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릭 리 구톰슨(Rick Lee Guttormson) |
생년월일 | 1977년 1월 11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캘리포니아 |
포지션 | 투수 |
출신교 | 에드몬즈 커뮤니티대 |
체격 | 188cm, 91kg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5~200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2008) KIA 타이거즈(2009) |
1 개요
Rick Lee Guttormson. 前 KIA 타이거즈의 투수 (우투우타).[1]
2 일본 프로야구 시절
06년도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바 있다. 05,06년도의 기록은 17승 15패 방어율 3.21을 기록. 07,08년도 후쿠오카 소프트 뱅크 호크스로 이적하여 10승 14패 방어율 3.74를 하였다. 일본에서 4시즌 뛰면서 총 27승29패 방어율 3.52를 기록하였다. 소프트뱅크 재적시에는 팀타선과 불펜이 막장기니를 보여서 1년에 5승씩밖에 못했다. 내용상으로는 10승도 할 수 있었던 투구내용.
도핑테스트에 한번 걸려서 20일간 출장정지를 먹은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발모제에 있던 금지약물 때문이라고…. 그 발모제란게 프로페시아다. 시즌 전 구단 트레이너에게 써도 되는지 NPB 사무국에 확인해 보라고 부탁했는데, 소프트뱅크의 트레이너가 그냥 "괜찮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구톰슨은 트레이너 말만 믿고 계속 쓰다가 도핑적발 크리. 시즌 후 소프트뱅크의 트레이너는 잘렸다.
3 한국 프로야구 시절
3.1 2009년
로페즈와 함께 기아의 우승을 이끈 원투펀치
2009년 KIA 타이거즈와 계약금 7만 달러, 연봉 23만 달러에 계약하였다.
2009년 시즌 초반에는 리그를 휘어잡는 실력을 보였으나, 시즌 후반부터는 힘이 떨어져서인지 시즌 초반에 비해 5~6이닝이 한계였다. 일본에서도 주로 불펜으로 뛰었기 때문에 선발로서 풀 시즌을 뛰기에는 무리가 있을 법했다. 그래도 그 이닝 동안 거의 실점하지 않으며 KIA의 앞문을 책임졌다. 시즌 초반에는 6선발로 뛰면서 일요일에만 등판, 마치 귀족처럼 관리받는다는 점[2]이 백인에 꽤 나름대로 잘 생긴 귀족스러운 이미지와 합쳐져 구백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시기 동안은 완벽한 피칭을 했지만 중반 이후로 기아 마운드가 5선발로 전환하면서 점점 체력에 부담이 온 듯 점차 이닝이팅이나 투구수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시즌 막판까지 KIA 마운드의 한 축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2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고 습관을 들켜서 당한것 같다는 자체 평이 나왔다. 7차전에서 3이닝 2실점을 하였다. 그 2실점은 박정권에게 맞은 투런 홈런. 타구를 보고 중계진과 타자 박정권 주자 정근우 모두 파울인줄 알았는데 타구가 안으로 휘면서 정말 끝으로 들어왔다.
2009년 시즌은 13승(공동 4위) 4패, 평균자책점 3.24(6위), WHIP 1.21(2위)를 기록했다. 이렇게 엄청난 성적으로 KIA의 우승을 이끈 구로 원투펀치를 2010 시즌에서도 보길 바란 기아팬들도 많았지만, 재계약협상이 무산되며 결국 2010 시즌에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4 근황
2010년 시즌을 앞두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싱글A에서도 털리며 부진하였고, 코치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으나 이야기가 잘 안 풀린 모양. 결국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찾게 되었고, 2011년경부터 도요타 자동차 판매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뛰었던 팀 계열사 냅두고 왜?
5 별명
별명은 구동순, 구백작[3]등이 있었으나
운명의 그 사진
사실은 귀족이 아니라 라면셔틀이었음이 밝혀졌다. 덕분에 현재는 구셔틀, 구랍쉽 등으로 불리는 중(…).
6 여담
투잡을 뛴다는 의혹이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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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