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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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강수정(姜水晶)
생년월일 : 1977년 6월 29일
키 : 168cm
학교 : 숙명여자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생활디자인학과, 동 대학원 언론홍보대학원

1 개요

전직 KBS 간판 아나운서.

2 활동

2002년 KBS 28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KBS부산방송총국 지방 순회 근무시 KBS 부산의 9시 뉴스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은 바로 여걸파이브(이후 여걸식스로 개명). 지금의 무한걸스같은 여성 단체 예능의 기본을 거의 다 만든 여걸 5에서 강수정은 168cm의 훤칠한 키와 아나운서 이미지에 괜찮은 외모로 조혜련, 정선희, 이혜영, 현영[1]등이 같이 있던 MC들 중에선 상위권이라 인기가 있었다. 이 때부터 안티가 조금씩 생겨났다. 남자 스타 출연만 하면, 손냄새를 맡는다던가(...)...

공부하세요 노현정 이후 KBS에서 아나테이너를 키우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 그나마 성공적이었던 인물. 그러나 그 의도가 너무 눈에 보이는데다가 여걸파이브 때 사용했던 공주기믹 때문에 엄청나게 안티가 늘어나서 이후의 방송행보에 크게 걸림돌이 되었다.

정세진의 뒤를 이어 클래식 오디세이를 2005년 7월 8일 부터 2006년 3월 9일 까지 진행을 맡았다. 아나테이너가 어울리지 않게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된 것을 두고 시청자들[2]의 우려가 많았으나, 정세진이 후배 강수정을 적극 옹호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 그 이전에 세상은 넓다 등에서는 보여준 제법 감칠맛나는 진행 솜씨를 무색케하는 발진행으로 출연 기간 내내 시청자 게시판에서 까였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다 하차하였다.[3]

해피 선데이 등 KBS의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창 잘 나갈때 2006년 KBS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같은 예능 출연이지만 뉴스 앵커를 하며 아나운서를 유지한 노현정과는 달리 예능MC 쪽의 길을 가게되었고, 결국 2006년엔 프리 선언이후 MC로 사실상 전업했다.

홍콩 금융계에서 일하는 모 펀드메니저와 밀회 끝에 결혼하였다.

강수정 결혼생활의 알려진 일면.

웬지 프리 선언한 이후부터 고정출연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몇 주 이내에 말아먹거나 종영시키는 징크스가 생겨서 말아먹는다고 '국밥', '파괴의 여신' 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며 심지어 잘 나가던 프로그램도 강수정이 투입되면 급격히 말아먹으니 강수정 본인이 못하는 건 아님에도 이렇게 망하는 건 정말 징크스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김성주와 달리 프리선언 초기에는 경쟁 방송사였던 MBC, SBS 등에서 환대받으며 굉장히 잘나갔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는 케이블 쪽에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PD가 이 징크스가 두려워서 강수정을 기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케이블 TV도 강수정의 네임밸류 때문에 기용하는 것이지, 케이블에서도 여전히 잘 안풀리는 모습,

본인이 능력도 되고 노력도 하는데 이런 걸 보면 정말 딱할 지경. 심지어 본인 스스로 파괴의 여신이라고 자신을 분석한 글을 보고 공감했다고 할 정도로 안습해져 버렸다. 숱한 아나운서들이 방송사의 아나운서실이라는 철의 장막 안에 있을 때는 방송사의 후광으로 인해 능력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이 후광이 없어짐과 동시에 처참하게 몰락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그녀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아 보인다.

친오빠 강동원TV조선 기자 겸 앵커로 근무 중이다.

2011년 4월, 쌍둥이 출산 3개월을 앞두고 유산을 해 홍콩에서 요양했다. # 2014년 8월 아들을 출산했다. #

2016년 9월 MBN에서 방송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청백전-사이다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방송에 복귀한다.
  1. 조혜련, 정선희만 종영까지 고정이고 이혜영, 현영 등은 중간 합류.
  2. 심야 시간의 클래식 음악 방송이라 대부분 고정 팬이다.
  3. 전임자 정세진이 무려 5년 동안 진행하였는데 그의 분위기와 진행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강수정의 진행이 상대적으로 많이 미흡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클래식 음악에 아무런 소양도 애정도 없이 건성으로 어설프게 진행하는 모습이 클래식 애호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말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고선 좋은 진행을 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 후임자는 박지윤이었는데 당시 신입으로서 스포츠 뉴스에서 인기를 올린 그였기에 역시 일부 우려가 있었으나 처음 우려와 달리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