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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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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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

1 개요

묘표에 새겨 고인(故人)을 기념하는 명문(銘文)이나 시문(詩文).

조선시대의 경우 유교적인 관습에 따라 관직명을 올리는게 보통. 대다수의 경우 관직이 없기에 관직에 오르지 못한 학생이라는 의미로 학생부군신위라고 쓴게 보통이다. 이런 관습은 꽤 최근 까지 남아있어, 공무원들의 경우 5급 사무관 이상들의 경우 묘비에 직급을 쓸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이든 6급 주사들은 묘비명 때문에 승진을 하려고 했을 정도.

서구권의 경우 사람인생을 나타내는 것이며 대부분 고인이 죽기 전에 새겨달라고 부탁했던 말이나 고인을 기리는 좋은 말을 써준다.[1] 그러나 위인들 중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유언이나 부탁을 통해 뭔가 이해가 안 되는 문양이라든가 암호를 써놓기도 한다.

간혹 고인의 삶을 단문이나 등의 문학적 형태로 새겨넣는 때도 있다. 문학적인 묘비명에는 작자와 시대의 취향에 따라 깊은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우스꽝스러운 것, 때로는 죽은 사람에 대한 냉소(冷笑)를 나타내는 것 등의 여러가지가 있다.

게임영화 등에선 뭔가 숨겨진 보물창고의 입구나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기도 한다.

1.1 역사

묘비명은 매장의 양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묘비명은 미라를 넣은 (棺)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죽은 사람의 나이와 관직, 이름 등의 간단한 사실들만 새긴다. 그리스 묘비명의 대부분은 단순히 이름과 고별의 뜻을 나타낸 것이 많으나, 거기에 아름다운 시구(詩句)를 곁들인 것도 있다. 이는 엘레지조(調)의 형식이며, 묘비명의 걸작은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의 명예로운 전사자를 애도한 시모니데스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묘비명은 다른 기념 각문(刻文)과 함께 발달하여 '에피그램'이라는 문학 장르의 일부를 형성하였다. 로마의 묘비명은 그리스와는 달리 원래 단순한 사실만을 새겼다. 그리고 로마 묘비명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지나가는 사람의 주의를 끄는 말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며, 그 때문에 통행인이 많은 길가에 묘를 세웠다. 그리스도교 신도의 묘비명은 고전시대의 그것을 계승한 것으로 실제로 13세기까지는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그대 위에 흙이 가볍기를(sit tibi terra levis)"이라는 로마 이래의 상투문구를 그대로 썼다. 16세기에 들어와 묘비명은 문학으로 취급되어 유명한 비명(碑銘)이 시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1.2 유명한 사람들의 묘비명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던 사람, 여기에 잠들다.
  • 근대인의 고뇌를 그린 장편 철학시 〈오디세이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등으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는 평소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잘 담아낸 묘비명을 남겼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ό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εύθ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인간의 존재와 고독을 평이하고 자연스런 언어로 표현한 시인 조병화는 자신의 묘비명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2]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 대철학자이자 계몽주의 사상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묘비명은 윤리의식 강한 학자의 사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날이 갈수록 내게 더욱더 새로워지는 것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3]
  • 영국의 극작가이자 비평가, 소설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은 CF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과 생활 속에서 늘 풍자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인만큼 묘비명도 익살적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4]
  • 통계역학의 기틀을 설립한 열/통계물리학의 아버지인 이론물리학자 루트비히 에두아르트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의 묘비명은 극단적으로 짧으면서도 지극히 강렬하고 알흠답다.
S=klnΩ[5]
  • 대수학의 아버지인 디오판토스의 묘비명은 이렇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들 한 번씩은 보게 되는 유명한 묘비명으로 덕분에 간혹 고인을 모독하는 사람도 있다.
보라 ! 여기에 디오판토스의 일생의 기록이 있다 일생의 6분의 1은 소년이였다. 그리고 12분의 1 후에 수염이 자라고 다시 7분의 1이 지나서 결혼을 하였다 5년이 지나 아들을 낳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나이의 꼭 반을 살았으며 아들이 죽은후 4년뒤에 죽었다.[6]
  •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오명으로 잘 알려진 니콜로 파가니니의 묘비명은 의외로 평범하다.
제노바 태생의 천재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 여기에 잠들다

