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숙좌

公叔痤
중국 전국시대 인물. 나라 재상.
기록에 따라 좌(座) 또는 공손좌(公孫痤)라고 나온다.

위나라 무후(武侯) 때 재상 전문(田文)이 사망하자 뒤를 이었고, 혜왕(惠王) 때 , 연합군을 대파했다.
위나라 전성기의 끝물을 장식한 재상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업적보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두 걸물과 얽힌 일화가 자주 언급된다.

먼저 무후 때 오자(吳子)로 유명한 장수 오기를 모함해서 쫓아냈고, 자신의 식객으로 있던 상앙의 재능을 간파하고 죽음을 앞두고 주군인 위나라 혜왕에게 후임자로 천거했다. 사기 열전에 나오는 일화는 이렇다.

공숙좌는 상앙을 추천하며 쓰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죽여버리십시오했지만 평소 아끼던 사람인지라 상앙을 따로 불러 '널 천거했는데 왕은 탐탁찮은 눈치더라. 살려면 튀어라'하고 귀띔을 했다. 그런데 상앙은 님이 중용하라는 당부도 씹는 왕이, 죽이라는 말은 귀담아 듣겠습니까?하고 일축했다. 아니나 다를까, 혜왕은 '공손숙이 죽을 때가 되니 아주 정줄 놨구먼. 상앙은 뭐하는 듣보잡임?'하고 씹었다.

공손숙이 죽고 위나라에선 관운이 막힌 상앙은 나라로 갔고, 유명한 상앙의 변법으로 진을 일대강국으로 만든다. 훗날 진은 신나게 위를 쳤고…야 신난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재능이나 실력이 부족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근본적인 보수적인 성향으로 인해 개혁 지향의 인재들이 외부로 방출되는 것을 방조하거나 막지 못해 국가의 백년대계의 구축에는 실패한 인물이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