막내로 원래는 큰언니가 배구 선수였다. 그런데 큰언니와 친분이 깊은 김연경은 큰언니가 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다가 결국 배구를 시작했다. 황당한 것은 정작 큰언니는 중간에 배구를 그만두고 현재 학원강사가 된 반면 언니 따라 배구를 배운 막내 김연경은 세계적인 여자 배구 선수가 되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김연경은 평소에도 고등학교 선배인 한유미-한송이 자매를 무척 부러워한다.
  • 2008년 시즌에 흥국생명에는 김연경을 비롯하여 황연주, 주예나 등 굉장한 미모를 가진 선수들이 많아 이 팀이 세간에는 미녀 군단 으로 통했다.[40] 그러나 2010년에 FA로 풀린 황연주가 현대건설로 이적하고 말았으니... 글구 요새는 미녀군단보다는 막장구단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미녀군단의 명성은 성적은 시궁창인데 얼짱이 많은 도공으로 옮겨 갔다.
  • 2010년대에 들어서 그녀의 재래 소리를 듣는 신인이 폭풍 같이 성장했다. 결국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김연경은 자신의 재래 소리를 듣는 대후배와 호흡을 맞춰서 디펜딩 챔피언인 브라질을 완파하는 등 좋은 성적으로 4위에 입갤했다.
  •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팬이라고 한다. # 사실 흥국생명의 왕언니 세터 이영주의 남편이 前 두산 베어스 투수 이재우[41]다. 이영주의 은퇴 전에 쉬는 기간에 후배들을 데리고 두산 경기 단체관람을 가는 등 얼마 전까지 교류가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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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이날 한화 유니폼에 61번을 달고 시구를 했다. 원래 김연경은 소속팀, 대표팀에서 모두 10번을 다는데 말이다.[42] 190cm가 넘는 김연경이 마운드에 서자 키가 185cm인 박찬호가 작아보였다고. 박찬호 지못미 시구 역시 큰 키에서 내려 꽂는 시구를 했다.폼도 보아하니 오버스로에 팔도 길고 키도 큰 만큼 맘먹고 던지면 장난 아닐듯.. 자네 야구해볼 생각 없나?
  • 2012년 9월 11일 SBS 강심장에 출연해 직접 스파이크 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사실상 동갑내기인 한승연 옆에 섰다. 자신의 기량이 해외에서는 유명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많이 아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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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에 중국집을 개업했다고 하더라. 중국집 사장님(...) 2014 국가대표팀과 함께 찍은 사진. 처음으로 주장을 맡은 2014 대표팀에서 최고참과 어린 선수들의 중간에서 잘 연결하며 항상 대표팀의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2014년 여름에 한창 벌어졌던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선수들에게 잔혹하게(...) 얼음물을 끼얹으며 재미있게 팀 단합을 이끄는데 솔선수범했다.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대표팀이 20년만에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배구협회는 회식 자리를 김치찌개집으로 잡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당시 배구협회의 푸대접에 화가 난 김연경이 사비를 털어 동료 선수단을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한턱 쏘았다고 한다. 위 사진을 자세히 보면 김연경 앞쪽에 놓여진 밥과 식기는 손조차 대지도 않았을 정도로 깨끗한 것을 알 수 있다(...). 표정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그녀가 배구협회의 노답 행각에 얼마나 화가 많이 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선수들 표정도 하나같이 다 어두운데 혼자 웃고있는 한송이가 유독 튀는 건 기분 탓
  • 2015년 7월 26일 런닝맨 영웅전에 출연했다. 특수스킬로 이름복제를 조훈현에게 받아[43] 하하와 이광수의 등을 쳐서 이름표를 복제해 아웃시키면서 우승. 그리고 관련기사는 모조리 콩드립... 워낙에 키가 크다보니 나이가 6살이나 많은 홍진호에게 '누나'라고 불리기도 했다.
  • 리우 올림픽이 끝나고 2016년 9월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특별 꿈계주로 출연예정이며, 예고편에서 축구를 좋아한다며 축구를 하고 싶다, 스카이다이빙을 해보고 싶다 했지만 선수의 몸은 재산 그자체이므로 부상의 위험때문에 최종 꿈도전으로 래퍼를 말했다 그러면서 예고편 말미에 래퍼로 변신한 비주얼을 선보였다.
  • 터키어를 할 줄 안다. 터키에 들어갈 때부터 터키어를 배웠고 지금은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이나 심판한테 항의를 터키어로 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같은팀 동료들한테 터키어 욕을 배워서 요새는 리그경기든 국대경기든 터키어로 욕을 한단다(....) 마찬가지로 자기도 동료선수들한테 한국어 욕을 알려줬다. 또한 국대 동료들에게도 터키어 욕을 전파한다 카더라
  • 최근에 우리누나라는 별명을 얻은 뒤엔 이런 짤 모음이 돌아다닌다.호우!
