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관광


전주시는 지방거점도시의 행정적 기능에 머문 도시가 아니라 전통적인 멋과 맛을 지니고 있다.

1 덕진구

1.1 호남제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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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톨게이트를 지나 전주로 들어선 뒤 전주 월드컵 경기장이 막 보이기 시작할 때 지나게 되는 한옥양식의 일주문 겸 육교. 현판에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라고 크게 써있는데 말 그대로 호남의 첫번째 문이라는 뜻. 참고로 이 현판은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부친인 고 강암 송성용 선생의 작품이다. 여기를 지나면 전주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된다.

주변에 고속버스 중간정류장이 있어서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 가거나, 북전주 혹은 완주군 삼례읍이나 봉동읍 등 지역에서 오고가기 편하다.
축구나 먹거리 축제때문에 월드컵경기장에 진입하지 못한 1, 2번이 여기를 지나기도 한다.

1.2 전주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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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978년 6월에 개원한 전주동물원은 전주시가 운영/관리하고 있으며 106종 7천여마리가 있다. 지방 동물원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고 에버랜드서울대공원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운영상의 한계로 장비들을 교체해가며 위락시설의 기능을 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동물원 안에 작은 놀이공원이 하나 있는데 놀이기구 시설이 너무 낡아 바이킹을 제외하고 전주 시민들도 가기를 꺼린다(...)[1] 현재 새로운 놀이기구도 두어개정도 들어왔다. 이른 아침에 봉사활동을 가면 간혹 배드애플이 들릴때가 있다 거기에다 몇몇 동물들 우리도 처우가 좋지 못한 곳이 몇몇 있다. 특히 대표적인 곳이 바로 곰사. 사육환경이 시멘트로 이루어진 방에 에조불곰, 반달가슴곰등을 가두어 놓아 마치 곰 농장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몇몇 개체는 그 좁은 우리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도는 정형행동을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전주시에서 전주동물원을 생태동물원으로 재조성하여 싹 재정비할 예정이라 전국적인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동물원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라 하니, 재정비될 전주동물원을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 동물원은 동물원보다는, 벚꽃 개화기에 꽃놀이 장소로서 인기가 좋다. 특히 개화기 기간에는 야간개장을 하는데 형형색색 조명들이 벚꽃들을 비춰 나름 장관을 연출한다. 전주시민 뿐 아니라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도 괜찮은 볼거리 중 하나. 전주시에서 이 기간에는 동물원을 오고 가는 시내버스를 연장운행도 한다. 국립식량과학원-동물원, 동물원-국립식량과학원 운행버스인 165번 버스가 바로 이것. 이 버스는 전주시내에서 가장 교통의 요지이자 번화가인 팔달로를 관통하는 버스이니, 위키러들은 참고할 것. 보통 전주시 버스막차 운행시간은 전주시내 번화가(팔달로 및 전주객사 부근) 통과기준 보통 23시 언저리지만, 이 버스는 막차가 동물원 출발 기준 22:35에서 23:05으로 연장운행을 하는 것. 시내 번화가 근처에서 탑승 한다면 23시 넘어서까지도 버스탑승은 가능할 것이다. 혁신도시에 사는 위키러들은 걱정하지말자[2]

그 여파로 이 근방 초중등학생들은 매해 소풍장소가 이곳이다. 이 근방이 아니더라도 전주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소풍코스 중 하나.딱히 갈만한 곳들도 없고... 또한 대학생들도 과나 동아리에서 이 곳으로 꽃놀이를 자주 간다. 특히 바로 앞이 전북대학교이다.

1.3 한국도로공사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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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톨게이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도로공사호남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남은 유휴지에 건립한 것으로 작지 않은 공간에 많은 157과 1,410종이 있다.
무료 입장이며 월요일은 휴원이다. 전북대학교 생물과학부에서 1학년들이 2학기때 실험시간에 오는 장소. 전주 중에서도 심히 외곽지역이라[3]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상당히 불편하다. 시내버스로는 원동 방면으로 가는 400번대 버스를 타면 갈 수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이 번호대는 배차시간이 60분 이상으로 길기 때문에 그냥 동산동우체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거나 걷는 게 낫다.
[1]

1.4 한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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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동 전주페이퍼 공장 내에 위치해 있다.

1.5 혼불문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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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뒤 건지산에 있는 소설가 최명희의 묘역에 있다. 혼불최명희의 대표작 한옥마을에는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동백나무가 여럿 있고, 연결된 기린대로를 따라서 벚꽃길이 펼쳐져있고 사람도 드문편이라 조용한 봄나들이를 즐기기 좋다.

