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階崩れの変
1550년(텐분 19년[1]) 2월, 일본 분고국(豊後国, 현 오이타 현의 북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분고국의 유력 다이묘 오토모 요시아키(大友義鑑)의 부하 츠쿠미 미마사카 노가미(津久見美作守)와 다구치 신쿠로(田口新藏)가 오토모 요시아키의 저택을 기습해 그의 두 딸과 막내 아들 시오이치마루(塩市丸), 그리고 시오이치마루의 생모를 죽이고 오토모 요시아키에게 큰 부상을 입혀 그 후유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그 당시 사건이 저택 2층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니카이쿠즈레(二階崩れ)란 이름이 붙었다.
1 당시 오토모 가의 상황
그 당시 오토모 가는 후계자 문제로 가신단 사이에서 격렬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크게 오토모 요시아키의 장남 오토모 요시시게(大友義鎮, 뒷날 오토모 소린으로 개명)를 지지하는 요시시게 파와 오토모 요시아키의 막내아들인 시오이치마루(塩市丸)를 지지하는 시오이치마루 파로 나뉘어 있었다.
2 니카이쿠즈레의 변
오토모 요시아키는 장남 요시시게가 병약하였기 때문에 그를 싫어했고, 대신 막내 아들인 시오이치마루를 매우 사랑하여 요시시게를 폐적하고 그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였다. 그렇게 하여 오토모 요시아키 요시아키와 시오이치마루 파인 토시요리(年寄)[2] 뉴타 단고 노가미(入田丹後守)와 시오이치마루의 생모는 서로 계획을 짜 시오이치마루에게 가독을 계승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550년 2월, 요시아키는 요시시게를 벳부(別府)의 온천으로 여행을 보낸 다음 4명의 토시요리인 사이토 하리마 노가미(齋藤播磨守), 오사이 야마토 노가미(小佐井大和守), 츠쿠미 미마사카 노가미(津久見美作守), 다구치 신쿠로(田口新藏)를 불러 시오이치마루에게 가독을 상속시키겠다고 말 했다.
이에 4명은 경악하여 반대했고, 화가 난 요시아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며칠 뒤 이 4명을 다시 불렀는데, 츠쿠미와 다구치는 병을 핑계로 출석하지 않았고 사이토와 오사이가 출석했는데, 이 2명은 요시아키의 명을 받은 자객들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이에 자신들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한 츠쿠미와 다구치는 미리 선수를 쳐 요시아키의 저택을 기습해 요시아키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그의 두 딸과 시오이치마루와 그의 생모를 죽였다.
3 그 후
츠쿠미와 다구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살해되었으나, 오토모 요시아키는 큰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며칠 뒤 사망하였고, 요시시게가 뒤를 이어 당주가 되었다. 또 그 뒤 시오이치마루 파였던 가신들은 전부 숙청되었다.
4 그 외
워낙에 배경 때문에 오토모 요시시게가 이 사건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으나, 진위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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