  • 왼쪽 발목 바깥 쪽에 문신이 있다. 리우 올림픽 기념 3대 천왕 방송 분에서 밝혀졌다.
  • 득점 후 보통 포효 세리머니를 많이 하는데, 입이 상당히 큰 편(...)이다.
  • 터키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방송에서 터키 남자 모델, 연예인들이 자기한테 사귀자고 얘기하고, 심지어 아지즈 이을드름 페네르바체 구단주마저도 "결혼 생각 있는가? 내가 좋은 터키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중매를 자처한다고(....)
  1. 우리누나란 별명은 리우 올림픽 예선 한일전 활약과 호날두를 연상시키는 함성으로 이 별명을 얻게되었다. 참고로 원래 김연경에겐 배구계의 메시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호날두가 더 잘생겼다며(...) 호날두라고 불러달라 했다. #
  2. 출생은 경기도 안산. 조부모/부모님 고향이 전남 구례라 고향이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기사
  3. 옛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2013년에 개명했다.
  4. 2007년 이후 스폰서명을 팀명으로 붙인다. (아즈바뎀 보건 그룹(2007년~2011년)-유니버셜(2011년)-그룬디히(2014년~2015년))
  5. 이전에는 여자 배구계라고 작성되어 있었지만 굳이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아도 대한민국 배구계, 혹은 대한민국 구기종목 역사상 자신의 종목에서 가장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로 언급된다. 국내외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인재라는 찬사를 받는다.
  6. 해외 팬들이 지은 별명. 러시아의 배구 여제로 불리는 200cm의 거한 예카테리나 가모바를 빗댔다. 이 둘은 한때 같은 팀에서 뛴 적도 있다
  7. 이 때 익힌 기본기들이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장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와 토스가 안정적인 이유가 이때 익힌 기본기의 산실이다.
  8. 특히 김연경의 개그본능은 배구팬들사이에서 데뷔초부터 유명했다. 그덕에 각종 예능에 출연해 놀라운 예능감을 뽐내며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V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 스페셜v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mc를 자처하기도 했다. 덕분에 보다 mc보는 실력이 늘었다. 배구선수인데 왜?
  9.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0. 이 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
  11.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12. 인삼공사 감독 시절 보면 답이 나온다. 도망간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
  13.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신인왕-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은 김연경 포함, KBL 2001-02 시즌의 김승현과 프로야구 2006 시즌의 류현진이 있다. 그런데 둘 다 KBL 파이널/한국시리즈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김승현은 2001-02 시즌 파이널에서 맹활약했긴 했지만 MVP는 마르커스 힉스가 탔다.
  14. 데뷔시즌 6관왕
  15. 현 연고지는 인천광역시이지만 김연경이 뛰던 당시에는 현대캐피탈과 더불어 천안 유관순체육관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했었다.
  16. 참고로 나머지 베스트 7은 다음과 같다. : 수비형 레프트 - 최광희(전 KT&G), 라이트 - 황연주(현대건설), 센터 - 양효진(현대건설), 정대영(GS칼텍스), 세터 - 김사니(아제르바이잔 로코모티브 바쿠), 리베로 - 김해란(도로공사).
  17. 첫 해에 좋은 성적을 거두면 옵션으로 그 다음 해에도 뛸 수 있는 1+1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2010년 9월 국내 컵대회에 출전했다. 일본 리그가 오프 시즌인 때에는 9월에는 국내 컵 대회 출전이 가능했다.
  18. 2011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 V리그는 잔여경기에 상관없이 시즌을 강제 종료했다. 이로인해 정규 리그 최종 성적이 시즌 통합 성적으로 인정되어 정규 시즌 1위였던 JT 마블러스와 사카이 블레이저스가 2010-11 시즌 우승팀이 됐다.
  19. 김연경이 JT 마블러스로 (임대)이적할 때 생긴 규정. 시즌 전(全) 경기의 25%를 뛰면 한 시즌 뛴 것으로 간주.
  20. 한 선수가 죄다 독식하면 안 된다고 해서 2관왕 먹었지만 사실은 4관왕인 셈이라고.
  21. 유럽 배구판 UEFA 유로파 리그 급 대회.
  22. 세계배구계에서는 사실상 최고 연봉 금액이다. 야구, 축구, 농구 등 리그 풀이 큰 리그의 고액연봉자에 비해서는 분명 많은 편은 아니지만. 참고로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로베르틀란디 시몬의 연봉이 이 정도다.