1.6 덕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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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게 덕진호수라고??

덕진호수라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잡은 공원. 정말 무지막지하게 큰 호수이다. 팔각정이 있고 큰 철교와 전망대도 있으며 쉴 수 있는 공원도 있다. 연꽃이 피면 호수의 한쪽면을 온통 뒤덮는 풍경이 끝내줘서 사진작가들에게도 인기 장소이다. 참고로 바로 옆이 전북대학교. 원래 전북대학교 부지였는데 동부시장 쪽 평생교육원 부지를 받는 조건으로 전주시에 넘겨주었다. 오리보트도 운영하니 커플들은 참고하길. 보트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은 50분당 8000원에서 18000원 선이다.

특히 이 곳은 겨울을 제외한 계절 평일에 하루 3번 음악분수쇼가 열린다. 30분 음악쇼인데, 음악에 맞추어 분수들이 떠오르는데 굉장히 멋지다. 특히 밤에 하는 쇼에서는 조명까지 곁들여 장관이다.

호수 옆에는 전봉준 장군상이 있다.

1.7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시 덕진동에 위치해있으며, 바로 옆에 전주 동물원이 위치해있다. 유명가수들의 콘서트 및 대형공연, 각종 행사 개,폐막식 대부분은 이 곳에서 열린다. 전북대 (신)정문에 있는 삼성문화회관과 함께 전북권 공연메카로 불리우기도 한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조사에서 공연과 전시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10대 문화시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서울의 4개 문화시설과 부산의 문화시설 다음으로 다양하고 많은 문화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실제로 문화 컨텐츠가 많고 다양하며 서울로 편중된 문화산업 속에서 홀륭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2 완산구

2.1 전주 한옥마을

해당 항목은 전주 한옥마을 문서 참고바랍니다.

2.2 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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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慶基殿).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어진을 봉안한 곳이며 영정을 실제로 모신 정전 건물은 보물 제1578호이다.

태종(이방원) 10년인 1410년에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시는 어용전을 세웠는데 세종 24년인 1442년,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으로 이름을 고쳤다.[4]

임진왜란 당시 이 경기전을 제외한 네곳은 모두 소실되고 정유재란때 이 경기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광해군때 경기전만 복원했다. 태조 어진은 임진왜란 당시 묘향산,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 정유재란 때는 서울 명륜당 그리고 동학농민전쟁 때는 위봉산성으로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경기전에 있는 어진은 1872년에 원본이 너무 오래되어 모사한 것이다.

참고로 경기전 코 앞에는 전동성당이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완고한 왕조의 갖은 탄압을 뚫고 전세계 거의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신앙을 싹틔운 한국 천주교의 오래된 교회와, 바로 그 유교 이념으로 5백년을 버틴 왕조의 시조를 모신 준 묘사(廟祠)가 얼굴을 바로 맞대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다.[5] 실제로 처음 방문해 보면 이 고즈넉한 마을에 우뚝선 두 건물들의 이질감이 매우 인상적이다. 최근의 노점들은 마음 속에서 지우고 보도록 하자(...)

다소 충격적이기까지한 이 절묘함은 두 건물 사이를 지나는 태조로가 조선시대까지는 전주부의 남쪽 성벽 자리였던 것에서 기인한다. 천주교 선교가 자유화되어, 전주지역 신자들이 점차 산골에서 내려오고 수도 늘면서 전주부 내에 성당을 짓기 위해 성벽에 붙어있는 구례 영저리[6] 저택을 사들여 임시 성당 겸 성당 신축 부지로 삼았다. 그런데 착공 직전인 1908년 통감부가 전주부성을 헐어버리면서 성당 부지와 경기전이 장애물 없이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소학교[7]를 지으면서 원래 있던 건물을 상당히 헐어냈는데, 이때 훼손된 부분은 주로 옛 전주부성 동문 근처인 북쪽 부분이며 2004년에 복원 완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경기전의 원래 영역으로 지적받는 바로 옆의 중앙초등학교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전주부성의 밖이었으며, 원래부터 경기전과는 전혀 무관한 장소였다.

입장료 무료였고 산책겸 나가도 아무 장애물이 없었는데, 2012년 9월부터 유료화 정책이 발표되었다. 결국 유료화가 실시되었고 2016년 2월 현재 어른 3천원, 청소년 2천원, 어린이 1천원.