솔직히 이렇게 평범한 묘비명이 여기 적혀도 되는지 모르겠다

  • 미국 제3대 대통령토머스 제퍼슨의 묘비명은 이렇다. 대통령을 지냈으면서도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넣지 않았다는 게 포인트. 사실 이 생몰년을 제외한 문장은 제퍼슨이 사망하기 전에 직접 정한 묘비명인데 이렇게 정해 놓은 후 가족들에게 여기서 단 한 단어도 추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의 제안자,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여기 잠들다. 율리우스력 1743년 4월 2일 나서 1826년 7월 4일 졸하다
  • 조선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묘비명은 이렇다. 이 묘비명은 퇴계가 죽기 직전에 직접 정한 묘비명이라고 하는데, 이게 특이한 이유는 퇴계도 조정에서 벼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함들을 다 빼고 적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묘비명에는 죽은 사람이 관직에 몸담았을 경우 그의 관직들을 다 넣는 것이 관례.[7]그런데 퇴계와 대립했던 남명 조식은 이를 두고 "벼슬 안 한 나도 처사 칭호가 부끄럽거늘 지가 무슨..."이란 식으로 비꼬았다고 한다.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8]
  • 고대 그리스 (정확히는 시칠리아)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사실 아르키메데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망 당시 로마군의 시라쿠사 함락으로 난리통인 상황에서 여전히 그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무슨 수학도식을 풀고 있었다고 한다. 때마침 약탈하러 온 로마 병사에게 '그 그림에 손대지 말라'라고 말했고(결국 이 말은 유언이 되고 말았다.) 빡친 로마 병사의 칼에 그는 죽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사령관 마르켈루스는 이 소식을 듣고 애석해하며 아르키메데스의 묘비명에 그가 마지막으로 연구했던 것을 묘비명을 새겨줬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묘비명/아르키메데스.jpg 원통의 내면적과 원구의 면적 비율은 3:2다.
  •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의 묘비명은 소파의 일생을 간결하지만 확실하게 보여주는 묘비명이다.
童心如仙(동심여선: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 어린이의 동무 소파 방정환의 묘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전능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9]
  • 1666년 대화재로 전소된 런던 시가지와 세인트 폴 대성당 복구 작업에 참여한 크리스토퍼 렌은 자신이 설계한 세인트 폴 대성당에 안장되었는데, 그의 묘비명에는 건축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바쳐졌다.
여기 이 토대에 이 교회와 도시의 건축가이며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하여 90년 넘게 살았던 크리스토퍼 렌이 누워 있다. 읽는 이여, 그의 기념비를 찾고자 하거든 그대의 주위를 둘러보라. 1723년 2월 25일, 91세를 일기로 사망.
  • 덕혜옹주의 묘비명은 대한제국의 황녀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세상을 떠난 옹주의 일생을 함축적으로 나타냈다.
大韓 德惠翁主之墓(대한 덕혜옹주지묘)
  • 대한민국의 공수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의 묘비명은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비. 이게 특이한 이유는 정병주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데, 원래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된 묘에는 간단한 약력이나 추모 글귀가 새겨져 있기 마련이지만 정병주의 묘비에는 계급과 이름만 적혀 있고 이런 것이 하나도 적혀 있지 않다. 이는 유족들의 뜻인데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살아 있는 세상에서 돌아가신 분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뜻이라고 한다.
육군소장 정병주의 묘(앞면) 一九八九년 三월 四일 경기도 고양군 산중에서 별세(뒷면)
  • 개그맨 김미화가 미리 지어놓은 자신의 묘비명은 개그맨의 묘비명 그 자체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 실제 아이작 뉴턴의 묘비명이 아니지만 알렉산더 포프의 찬사는 너무나 유명해서 묘비명으로 잘못 알려져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신이 “뉴턴이 있으라! 하시자 세상이 밝아졌다
  • 고려 말의 명신 포은 정몽주의 묘비명은 이렇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미건조하고 특이점도 없는 평범한 묘비명이지만 영원한 고려의 충신으로 남은 그의 삶은 물론이고, 그를 존경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심정이나 평가도 모두 엿볼 수 있는 묘비명이다. 덧붙여 정몽주의 묘비는 조선 중종 때 유학자들이 세운 것인데, 원래 당대의 묘비명에는 추증된 관직이나 생전에 몸담은 관직까지 모두 넣는 것이 관례이지만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이라는 이유로 조선 태종이 추증한 관직명은 빼고 이렇게 지은 것이라고 한다.
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고려 수문하시중 정몽주지묘)
  • 신라 삼국통일의 제1공훈자인 김유신의 묘비는 두 개. 모두 당대가 아니라 후대인 조선시대에 세워진 묘비지만 살아서는 태대각간이라는 최고 직위를 누렸고, 죽어서는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입지를 잘 보여주는 묘비명이다. 덧붙여 두 번째 김유신의 묘비에 물이 묻으면 '능(陵)'이라는 글자가 '묘(墓)'로 바뀐다는 사실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
  • 이소룡의 묘비명은 본명인 '이진번,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고
founder of jeet kun do (절권도의 창시자)
라고 새겨져 있다. 그 옆엔 아들 브랜든 리의 묘비가 나란히 있다.
  • 조선의 독립과 조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해 일본인임에도 발벗고 나섰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그의 인생 역시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 한때 전 세계의 절반을 호령하던 사상인 공산주의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의 묘비명은 공산당 선언에서 따 왔다.

