耿鄙
(? ~ 187)
후한 말의 관원.
양주자사로 영제 말에 관원을 선발하는 일에 정구에게 일을 맡겼는데, 정구가 이익을 챙겨 백성들의 원망을 사자 부섭이 이에 대해 충고했으나 경비는 듣지 않았다. 결국 백성, 이민족들이 분노해 왕국 등이 저족, 강족과 합쳐 봉기하자 이로 인해 주, 군 등에서는 백성 중에 용력을 갖춘 자를 모집해 이를 토벌하고자 하면서 이에 응모한 마등을 발탁하게 된다.
갑훈은 경비의 실정으로 인해 경비가 패배하리라 생각해서 스스로 관직에 물러나 집에 돌아갔다고 하며, 187년에 경비는 6군의 병사를 거느리고 금성현의 한수를 공격했지만 이상여, 마등, 주의 별가 등이 한수에게 호응하면서 경비는 살해당했다.
창작물에서
삼국지 가후전에서는 강족을 토벌하기 위해 마등과 함께 좌익을 담당했으며,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한가하게 북소리나 기다리겠냐고 하면서 다 때려부수고 중앙의 본진까지 접수하겠다고 했다. 경비가 가장 먼저 강족을 공격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을 안 마등이 선수를 쳤다면서 공격 명령이 내려오기 전에 마등도 강족의 본진으로 출정했다.
한수의 난이 일어나자 동탁에게 보고하는 전령에 따르면 한수가 한양성을 공격하자 경비가 한양성을 버리고 달아났으며, 적도에서 부섭과 합류했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마초와 마등의 과거에서 양주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병사로부터 토호 경비가 살해당했다는 보고로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