2012년부터 경기전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경기전 정문에 수문장 배치, 교대식[8] 및 경기전 부속건물에 여러 체험(왕실 의상, 수문장 체험, 제례 체험 등) 이벤트가 시행되고 있는데 관광객이 몰리는 방학 시즌에는 휴무인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가격도 저렴한 편. 1000원 내지 2000원 급격히 오른 입장료보다 더 싸다는게 신기할 노릇

경기전 정문에 서 있는 수문장은 경복궁 및 여러 고궁에서와 마찬가지로 기간제 알바일지언정, 나름 훈련받은 전문 인력이다. 인형, 마네킹이 아니다. 괴롭히지 말자

2.3 남부시장 + 청년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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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구 전동에 있으며 한옥마을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시장이다. 피순대국밥이 유명하다. 모범시장으로 선정될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특히 금요일, 토요일 밤에 열리는 야시장에는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 시장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2층에 청년몰이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 아래 재래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청년몰이 나타난다. 청년들이 창업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고 시장의 디자인 또한 멋지고 예술성이 돋보인다. 공예품, 골동품, 문방구, 식당들이 모여있는 훌륭한 청년시장. 공연도 자주 있다. 꼭 가보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근데 밑에 남부시장에 비하면 좀 비싸긴 하다

실제로 남부시장은 우수 시장으로 선정되고 청년몰은 모범사례로 뽑혀 다른 시장에도 도입된다고 한다.

2.4 자만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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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뒤쪽 도로로 나오면 산이 있는데,
그 산 오르막길에 마을이 하나 있다. 평범한 오르막길 주택가가 아니라 벽에 멋진 그림들이 그려진 아름다운 마을.
역시 무분별한 상업화와 위에서 말한 거주민들의 강제이주 때문에 고민이 많은 지역이다...
[2]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열차를 그려놓은 벽이 유명하다. 이곳 역시 게스트하우스나 멋진 공예품 가게가 아기자기 모인 곳으로 한옥마을과 함께 꼭 돌아봐야 할 코스.

본래 이곳은 자만동(滋滿洞) 이라고 하여 고려 및 조선시대부터 전주에 사는 백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거주촌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간납대(現 천주교 전주교구청자리. 舊 전주공전 및 영생고등학교, 舊 영생여상(현 전주대사대부고) 자리이다. 한산이씨 이기발, 이흥발, 이생발 3형제가 살았다고 한다. 한산이씨는 고려말 삼은 중 하나였던 목은 이색의 집안으로, 이기발이 사간원 헌납이라는 벼슬에 올랐는데, 병자호란 이후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이곳에 내려와 살았다하여 사간(司諫)의 간(諫)자와 헌납(獻納)의 납(納)자를 따서 諫納臺라 했다고 한다. 원래는 정자형식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 현재는 오래전에 소실되고 없다.) 등등 선비들이 모여 살며 후학 앙성 및 학문을 닦던 곳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살던 곳으로, 자만동 금표(滋滿洞 禁標)라고 하여 구한말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국권피탈시기에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조상들의 흔적과 나라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잡인들이나 유래없이 떠돌던 백성들이 함부로 들어와 살지 못하게 옆의 이목대와 함께 비표를 세워 성역 비슷하게 취급되던 곳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역사가 서린 곳을 페인트벽화만 그려 놓고, 벽화마을 이라 하며 마을의 유래나 역사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곳은 상업화가 진행되어 주택들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카페 및 유행가만 들려오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방문헤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근처에 완산팔경 중 2개나 있을 정도로 경관이 수려한 곳인데... 근처 마개조된 건물들과의 조화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간을 이렇게 페인트벽화만 그릴게 아니라, 낙후된 주거지역은 적절한 보수 및 개선을 하고, 구한말 국권피탈시기의 역사적상징물로서 근처의 경기전과 오목대와 연계하여 관광객들이나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이나 역사학습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방문하는 위키러들은 이러한 역사적사실을 인식하고 구한말 고종황제가 어떤 마음이었을지와 나라잃은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며 자만동 금표를 찾아보자. 더 뜻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5 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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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홈페이지

천주교 전주교구의 성당. 1791년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윤지충[9][10]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최초로 순교했던 터로써 1889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보드네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14년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여 완공되었다.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으로만 따지면 서울 명동성당보다 낫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전동성당은 기본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조에, 비잔틴풍의 돔으로 마무리 되어있다. 한국 영화 약속의 촬영장소과 MBC 아침 드라마인 단팥빵의 촬영지로 유명하다.[11] 전주교구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 곳에서 혼인성사를 올리기 위해 꽤나 줄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성당 앞에는 항상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다만 이곳은 문화재이자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종교시설이다. 이 때문에 미사 시간에는 관광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미사 시간 이외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는 수준 한도 내에서 성당 주변 사진을 찍어도 뭐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다지 좋을 수가 없다. 요란스럽게 돌아다니지는 말자.

