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국의 역대 국왕 | ||||
8대 질지왕 김질 | ← | 9대 겸지왕 김겸 | → | 10대 구형왕 김구해 |
왕호 | 겸지왕(鉗知王) / 김겸왕(金鉗王) |
시호 | 숙왕(肅王)[1] |
성 | 김(金) |
휘 | 겸(鉗) / 겸지 |
생몰년도 | ? ~ 521년 4월 7일 |
재위기간 | 491년 10월 4일 ~ 521년 4월 7일 (29년) |
금관국 9대왕.
목차
1 삼국유사 가락국기
김겸왕(金鉗王)으로도 불린다. 영명 10년에 즉위해 30년 동안 다스리다가 정광 2년 신축에 붕했다. 왕비는 출충 각간의 딸 숙인데, 왕자 구형을 낳았다.ㅡ 《삼국유사》가락국기
2 소개
김겸왕(金鉗王),김겸지(金鉗知),김겸(金鉗)이라고도 불렸다. 김해김씨 족보에는 숙왕(肅王)으로 표기 되어있다. 30년동안 즉위했고 각간 출충(出忠)의 딸 숙(淑)과 결혼했다. 알려진 아들은 구형왕과 김탈지.
김겸지에서 나타나는 지(知)는 가야와 신라인의 이름에 붙는 어미로서 “님”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본명은 지가 빠진 "겸"이다.
30년간 즉위했는데 이게 기록이 다다. 물론 이 분에 비하면 그나마 기록이 있는 편이지만.
3 기타
전설에 따르면 "여의"라는 이름의 여자와 결혼한 "황세"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겸지왕이 이 둘을 파혼시키고 자신의 딸인 유민 공주의 부마로 삼았다. 그러자 여의는 파혼 후 자결했고, 황세 또한 여의가 죽은 사실을 알자 여의를 그리워 하며 자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민 공주는 황세의 자살후에 머리를 깎고 임호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 김해 김씨 족보에 기록된 시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