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신토)

(신사참배에서 넘어옴)

神社 (じんじゃ)

이 문서는 본 문서의 일본어 발음인 진쟈,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부르는 신사참배 등으로도 모두 들어올 수 있습니다.

1 개요

일본의 민속신앙인 신토(神道)의 을 모시는 종교시설. 공식적으로 집계된 일본 내 신사의 수는 약 8만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사들까지 포함하면 30만은 족히 넘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교시설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서, 포교활동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층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종교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되어서는 포교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때는 포교가 있었고, 정복지에는 신사를 세웠다. 현재 서울 남산의 케이블카 자리는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토리이의 계단이 있던 자리이며, 부산광역시부산타워가 있는 용두산공원도 원래 용두산신사가 있었던 자리였다. 일본에서 신사는 한국으로 치면 절이나 교회처럼 흔한 종교시설이다.[1]

신사는 일반적으로 으로 둘러싸인 곳에 지어지며, 입구에는 신사의 대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토리이(鳥居)가 세워져있다. 한국의 홍살문과 비슷하다.[2]

번듯한 신사는 교외 외곽에 있지만 주택가나 시가지에 자리잡고 있는 신사도 의외로 많다. 이런 신사는 땅값 문제인지 그리 크지는 않다. 문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개방적인 구조인 것이 특징. 에 가면 의외로 무섭다.(…)[3] 신사에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지역 유지와 지역 단체의 관계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곳도 많다. 그런 이유로 어린이들이 낮에 놀이터만큼이나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종종 우리나라 의 삼성각이나 산신각처럼 절에 신사가 딸려 있거나, 신사에 절이 딸려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빈도는 우리나라와 달리 매우 낮고, 딸려있는 경우 그 규모는 우리나라의 삼성각이 그래도 제대로 된 건물 1채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은 거의 가건물이나 좀 큰 석등 정도 크기만한 안습한 수준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단, 큰 신사 안에 다른 신사가 딸려있는 경우 제법 구색을 갖춘 경우도 많다.

고대에 신사는 지금처럼 하나의 독립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 아니라, 숲이나 동굴 등 특정 장소를 신성한 장소로 지정하고, 의식을 거행할 때 신이 그곳으로 찾아오도록 하는 식이었으나,[4]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처럼 신사 건물을 짓고 신을 모신 뒤 인간이 찾아오는 식으로 변한 것이다. 신사 건축양식 역시, 현대의 신사 건축은 에도 시대 유행하던 신사건축양식인 복고 양식이 점차 고착화된 것이다.[5]

신사의 관리와 의식의 진행을 맡고 있는 사람을 신쇼쿠(神職, 신직) 또는 칸누시(神主, 신주)라고 한다. 한 신사에 여러명의 신쇼쿠가 있는 경우도 있으며, 그 중 최고 책임자를 구우지(宮司)라 하고 그 아래로 네기(禰宜), 곤네기(権禰宜)등의 직책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는 신사에 따라 다르며, 구우지 이외의 신쇼쿠가 존재하지 않는 신사도 있고, 구우지 아래에 곤구우지(権宮司)라는 직책을 두는 신사도 있다. 신쇼쿠의 대부분은 남성이지만 일부 여성 신쇼쿠도 존재하며 이들은 무녀와는 다르다. 신쇼쿠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진학하여 신도를 배운 뒤 시험을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6]

신을 모신다고는 하지만, 일본 신화에 내려오는 신 외에도, 지역고유의 토속신, 국가나 지역에 큰 기여를 한 위인을 모시거나 심지어 악령을 위안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지기도 한다. 특히 일본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메이지 유신 지사들이나 군인 등, 근대 일본에 기여한 인물들을 모시고 있어 신사라기보다는 국립묘지(한국으로 따지면 현충원)같은 의미가 강한데, 이 중에는 유족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한국인이나 대만인, 류큐인 전사자들도 있어서[7] 거센 항의를 받고 있고 태평양 전쟁의 전범들도 포함되어 있어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때문에 A급 전범들을 모두 분사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일제강점기 후기에, 황국신민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신사를 설치하고, 수많은 한국인을 강제로 참배하게 한 아픈 기억이 있어, 어르신들한테는 좋지 않은 이미지로 비춰질 때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나라에 많은 수의 신사를 건설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서울특별시 남산에 세워졌다는 조선신궁이 있고[8] 해방 후에 거의 대부분이 일제 지배의 상징으로 여겨져 민중들의 손으로 파괴되었다. 대한민국에는 소록도와 목포에 일부 부속건물이 남아있는 등 신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흔적으로만 남아있을 뿐, 실제 신을 모시고 참배하는 신사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이미 모두 없어졌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한국의 일반인들 중에는 신사 자체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더군다나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그 시대를 사셨던 어르신이라면 우상숭배와 엮일 수 있는 문제이니 더더욱 치를 떨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엔 신사에 참배하거나 에마를 봉납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지만,[9] '신궁'이라는 이름이 붙은 신사의 경우 덴노 일가나 그 조상과 관련이 실제로 있거나 혹은 있다고 주장하는 신을 모시는 신사이므로,[10] 그 중에서도 메이지신궁 같은 일제의 침략과 연관이 있는 곳에서 한국인이 참배하거나 소원을 빈다거나 하는 건 역사적 상식의 무지라고밖에 볼 수 없는 썩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라는 의견이 있으니 주의할 것.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주변에 우익단체들이 죽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구경 삼아 가는 것조차 위험하다.