건축계에서는 한국의 초기 성당건축으로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대전교구 공세리성당과 함께 가장 중요시되는 건축물이라 한다.

바로 옆에 전주성심여자중학교와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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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은 映傘伯이 촬영. CC BY-NC-SA 2.5에 따라 배포함)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에게 강점 당한 흑역사가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전라북도의 민주화의 성지 중 하나였다.

2.6 전주 객사

대한민국의 보물
582호
월인석보 목판
(月印釋譜 木板))
583호
전주 풍패지관
(全州 豊沛之館)
584호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求禮 尹文孝公 神道碑))
전주객사(全州客舍). 전주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문화재. 보물 제 583호.

조선 초기 전주부성이 지어질 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때 조정의 칙사나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여기 묵었다. 전주가 태조 이성계 가문의 고향이라 하여 '풍패지관'이라는 현판[12]이 붙어 있는데, 풍패는 중국 전한 고조의 고향. 곧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전주를 우대했음을 알 수 있다.

위치한 곳이 전주 시내의 중심에 가깝고 실제로 전주 시내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거리가 바로 이 쪽에 있어서 영화제 기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객사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가 된다. 도심속에 나홀로 전통 건축물이 있는 모양새.

이름이 객사라 잘 모르는 타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는다는 의미의 客死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흠좀무 여기 가면 레알 객사하냐고 묻는 개드립치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전주사람 앞에선 당연히 하지말자. 실제로 이쪽으로 난 길이름이 객사길이라 처음 본 이들은 식겁하기도.

전주에서 시내라면 대개 객사 부근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세이브 존(舊 코아 백화점)에서 경기전 부근까지를 시내로 치지만 '시내에서 만나자'라면 열에 아홉은 객사길을 말한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상징적 문화재이나 전주시 시내버스에 '객사'라 써놓은 버스가 별로 없다. 고속버스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거나 신도심 쪽에서 객사 부근으로 가려면 중앙시장/동부시장과 전동(한옥마을)이 행선지인 버스를 타면 된다. 다만 객사 부근의 정류장명도 '북문, 외환은행, 국민은행, 전북은행경원지점, 원불교전주교당, 흥국화재 등으로 제각각이니 주의하자. 정 모르겠다면 기사님께 물어보자.

전북대학교 대학로와 함께 전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 객사 주변은 전주에서 가장 땅값 비싸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타지인들의 관점에서는 전북대 근처나 서부신도심 등에 비해 상당히 낙후되어 보이는 편이다. 특히 동문예술거리, 영화거리 쪽은 완전히 침체되어 있으므로 막상 가면 실망할 확률이 높으니 전주시를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또한 객사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찍을 수 있으며 여름철이면 전주 시민들이 객사 건물 안에 앉거나 누워(...)서 햇빛을 피하고는 한다. 정말이다! 어린이고 학생이고 어른이고 다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간간히 그 앞마당에서 공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전주 객사길 참조.

2.7 풍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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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보물
307호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 毘盧遮那佛坐像)
308호
전주 풍남문
(全州 豊南門)
309호
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
(井邑 泉谷寺址 七層石塔)
전주 풍남문 (全州 豊南門)

전주시 완산구 전동에 위치한 전주부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문. 보물 308호. 정유재란 당시 훼손된 것을 영조 때 복원했다가 한번 불탄 적이 있고, 영조 때 다시 복구하면서 풍남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13] 일제강점기 당시 크게 훼손된 것을 1978년부터 3년간 보수를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풍남문은 전주 남부시장쪽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라 과거엔 전주에 처음 놀러온 사람이라면 경기전과 전동성당만 보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풍남문을 둘러싼 길가에는 전부 상점들이 들어차있어 일반적인 문화재를 생각하고 찾는다면 구경하기도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최근들어 주변 건물을 전주시가 매입해 허무는 사업이 시작돼 앞으로는 사정이 좋아질 듯 하다. 실제로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까지 한 곳에 모여있어 이 네 곳이 연계돼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된 지 오래. 현재 그 쪽 상가들 중 하나가 헐렸기 때문에, 경기전이나 전동성당에서 사거리로 나오면 바로 풍남문이 보인다.[14] 하지만 이 문 뒤편의 옹성 쪽은 도로보다 아래(0.5~1.6미터)에 있고 해서 썩 좋지는 않다. 서울의 동대문보다도 더 안 좋은 환경. 대신 옹성 쪽에서는 풍남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경기전 뒷담길 가까운곳에 '동문사거리'라는 곳이 있다. 여기는 말그대로 전주성 동문이 있던 자리인데, 도로를 개설하면서 허물어진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舊 한일서점, 現 세븐일레븐 한옥마을점 자리 바로 앞이다. 풍남문 관광을 온 위키러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한번 쯤 방문해 봐서 예전 전주부성 사대문이 어떻게 위치해 있었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8 치명자산


