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대현 |
출생 | 1962년 6월 16일 |
사망 | 1988년 8월 27일 |
출신지 | 전주시 |
학력 | 전주고-원광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6년 드래프트 1차지명 |
소속팀 | 해태(1986-1988) |
1 소개
비운의 야구선수.
전주고-원광대를 거쳐 1986년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한다. 첫 해는 쟁쟁한 입단 동기들에게 밀려[1]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해태 2군에 짱박혀 있었지만, 두 번째 해인 1987년 9승 5패 3세이브, 방어율 2.78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OB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킬러로 유명한 OB 에이스 최일언과 두 차례 선발 대결을 펼쳐 모두 선발승을 따내며 해태의 KBO 한국시리즈 우승의 디딤돌이 된다.
그리고 이듬해는 후기리그 2/3을 소화한 시점(8월 27일)까지 7승 6패 3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생애 첫 10승의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과속운전을 하다가 앞에 있던 트럭과 충돌하며 세상을 떠난다 [2]
2 트리비아
여담이지만 최동원은 김대현의 죽음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주도한 계기였다고 한다. 함께 운동한 선수가 세상을 떠났지만 합법적으로 도울 방법도 없었고, 예전부터 야구선수의 최저연봉 하한선 제도, 연금제도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색깔론보다 동정론이 우세했던 당시가 기회였다 생각했다고.
참고로 최동원과 선동렬의 4번째 맞대결대의 해태 선발 투수가 바로 이선수였다.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 VS 최동원 항목 참조. 87년, 경기 당일 어께 컨디션이 너무 안좋던 김대현이 1회 1타자만 잡고 선동렬에게 넘겨준것.
마구마구에는 김도현이라는 가명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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