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연쇄 독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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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MBC에서 보도된 김선자의 사진

1 개요

김선자(金宣子, 1939~1997)(사형 당시 만 58세)가 저지른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검거된 범인이 여성인 연쇄살인 사건이며 대한민국에 서양 법과학이 들어온 이후로 최초로 검거된 사형수다.

김선자는 잦은 카바레의 출입으로 채무가 많았고, 도박으로 인해 을 빌린 뒤 그것마저도 도박으로 잃어 빚에 쪼들게 되자 채권자와 본인의 아버지, 여동생을 청산염[1]을 탄 건강음료를 먹여서 살해했다.

여기서 김선자의 범행이 잘 안 알려져 있는 이유가 있다면 체포된 연도를 보라. 1988년, 대부분이 아는 "1988 서울 올림픽"을 하던 시기이다. 결국 그녀의 사건은 88 올림픽과 함께 묻혀버렸다.

2 사건 경과

2.1 사건의 시작

1986년 10월 31일에 그녀는 이웃집에 살던 친구에게 함께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했고 그 친구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심한 경련과 호흡곤란으로 즉사한 뒤 사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으며 김선자는 그 사이 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을 가로챘다.

그 뒤 그녀는 1987년 4월 4일에 대담하게도 시내버스 안에서 일을 벌였으며 한 여성이 독극물 중독으로 버스에서 쓰러져 즉사했다. 그녀는 김선자와 함께 계를 하는 회원이었고, 이 때부터 김선자는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된다.

1988년 2월 10일에 김선자는 쌓여가는 빚독촉에 지쳐 가깝게 사는 김여인에게 접근하여 오늘 채무자에게 돈을 받을 것이 있으니 나와 함께 채무자를 보러 가자고 한다. 김여인은 김선자에게 받을 돈이 120만원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준다는 김선자의 말을 믿고 따라 나섰지만 나타난다는 채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당시 김여인은 김선자가 건넨 율무차를 마셨다가 계속 구토를 하게 된다.

이후 김선자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김여인은 구토 증세로 힘들어 했고 김선자는 내려서 건강음료를 사서 마시자며 권유하지만 김선자가 의심스러웠던 김여인은 김선자가 택시에서 내린 사이 차를 그대로 출발시키면서 살인미수에 그치고 말았고 김선자는 다시 김여인의 집에 방문해서 120만원을 김여인에게 갚은 뒤, 그녀의 안부를 챙겼다고 한다.

2.2 가족들의 사망

1988년 3월 27일에 김선자의 아버지 김종춘이 친척의 결혼식을 다녀오던 중 딸 김선자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시고 시외버스 안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아버지가 고령자인 것을 고려해 당시 법의학 지식이 없던 의사들에 의해서 노인성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진 것으로 마무리가 된 뒤 화장되었다.[2]

네번째 범행이 성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4월 29일에는 그녀의 동생 김문자(43)역시 아버지처럼 같은 변을 당했으며 독극물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심장마비로 처리되었다. 김선자는 동생 김문자에게 약 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상태였고 여동생이 사망했음에도 동요하거나 슬퍼하는 내색없이 사망 확인후 여동생의 집을 뒤져 금품 및 귀금속등을 털어갔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 김선자와 함께 여동생을 병원에 데려간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옆자리에 있던 김선자의 여동생이 버스 안에서 쓰러지자 김선자와 함께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병원에서 여동생이 위독하다며 큰병원으로 옮겨야한다고 하자 갑자기 김선자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여동생의 생명을 구하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여동생의 핸드백을 가지고 황급히 나가버리는 비정한 모습을 보여 청년들은 황당했다고. 이후 약 3개월 뒤인 7월 8일에 사촌조카인 손미림(46)도 같은 변을 당했으며 김선자의 사촌조카인 손미림씨는 김선자의 소개로 집을 사기 위해 현금 480만원을 들고 그녀를 만났다고 한다.

2.3 검거와 조사, 그녀의 최후

5명을 독살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김선자는 '증거를 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는 등 소란을 피웠고, 결국 검.경찰은 신당동 목욕탕 희생자 등 이미 묻혀 있는 시신 4구에 대해 부검을 결정했다. 경찰은 이미 장례가 끝난 시신을 유족들에게 어렵게 동의를 구하여 다시 부검하여 4구에서 청산염 성분을 검출했다. 이 때 무덤 속 시신에 대한 부검은 유족이나 수사당국으로서는 극도로 피하고 싶은 일이었고 관을 쪼개고 무덤을 헤집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데다 소득이 없을 경우에 쏟아질 세간의 비난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중 4구의 시신 중 3구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되었으며 가장 먼저 사망한 40대 여성의 시신은 너무 부패한 탓인지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가 없었고 이미 사망한 아버지 김종춘의 경우 화장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골에선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 없었다.

이어서 영장을 받은 김선자의 집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깜짝 놀라고 마는데, 그동안 그녀가 아버지, 동생, 친구 등을 살해한 후 훔쳐낸 물건들인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이 쏟아져 나온 것. 참고로 살인 용의자가 여성이라 여경들이 동원되었다.

이후 결정적인 증거는 다소 황당하게도 압수수색을 하던 경찰관이 김선자의 집에서 변을 보다가 발견했는데 쪼그리고 앉자 일본식 가옥 나무기둥 뒤에 난 작은 구멍이 보여서 손을 넣어 보니 돌돌 만 신문 뭉치 속엔 화공약품 회사에 다니는 친정 조카로부터 “꿩을 잡는다.”며 구한 밤알 크기의 청산염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 때가 줄곧 기세 등등하던 그녀가 고개를 떨구던 순간이었고 그렇게 20개월 동안 아버지와 동생을 포함해 5명의 목숨을 뺏아갔던 살인마는 사형을 선고받은 8년 후 1997년 12월 30일에 장기 미집행 사형수 22명과 같이 사형당했다.

3 기타

  1. 시안화칼륨으로 청산가리라고도 하며 이것을 먹으면 호흡독으로 즉사한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시안화칼륨 참조.
  2. 다만 이 건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되었다.
  3. #, 여기서는 김선자 실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명으로 처리했으며 사촌동생 손미림도 시누이 김진희로 변경했다.
  4. 여기서는 김선자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김선자는 이재숙, 실화극장 그날에서 시누이 김진희로 변경됐던 사촌동생 손미림은 김지원으로 바뀌었고 실제 범행에 사용된 독극물(청산가리)도 여기서는 '엑스투'라는 가칭으로 변경되었다.
  5. 여기서는 주인공을 제외하고 주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김여인의 이름은 김미선이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