링크

교동에 위치한 산으로, 가톨릭 성지. 원래 이름은 우리말로는 중바우이고, 한자(이자 공식 명칭)으로는 승암산이라고 불리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동정부부 유중철 바오로와 이순이 루갈다 부부를 포함하여 아버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가족들이 이 곳에 묻혔다.

산에 올라가는 길목에 십자가를 세워 만든 십자가의 길이 있어서 매년 사순 시기천주교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바치기 위해 이곳으로 많이 온다. 산 중턱에는 선종하신 신부님들을 모신 '사제들을 위한 묘지'가 있다. 산 정상에 성당이 있으며, 치명자산 입구에는 주차장 및 기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후삼국 시대 견훤의 거점이었던 옛 전주성의 흔적인 동고산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9 국립전주박물관


전주시 삼천동에 위치해있으며, 전주 역사박물관이 같이 있다. 김제 금구 가는 방향에 위치해있다. 조금 더 지나면 '전주 가족랜드'가 있다. 자세한 것은 국립전주박물관 문서 참조.

2.10 한국전통문화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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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비와 시비를 들여 건립하고 2015년 4월에 개관한 문화전당이다. 전통문화산업의 발전과 거점 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전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주문화관과 한지나 국악 등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는데 상당히 고퀄리티다. 또한 문화행사와 축제가 자주 열리고 있으며 최근 전주에 새로 생긴 새로운 문화 시설로 자리잡고 있다. 한지산업지원센터 등 전통산업을 육성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1. 영화 화려한휴가의 놀이공원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으니 말 다했다.
  2. 연장운행은 평화동 사거리까지만 한다. 거마평로, 신시가지, 혁신도시 방면은 가지않으므로 이용에 주의할 것. 또한 22시 35분 막차 또한 전주시 특유의 과속을 자랑하여 상기된 23시즈음에는 양지중 근방을 지나고 있다.. 참고할 것.
  3. 소재지인 동산동/조촌동의 중심가에서도 살짝 벗어나 있다
  4. 위키백과 해당 문서에서 인용
  5. 서울 외에는 한반도 유일한 곳이며, 서울 사직단과 종묘 코 앞에 성당이 들어설 가능성도 낮으므로
  6. 관찰사와의 연락을 위해 파견된 지방 아전
  7. 지금의 전주초등학교. 경기전 옆의 중앙초등학교와는 무관하다.
  8. 살아있는 왕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므로 서울의 궁궐 등에서 치러지는 것에 비하면 조촐하게 치러진다.
  9. 고산 윤선도 6대손. 제사를 지내길 거부하고 신주단지를 불태워서 논란이 되었던 사건의 주인공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10.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을 때 복자로 시복된 124위 순교자 명단에 가장 첫 번째로 오른 인물.
  11. 참고로 단팥빵은 전주시 올로케로 촬영했다고 한다. 드라마를 통해 전동성당 외에도 많은 명소가 소개되기도 했다.
  12. 현판에 글씨를 쓴 사람은 1606년에 명나라에서 파견한 사절단의 정사인 주지번인데, 이 사람이 1593년 조선 사신단의 서장관으로 명에 간 표옹 송영구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다. 정사로 파견된 후 전주(지금은 익산 왕궁면)에 기거하던 스승의 행방을 찾으러 내려오면서 객사에서 하룻밤을 잔 김에 써 준 것. 당시 주지번은 명나라 3대 문장가로 손꼽혔다고 한다.
  13. 객사의 현판이 풍패지관이 된 것과 같이, 여기도 풍패에서 앞의 풍 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지금의 서문교회 부근에 있던 서문도 이때 패서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일제강점기때 도시계획에 의헤 철거되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14. 전주신협 광장이 만들어진 이후 풍남문이 바로 보인다. 광장에서 보드, BMX 등을 즐기는 인원도 상당히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