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1963)

金永煥 (1963 ~)

대한민국의 운동권 출신 북한 인권운동가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1980년대 중반 학생운동권을 강타한 <강철서신>의 저자로, 국내에 주체사상 이론을 처음 소개한 인물. 당시 '강철'이란 필명을 사용해서 강철서신이였다. 북의 대남방송과 일본 등을 통해서 얻은 주체사상 서적을 탐독한 자생적인 주사파로 주사파 지하조직 운동을 계속하였다. 1991년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과 접선, 반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후에 공작금 20만 달러를 받아서 돌아왔다. 이 공작금으로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하영옥, 박XX[1]와 함께 민주민족혁명당(이하 민혁당)이란 지하당을 조직하고,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2]당시 김영환, 하영옥, 박XX3인이 중앙위원으로 조직의 핵심지도부였으며 이석기는 경기남부위원장으로 서열 5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김일성을 만났을때부터 생긴 북한 체제에 대한 의구심과 1994년 이후 고난의 행군을 보면서 주체사상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이때부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감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1997년 지도부 투표를 거쳐서 민혁당을 해체하고 자신은 주사파 활동을 중단하였다. 진보 월간지 말(잡지) 1998년 5월호에 <북한 수령론은 완전한 허구이자 사기극>이라는 글을 기고하고, 훗날 뉴라이트 운동의 토대가 되는 잡지 <시대정신>을 창간하였다.

그러나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하영옥이 조직을 재건해서 이석기 등을 중심으로 민혁당 하부조직은 계속 활동하였고, 1999년 국가정보원에 일제히 검거되면서 김영환도 구속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민주민족혁명당 사건 참조.

1999년 검거 직후 공개적으로 주체사상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함께 '준법서약서'를 쓰고 공소보류로 풀려났다.

이후로는 반북우파로 변신해서 북한전문 인터넷신문 데일리NK를 창립해서 주요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북한민주화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북제재 효과에 경험상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견해를 내보였다.#

여담으로 그와는 동명이인인 김영환 전 의원과는 단순한 동명이인인 것을 넘어서서 상당히 깊은 인연이 있다.참조.
  1. 체포후 바로 전향하여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기에 아직도 신원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2. 그러나 세간의 생각과는 달리 당시 학생운동 특히 한총련의 주류는 아니었다. 민혁당의 영향력아래 있던 그룹은 대표적으로 전북총련이었는데, 이들은 한번도 한총련 주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