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원갑

霍元甲
1868~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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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무술인. 자는 준경(俊卿). 연청권(燕靑拳)의 달인이자 연청권을 전파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직례성(直隷省)청해현(静海県)(지금의 천진근처)의 무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몸이 약한 탓에 병약한 아들이 가문의 이름에 오점을 남길 것을 우려하여 부친이 무술을 가르쳐주지 않아서 가족의 무술연습을 몰래 훔쳐보며 독학했다고 한다. 24세때에야 비로소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아[1] 정식으로 비종권을 전수받게 되었다.

친한 친구인 농경손(農勁蓀)이 손문의 부하였기 때문에 그 때문에 손문과 연결이 있었다고 한다.

1910년 상해서 친구 농경손과 함께 정무체육회(精武體育會)를 공동으로 창립했다. 하지만 정무체육회를 만든지 3개월만인 1910년 9월 14일 급사한다. 공개무술시합에서 일본인 무술가에게 이기는 바람에 원한을 사서 일본인에게 독살당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이는 속설일 뿐이고 가족 및 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실제로는 지병인 폐경변으로 사망하였다고[2]한다.

사망한지 10년 뒤에 손문이 그를 중국 무술계의 선구자로 추도하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정무문의 주인공이 되었고 드라마로도 몇번 제작되었다. 1981년에 홍콩에서 제작된 드라마의 주제곡인《만리장성영불도(萬里長城永不倒)[3]》는 홍콩의 유명 노래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소룡영화 정무문에서 가공인물인 제자 '진진'[4]이 곽원갑의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그렸다. 그 밖의 많은 정무문 시리즈에서 사망자(…)로 출연. 예외로 견자단이 주연한 TV시리즈에선 중반까지 메이저급 출연을 하면서 후덜덜한 무술실력을 뽐냈다. 명실공히 극중 최강자였지만 독살당하는건 똑같다.

이연걸이 할리우드 생활을 하다가 오래만에 이쪽으로 컴백해서 찍은 영화가 '무인 곽원갑'. 역시나 일본인에게 독살당하는 최후를 맞이한다는 결말. 전기 영화로 치기엔 과장된 면이 꽤 있다. 특이한 점은 이연걸이 정무문에서 곽원갑의 제자인 진진의 역할도 맡았고, 그 스승인 곽원갑도 연기했으니. 스승과 제자 역할을 둘 다 한셈. [5]

어찌 보면 반일 및 애국마케팅의 피해자?

덤으로 곽원갑이 독살당하는 내용의 영화/드라마가 여럿인데 거기서 상대편 무사도 다른 인격으로 나온다.

정무문에서는 진진이 상대를 발라버리고 너같은게 우리 스승님을 이겼을리 없다 고 해서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고 마침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다. 모독감을 느끼고 사건의 흑막이자 최종보스인 일본군인을 찾아가 따지다가 끔살당하고 이를 진진이 원수를 갚으려고 살해한것으로 뒤집어씌운다.

무인 곽원갑에서는 나카무라 시도 (극중 이름 안도 타나카)가 연기했다. 대결 전 차를 함께 마시며 무술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등 무술가로서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4대1로 불리한 승부를 주선했던 일본 상인에게 반감을 갖고 나중에 정정당당한 승부를 겨뤄보자 했지만 곽원갑이 거부하여 시합을 속행한다. 무술대회에서 곽원갑이 중독되자 시합중지를 요구하며 배려했으나, 곽원갑이 속행을 원하여 승부를 펼쳤다. 곽원갑은 시합 중 피를 토하는 등 매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고 회심의 일격을 날렸으나 살생을 피하고자 주먹을 거두었고 홀가분한 미소와 함께 쓰러진다. 타나카는 승리를 선언하려는 심판을 막고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며 내려간다. 시합 후 흑막이었던 일본 상인이 무슨짓이냐며 따지자 역으로 너는 일본의 수치다 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대륙에서 찍은 드라마는...그냥 단순한 악역이다. 사전에 독을 탈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역관광으로 터진다.
  1. 무술가와의 시합에서 승리하였다고 한다.
  2. 당시 열렸던 공개무술시합은 국가간의 충돌같은 험악한 분위기가 아닌, 순수하게 무를 겨루는 우호적인 시합이었다고 한다
  3. 덕분에 이 노래를 불렀던 엽진당(葉振棠)의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만리장성은 영원히 넘어지지 않는다 라는 뜻이다. 여소전(黎小田) 작곡, 노국점(盧國沾) 작사.
  4. 모티브는 곽원갑의 제자인 진공철(陳公哲)이라고 한다.
  5. 이연걸은 역시 스승과 제자 사이인 장무기와 장삼풍 역을 둘 다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