한국에서 한국인의 신사참배에 갖는 인식을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반백년 전에는 때려 죽여도 안 가려고 했던 곳을 요즘은 제발로 찾아가고, 때려 죽여도 안 하려고 했던 것을 하려 한다.'로 표현할 수 있다. 특히 보통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었고,[11] 그 때 반감을 가지고 피해를 입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으며 신사참배가 일제의 '내선일체'(를 빙자한 민족말살정책)에 악용되었다는 것이 한국의 국사, 근현대사 정규 수업에서 언급되는 만큼 두 나라간의 과거의 앙금이 진정성 어린 사죄와 용서로 풀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바뀌지 않을 인식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기독교 계열 종교 중, 천주교에서는 종교적 의미가 아닌 조상 공경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부를 달아 신사 참배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개신교(성공회 포함)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제사 허용 여부하고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신사 안에는 위패의 형식이 아니라 신체(神體)로 신상(神像)이나 거울을 모셔 놓는다. 특히 거울(신경 神鏡)이 신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신상이 있기도 하고, 또 조상숭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엄연한 종교행위기에 우상숭배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신토는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는 만신사상에 가까운 신앙이다. 개인의 악행이나 선행도, 해당 개인이 악하거나 선한 것이 아니라 신이나 악귀가 깃들어서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죽은 후에는 정화하는 의식을 거쳐 신이 거하는 사당에 안치하며, 이때 해당 사람의 죄나 악행이나 선행, 관련된 모든 과거에 대해 용서하고, 그 자리에는 이승의 삶에서 만들어진 인과에서 벗어난 순수한 혼을 묻는다고 여긴다. 이는 일본의 전체주의나, 개인의 문제가 집단의 책임으로 커지는 모든 사건에 대해서 해당 인물이 죽고 나면 사건 자체를 묻어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습관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누구 제사를 유족 중 누가 지낼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이 기준을 지키지 않고, 즉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할 사람이 제사를 지내면 혼령이 불편해한다고 여겨서 금기시했다.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가 정착한 뒤에 어느 집안의 딸이 시집간 뒤 친정 부모님 제사를 지내자 친가 쪽에서 불쾌하게 여겼는데, 이에 딸이 "그러면 야스쿠니 신사에 혼을 모신 집안은 전부 혼령이 불편해 하는가?"라고 되물어 친가를 버로우시킨 적이 있다. 바꿔 말해서 야스쿠니 신사는 그만큼 일본 전통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이며, 이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가 정착하자 기존의 일본 전통과 충돌하게 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존 일본 전통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는 제사를 지낼 권리가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다.

또한 일본 내에서는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인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모셔지는 것은 매우 싫어한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자위대 대원이 임무 중에 사망하여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모셔지게 되었는데, 이걸 빼내기 위해 일본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아스쿠니 신사 문제위원회를 만들어 법정투쟁까지 나섰지만 패소했다. 유족 : 예수님을 믿었던 우리 가족이 왜 거기 있나요?? 빼줘요!! 법원:신으로 모셔주는 데 뭐가 불만이야. 헌법상 정교분리? 그게 뭐더라?#,#,# 현재는 한국 기독교계 관련 단체와 연계해 계속 이러한 강제합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지만 워낙에 일본 내에서 규모가 작은 집단이라 잘 되지는 않는 모양.

2 참배 과정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지라 새전만 던져넣고 대충 기도하면 참배가 끝인 줄로 아는 사람도 많으나 진지하게 참배를 목적으로 신사를 방문하는 과정은 꽤나 복잡하다.

