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부 하루마사

南部晴政
(1517 ~ 1582)

일본 전국시대다이묘. 난부 야스노부의 아들. 아명은 히코사부로(彦三郎). 난부 노부나오의 숙부.

1539년에 모토산노헤 성에 화재가 일어나면서 많은 문서를 잃었고 이름이 야스마사(安政)였지만 직후에 상경해 아시카가 요시하루로부터 晴의 글자를 받아 이름이 하루마사(晴政)가 되었다. 1541년에 가문을 상속했고 1566년에 안도 치카스에의 부하가 이끄는 5000명이 카즈노군을 공격하자 난부가에서는 나고시 성에서 요격해 군을 되돌리기 하는 것에 성공했으며, 1565년에 이시카와 타카노부의 아들인 노부나오를 데릴사위로 삼았다.

1567년에는 치카스에가 직접 6천의 군사로 나고시 성을 공격했지만 승리해 치카스에를 철수시켰는데, 치카스에가 또다시 나고시 성을 공격해 함락되어 나고시 성을 빼앗겼다. 1568년에 카즈노 군 탈환을 위해 가신들을 파견해 카즈노 군을 탈환했으며, 안도 가문과의 싸움으로 난부 일족이 결속하게 되어 세력을 확대해 무츠 북부에 많은 범위를 영토로 삼아 초승달이 둥글게 될 때까지 난부의 영지라고 일컬어졌다.

하루마사는 영지를 확인할 겸 매 사냥에 나섰다가 어느 마을에서 모내기를 하던 농민들이 그가 온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엎드렸지만 단 한 사람만은 10대의 소녀가 영주님이 행복해지라고 말하면서 하루마사의 옷과 얼굴에 진흙을 발랐다. 이는 농민들 사이에서 모내기 때 주위 사람들에게 풍년, 무병, 안녕을 비는 주술에 해당하는 풍습이었지만 영주님을 상대로 한 것이었으며, 하루마사는 즐거워하면서 그 모습으로 떠났다가 그 소녀를 불러 후궁으로 삼았고 그 소녀는 1570년에 아들인 츠루치요를 낳게 된다.

본래 노부나오가 차기 당주의 자리로 약속되었지만 이 일로 인해 하루마사가 츠루치요를 당주로 삼으려고 하면서 하루마사는 노부나오와 관계가 악화되었고 1571년에 츠가루 지방에서 츠가루 타메노부가 모반을 일으키면서 노부나오의 아버지 타카노부를 죽이고 그 영토를 빼앗았다. 그러나 하루마사에게는 츠루치요의 장래를 방해하는 노부나오의 후원자에 해당하는 아버지였기에 군사 행동을 일으키지 않아 노부나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노부나오가 철포 사격에 빠져 사격 연습에 빠졌다는 소문을 듣고 노부나오를 찾아갔는데, 노부나오가 서투른 솜씨를 보였고 하루마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매일 연습에 힘쓰면서 사격에 서투룰 리가 없다면서 자신이 방심하면 언젠가 허를 찔러 밀어내기 위해 일부러 과녁을 빗맞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노부나오는 남 앞에서 사격 솜씨를 보일 때 탄환을 과녁에 명중시켰다고 하며, 1572년에 종자를 데리고 영지 내의 비샤몬도를 참배한 노부나오를 습격했지만 노부나오가 철포로 저격하자 하루마사는 총알에 맞아 낙마했고 하루마사의 병사가 당황하는 틈을 타서 노부나오가 그 자리에 탈출해 노부나오를 죽이는 것에 실패한다.

1576년에 딸이 사망하면서 노부나오가 하루마사의 후계자가 되는 것을 사퇴하고 이시카와 가문으로 돌아가 닷코 성에 거주했으며, 1578년에 오다 노부나가에게 사신을 보내 매, 준마 등을 바쳤고 1582년에 병으로 사망한다.

1 창작물에서

1.1 신장의 야망

파일:南部晴政.jpg

준수한 능력치로 등장하는데... 지력과 정치가 바닥이라 문제...

1.2 전국 바사라 3

파일:Attachment/Sengoku basara 3 nanbu harumasa.png

성우는 호우키 카츠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