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通精
(? ~ 1273)
고려의 무신. 여몽전쟁이 끝난 이후에 삼별초의 난 때 여몽연합에 맞섰다.
거점이었던 진도가 함락되고 당시 삼별초의 대장이었던 배중손[1]이 전사하자 남은 무리를 이끌고 탐라(제주도)에서 거점을 확보하고 남해안을 일대로 여몽연합군에 대한 공격을 지속한다.
1272년에 8월에 원나라에서 왕잠을 보내 홍다구와 함께 탐라를 항복시킬 전략을 세우게 했는데, 홍다구가 그 일당이 아직도 개경에 있어 회유한 후에 응하지 않으면 공격하기로 하면서 홍다구가 여러 사람을 보내 투항을 권고했지만 김통정은 이를 거부하면서 조카 김찬을 억류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였다.
결국 1273년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 거점이었던 제주도가 함락되자 자살했으며, 삼별초가 진압된 후에 송보연이 김통정의 시체를 찾았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었고, 죽기 직전에 "내 백성일랑 물이나 먹고 살아라"며 발로 바위를 꽝 찍었는데 바위에 발자국이 움푹 패고 거기서 샘물이 솟아 흘렀는데,그 샘물을 장수물이라 부른다고 한다.
링크
재미있는 것은 당시 삼별초의 직접적 지배 영역이던 제주도 북부 일대에는 김통정에 대한 악의적인 전설이 많은 반면, 제주도 남부에는 김통정에 대해 긍정적인 전설이 많이 내려온다. 가령 환생한 김통정이 왜구를 격퇴한다던가...더 황당한 건 같은 내용의 전설마저도 다른 유형으로 내려온다는 점이다. 가령 제주도 북부에서는 '김통정이 포악하고 욕심을 부려 하느님이 3명의 장수를 내려보내 김통정을 징벌토록 했다'는 식의 전설이 있다. 그런데 이게 재주도 남부에서는 '원나라에서 김통정을 암살하기 위해 3명의 자객을 보냈으나 모두 김통정의 도술에 당하고 도망쳤다'라는 식으로 전해온다.
파일:Attachment/김통정/김통정.png |
징기스칸 4 일러스트[2] |
코에이의 징기스칸 4등에서도 등장하는데, 원조비사때는 그럭저럭 쓸만한 무장이지만 고려의 히어로(...) 김방경에 밀리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4편에선 고려에서 가장 강한 장군이 되었다(김방경은 엄청나게 너프되었고). 전투력이 무려 74로 고려군내에서 가장 강하며(대충 아바카 칸이 그와 전투력이 비슷하다) 병종 특성도 그럭저럭 괜찮은데다가 특기로 복병, 공성, 화공이 있어 그야말로 고려의 최강자, 고려의 히어로, 고려의 구세주(...)로 거듭났다. 이는 여원연합군의 배를 불태워서라는 설이 있다(징기스칸4 열전에는 일본 원정을 방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