신사에 도착하면 토리이 앞에서 가볍게 고개만 숙여 절 한번. 토리이를 지나 신전까지 가는 길에서는 길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로 걸어야 하며 [12]길에 깔린 자갈들은 조금 끌듯이 해서 소리를 내면서 걸어야 한다.[13], 중간에 물이 나오는 곳으로 가서 바가지에 물을 받아 양손을 씻고 입을 헹군다.[14] 본전에 도착하면[15] 고개 숙여 인사를 2번 한다. 박수를 크게 2번 친다.[16][17][18] 그 다음 신에게 기원한 뒤 마지막으로 고개 숙여 1번 인사하고 떠난다.[19] 이것이 신사에서 권장하는 표준적인 예법으로,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다르다. 아니, 저 일반적인 예법도 지키지 않고 참배하는 일본인들도 많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참배하는 모습을 관찰하면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불교에서 사용할 법한 수인을 맺으며 참배하거나 염주를 들고 참배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전함에 을 언제 넣을지도 고민하지 마라. 어떤 사람은 미리 돈을 넣고 참배하기도 하고, 기원하기 전이나 후에 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참배의 작법도 일본 각지마다 다 달랐으므로(당연한 일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신사청에서 표준형을 제정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옙 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모든 동작을 일일이 규정하지는 않으니 안심하도록.

여담으로, 새전함에 넣는 돈은 대개 5엔이나 50엔짜리를 넣는다. 5엔의 발음이 ごえん(고엔)으로, 御縁(고엔, 좋은 인연)과 발음이 겹치기 때문. 절대 돈 아끼려고 그러는게 아닙니다. 절대로..? 뜨레비 분수도 실제로는 50센트 동전만 넘친다던데?

애니메이션 등에서는 방울 달린 새끼줄이 참배하는 자리에 흔히 있는 듯 묘사하기도 하는데, 도쿄 시내에서 그런 신사는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 교토 등 다른 도시의 신사나 시골의 신사에는 많이 달려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팔뚝만큼 굵은 새끼줄에 징채가 달려있어서, 새끼줄을 흔들면 징을 치게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참배하기 전에 이 새끼줄을 흔들어서 소리를 낸다.

한국에서 현지화 할때는 불교이나 사당으로 바뀌는 경우가 보통. 이것도 그나마 왜색 관련 심의가 많이 풀린 2000년대 중반에 와서 일반화된 것이고, 그 전에는 신사라면 무조건 심의에서 걸렸다. 예를 들어 1997~1998년에 KBS에서 더빙한 세일러문 시리즈에서는 신사 배경 때문에 아예 방송자체가 되지 못한 에피소드가 수두룩하며, 이로 인해 내용 연결이 안되거나 일부 캐릭터가 거의 등장을 못하는 불상사가 있었고, 아즈키쨩에서도 대교방송 쫑아는 사춘기 시절[20]에 신사 장면 조금 들어있는 것 에피소드가 통째로 잘리기도 했다. 아즈키쨩은 2010년 투니버스가 사랑은 콩다콩으로 재더빙하면서 신사가 절로 바뀌어서 정상적으로 방영되었고 2012년 대원에서 재더빙된 세일러문은 '사당'으로 나오고 무녀복 등 편집없이 그대로 나왔다.

3 기타

토속신앙으로 폭넓게 사랑을 받으며 민간에게도 친숙한 종교답게, 일본의 서브컬처 작품들에 흔히 등장한다. 단골 메뉴는 퇴마, 무녀 등. 또한 여름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작품이라면 신사에서 열리는 여름 축제(마츠리)가 흔히 등장하곤 한다. 실제 존재하는 신사를 모티브로 하여 작중의 신사를 묘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경우 해당 작품의 팬들에 의해 성지순례(…)가 행해지기도 한다. 일종의 관광명소화가 되기에 지역경제나 신사 재정이 도움이 되는지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는 한편, 제작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여 소란스럽게 굴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경우도 있다.

성인향 작품 등에선 신사 부근이 밤에 으슥하다는걸 활용해서 물레방앗간(…)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종종 묘사되지만.. 절대 하지 마라.

4 여담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한때 한반도 곳곳에도 일본식 신사가 세워지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신사로 당시 경기도 경성부(현재의 서울특별시) 한양공원(현재의 서울특별시 남산공원)에 세워졌던 조선신궁이 있다.

이 신사들은 1945년 한반도해방을 맞이하고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떠나게 되면서 모두 파괴되었으며, 조선신궁의 자리에는 지금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세워져있다.

1997년 MBC에서 광복절 특집극으로 방송되었던 객사(客舍)라는 드라마에서는 일본식 신사를 아예 조선의 향교 옆에다 지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일본인들이 스스로 불태우면서 철거되었다.

최근 각 신사의 수익이 영 좋지 않은 모양이다. * 25년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신토에도 최근 들어 경영난이 심해지고 폐업하는 신사도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신사는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며 기본적인 부적 팔기와 제비뽑기 등은 물론 맞선 이벤트와 재개발까지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도 있다. 하와이에도...