  23. 만약 김연경이 국내 V리그에서 계속 뛰었다면 2010~11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을 텐데 흥국생명은 일본-터키의 3년 임대 기간을 흥국생명 소속 선수로서의 기간으로 치지 않았다.
  24. 한국배구연맹 선수등록 규정집에 따르면 '해외임대 선수의 국내 리그 복귀는 시한의 제한 없이 국내 원 소속 구단으로만 복귀가 가능하며 복귀 시점부터 소속팀의 당해 시즌 예상 잔여경기(정규 리그 및 포스트 시즌 진출시 해당 경기 포함)의 25% 이상에 참여할 경우 FA 선수 자격 취득 연수(年數)에 산입한다' 라고 나와있는데 이 조항은 2010년 8월 28일 개정되었으며 김연경은 소급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 3항 위의 1, 2항에 해외임대선수가 선수 정원과 샐러리캡에 명시되어있는 이상 이 조항으로 해외 임대 선수의 국내 FA 선수 자격 취득 연수 여부를 가리는 데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25. 원래는 1억이었는데 선수가 항의를 하니 무려 6천만원으로 깎아줬다! 대인배 코스프레
  26.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으로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후보로 나선 바 있다.
  27. 합의서 내용은 김연경에게 불리한 조항 투성이. 단, 마지막에 양 측은 FIVB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었다. 김연경측은 그걸 노린 듯.
  28. 소속 팀의 문제라 귀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29. 국정감사가 있기 전부터 김연경의 팬들이 중심이 되어 SNS를 통해 정치권에 구명 활동을 벌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화답을 하면서 불씨를 지폈다.
  30. 이 날 감사는 대한체육회를 포함한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대통령 하고 싶다고 나대신 대한배구협회장 임태희는 출석하지 않았다.
  31. 다만, 즐라탄은 이미 은퇴해버려 스웨덴 축구는 급락해버렸다. 묵념....
  32. 양효진한송이는 체력이 떨어져서, 김희진은 경험이 부족해서 고전했다.
  33. 다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반월성 연골판에 조금만 손상이 와도 가볍게 발을 디뎌도 통증이 심해 다리를 절어야할 수준이다. 더군다나 배구는 무릎으로 하는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스포츠이다. 올림픽 후에도 수술받지 않고 2013년 3월 현재까지도 계속 터키 리그에서 무릎이 나간 채로 뛰고 있다.
  34. 2014년 배구 국제대회 일정 중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의 일정이 겹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대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놓치고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은 확보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대한배구협회가 2014년 일정에 맞춰 여자대표팀을 A·B팀으로 나누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의 금메달에 집중하겠다는 뉘앙스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35. 대표적인 것이 박수 세리머니... 이 대회부터 김연경의 주도로 승리 후 3-3-7 박수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데 보면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응?
  36. 배구만화 하이큐-!의 등장인물로, 압도하는 플레이 스타일이 닮아 트위터 등에서 일부 하이큐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37. 서브 에이스만 12개나 내줬다...
  38. 사실 김연경이 키가 크긴 해도 V리그 데뷔 초기 프로필에는 187cm였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키가 자라고 있었는데, 최종 임계신장이 195cm로 추측했을 정도. 참고로 2014년 현재 V-리그에서 190cm가 넘어가는 국내 여자배구 현역 선수는 양효진김세영(이상 현대건설), 문명화(인삼공사)가 있다. 그리고 포지션은 모두 센터.
  39. 김희진은 키가 185cm라 블로킹은 다소 약한 편
  40. 배구가 프로화되면서 구단에서 민 기믹이었다. 프로화 초창기의 주전인 구기란, 진혜지, 이영주, 윤수현, 전민정, 황연주, 김연경 이렇게 모아 '7공주' 로 부르기도 했다.
  41. 현재는 한화 이글스 소속이다.
  42. 그런데 사실 배구 선수는 평생 61번을 다는 일이 없다. 배구 선수는 규정상 1~18번까지만 달 수 있다. 또한 랠리 때마다 매 선수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의 유니폼 번호를 심판과 기록석에서 끊임없이 챙겨야 하는 배구의 특성상 이러한 번호 규정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즉 배구 선수에겐 영구결번 따위는 없다. 따지고 보면 평생 못 달 번호를 야구장에서라도 한 번 달아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43. 바둑알 공기 5점잡기로 이겼다. 뭥미?
  44. 한 번은 언론 컨퍼런스에 구경하러 온 우리나라 아나운서가 어떨결에 통역을 해 준 일도 있다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