짧고 강렬하며 자신의 사상을 가득 담은 묘비명이 특징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미국이 크게 자랑스러워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마 모르는 이는 없을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묘비명은 전혀작가답지 않은 하나의 문장이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2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읽어보면 참 씁쓸하다.

3 킹 크림슨의 노래 Epitaph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킹 크림슨히트곡.

3.1 죠죠의 기묘한 모험스탠드

에피타프 항목 참고. 이름의 유래는 1번이 아니라 3번 항목이다.

  1. 그는 좋은 남편이었으며 훌륭한 아버지, 믿음직스러운 친구, 인생이 업적 등.
  2. 정확히는 묘비명이 아니다. 조병화 서재이자 오늘날 조병화문학관으로 쓰이고 있는 경기도 안성 편운재의 조형물에 새겨진 시로 제목은 <꿈의 귀향>이다. 다만 조병화 시인의 묘소가 편운재 바로 옆에 있고, 시인 본인도 이 시를 자기 묘비명으로 삼겠다고 말했으니 묘비명으로 봐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생전에도 "내 사상적인 모체도 어머니이다"라며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시인의 모친 묘소도 함께 있다.
  3. 이는 칸트의 대표적인 철학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4.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직역하면 「내가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지」이다.
  5.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이 식은 엔트로피를 나타내는 식이다. S=엔트로피, Ω=해당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 그리고 k=볼츠만 상수를 의미한다.
  6. 디오판토스의 나이를 x로 놓으면, 'x/6 + x/12 + x/7 + 5 + x/2 + 4 = x'라는 식이 성립된다. 양 변을 계산하여 해를 구하면 디오판토스의 나이는 84세이다. 정상적인 풀이는 그렇고…. 사실 1/7, 1/12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곧 나이가 이들의 공배수였다는 것과 같고, 7과 12의 공배수 중 사람의 나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최소공배수이기도 한 84뿐이다.
  7. 가령 충무공 이순신의 묘비에는 '증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덕풍부원군 행 정헌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충청전라경상삼도수군통제사 시 충무이공순신지묘'라는 엄청 복잡한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8. 도산에서 물러나 만년을 숨어산 진성 이씨의 묘
  9.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