5 유명한 신사

5.1 성지순례로 유명한 신사

5.2 가공의 신사

6 관련항목

  1. 물론 일본에도 부처님이 있는 불교 이 따로 있다.
  2. 실제로 한국의 홍살문이 일본의 토리이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있다.
  3. 어떤 신사는 상점에서나 볼만한 셔터로 닫혀있던 신사도 있다. 역시 종교도 영업이다
  4. 이러한 모습은 오키나와 토속신앙인 류큐 신토에서 신성시하는 성소들인 우타키(御嶽)에 남아있다.
  5. 이세신궁 항목 참조
  6. ex: 2014년 아키히토 덴노의 5촌 조카딸 노리코 공주와 결혼한 센게 구니마로(千家國磨). 고쿠가쿠인(國學院) 대학 신도학과를 졸업하고 쭉 신관으로 일해 왔다.
  7. 후술하겠지만 신사는 위패를 모시는 방식이 아니다.
  8. 일본이 이걸 지으면서 당시 한국의 토속신들을 모신 서울 국사당이 자기들보다 높이 있다면서 트집을 잡았고, 결국 국사당은 원래 위치인 현 서울 남산 팔각정에서 지금의 위치인 인왕산으로 옮겨졌다.
  9. 대한민국 헌법 제 20조 종교의 자유
  10. 메이지 덴노와 쇼켄황후(昭憲皇后) 부부를 신으로 모시는 메이지신궁,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신으로 모시는 이세신궁 등. 심지어 후루데 신사의 모티브가 된 시라카와고의 시라카와 하치만 신사도 오진덴노를 신으로 모시는 곳이다.
  11.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도 보통학생에게 강요된 신사참배가 항일 운동의 주된 요인이었다.
  12. 가운데는 신이 지나다니는 길. 우리나라에서도 종묘라든가 조선왕릉 정자각 등에는 신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어서, 제사 때 위패를 모신 사람이 아니면 지나다니지 못하게 한다.
  13. 신께 자신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서라는데, 어떤 신사에서는 예의가 아니라고 주의를 주기도 한다.
  14. 바가지의 물을 흘려서 손을 씻고, 바가지의 물을 손으로 받아 입을 헹구는게 올바른 방법. 한국인들은 약수터 바가지를 떠올리는지 입대고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하지 마라. 이는 부정을 씻는 의미다. 원래는 목욕재계를 해야 하지만 이를 간략화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실수를 많이 저지르는지, 한국어로 물 마시지 말라고 붙여놓은 곳도 있다.(...). 참고로 씻는 순서는 왼손 > 오른손 > 왼손에 물 받아서 입 헹구고 > 바가지를 세워서 자루까지 씻기. 이다.
  15. 정확하게는 배전이다. 일본의 신사는 일반적으로 배전과 본전으로 나뉘어, 배전에서는 일반인들이 참배를 하고 본전에서는 신관과 무녀들이 제사를 지낸다. 가끔 본전에 들어갈 수 있는 신사나 배전이 없는 신사도 있지만 이 경우 신을 상징하는 신체(神體)를 작은 집 형태의 감실에 넣어 보관하여 본전을 대신한다.
  16.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치는 것이 예의. 신도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박수를 치는 건 장례의식의 작법이다(…).
  17.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학생들을 강제 신사 참배 시킬적에 박수 1번은 제대로, 2번째 박수는 오른손을 반 내려서, 왼손 손바닥에 오른손 손가락 끝을 대어 박수를 치게 시켰다. 말로는 조선과 일본은 같다고 했지만 일본의 신 앞에서 차별을 두는 산물로, 얼마나 쪼잔하고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치밀하게 사람을 세뇌시키는지 알 수 있다.
  18. 오모토의 성사(聖師)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 王仁三郞)는 신자들에게 박수를 4번 치는 것이 옛부터 내려온 작법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지금도 오모토 교단에서는 박수를 4번 친다. 그것도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끝이 왼손 가운데 손가락 둘째 마디에 닿도록 하여 친다. 천리교에서도 의례 중에 박수를 4번 침을 참고하면, 오니사부로의 말처럼 옛날 일본에서는 박수를 4번 치는 쪽이 더 일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19. 여기서 나온 것이 모리야 스와코의 스펠카드 절 2번, 박수 2번, 절 1번이다.
  20. 1기 1998년, 2기 2002년, 3기 2004년 더빙
  21. 스사노오를 모시고 있는 신사로, 야사카 카나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름 탓에 착각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듯(…).
  22. 아키하바라와 가까워서 그런지 러브라이브 흥행 이전부터 서브컬쳐쪽 팬들의 방문이 많기로 유명했다.
  23. 단 이쪽은 동명의 실제 신사가 있다. 한자가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