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균여전(均如傳). 《대화엄수좌원통양중대사 균여전(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均如傳)》라고도 불린다.
고려 초기의 고승 균여(均如, 923년~973년)의 일대기를 적은 책이다. 고려 고종 29년(1075년)에 쓰여졌으며, 진사 혁련정(赫連挺)이 균여의 문도(門徒)들에게 자료를 제공받아 편찬하게 된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권 강탄영험분(降誕靈驗分)
제2권 출가청익분(出家請益分)
제3권 자매제현분(姉妹齊賢分)
제4권 입의정종분(立義定宗分)
제5권 해석제장분(解釋諸章分)
제6권 감통신이분(感通神異分)
제7권 가행화세분(歌行化世分)
제8권 역가현덕분(譯歌現德分)
제9권 감응강마분(感應降魔分)
제10권 변역생사분(變易生死分)
2 국문학적 가치
삼국유사와 더불어, 향가인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가 실려있는 책으로 유명하다. 사실 작품 자체는 불교 포교의 목적으로 쓰여져서 문학성을 높게 쳐주진 않는다. 그러나 균여전에 남아있는 여러 문구 덕분에 향가 연구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우선 삼국유사의 향가와 다르게, 보현십원가는 동시대에 살았던 최행귀가 한역(漢譯)한 향가라 지금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덕분에 여타의 향가를 연구할 때 중요한 참고 자료로 쓰이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하여 향가의 특징을 알아내는 데에 도움을 얻기도 한다.
(전략) 우리 동방으로 말하자면 마사(摩詞)와 문칙(文則)과 체문(體文)이 공문을 개척한 우아한 시편이 있었고, 원효(元曉)와 박범(博凡)과 영상(靈爽)이 원음(圓音)을 본보기로 삼았다. 혹 정수(定猷)와 신량(神亮)의 어진 분들이 한갓지고 다급한 시편(詩篇)을 남기었고, 순의(純義)와 대거(大居)의 준들이 우아한 시편을 지었으나, 모두 벽운(碧雲)으로 얽지 않음이 없지만, 그 맑은 시편을 맞볼 수 없으며, 백설(白雪)로써 묘한 소리를 전하여 들을만 하였다. 그러나 시(詩)는 당나라 말로 얽음으로써 오언 칠구(五言七句)로서 탁마(琢磨)를 하고, 가(歌)는 우리말로써 배열하여 삼구(三句)과 육명(六名)으로써 가다듬는다. 어성(語聲)을 논하면 어긋나기 삼성(參星)과 상성(商星)과 같아서 동서를 분별하기 쉽고, 이치를 의논하면 적대하기 창과 방패 같아서 강약을 가리기 어렵다. 비록 사봉(詞鋒)을 마주 드날렸으나, 족히 한가지 의해(義海)로 돌아갈 줄 알았고, 저마다 제자리를 얻은 것이니 내 어찌 좋다고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한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재자(才子)와 명공(名公)들은 당나라 글귀는 읊을 줄을 알지만, 저 땅의 거유(巨儒)와 대덕(大德)이라도 우리 노래는 알지 못한다. 하물며 당나라 글은 제망(帝網)과 같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읽기 쉽지만, 우리 글을 마치 범서(梵書)로 연철한 것 같아서 저 땅에서는 알기 어렵다. (중략) 대저 이와 같으므로 팔구행의 당문(唐文)으로 서(序)한 것은 뜻이 넓고 글이 풍부하지만, 11수의 노래는 사(詞)가 맑고 구(句)가 곱다. 그 지은 바를 일컬어 사뇌(詞腦)라 한다.[1]즉, 향가는 중국의 문학과 대비되는 우리 고유의 문학이며, 그 구조는 삼구 육명(三句六名)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이름을 '사뇌'라 부른다는 것이다. 흔히 향가를 '사뇌가'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2] 아직 '삼구 육명'에 대한 확실한 의미는 파악하지 못했지만,[3] 이와 같은 점에서 국문학 연구에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는 자료가 바로 균여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