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友宗麟
1530년 1월 31일 ~ 1587년 6월 11일
오토모 소린 동상(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
1 개략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오토모가 21대 당주로 오토모 요시아키의 아들. 소린은 법명이며 본명은 요시시게(大友義鎮).
아버지 요시아키가 장남인 소린을 폐적하고 대신 소린의 배다른 아들인 시오이치마루(塩市丸)에게 당주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챈 소린파 가신들이 요시아키를 야습한다(二階崩れの変, 니카이쿠즈레의 변). 이 사건으로 요시아키의 두 딸과 시오이치마루, 시오이치마루의 생모가 모두 사망하고, 요시아키 본인도 이 때 입은 상처로 인하여 며칠 후 사망하면서 소린이 당주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반 소린파 가신들은 모조리 숙청되고 만다.
오우치 요시타카가 스에 하루카타의 모반으로 죽자 자신의 동생인 오토모 요시히데(오우치 요시나가)를 오우치 가 당주로 보낸다. 또한 숙부 키쿠치 요시타케를 멸망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세력 확대에 힘썼다.
한편으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같은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포교하는 것을 허락했고 이 때문에 가신 이치마다 아키스케, 오바라 아키모토 등이 반란을 일으켜 치세 초기는 상당히 힘들었으며, 모리 모토나리가 오우치 가를 멸망시키면서 모리 가와 대립하게 된다.
1559년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막대한 헌금을 하여 부젠, 치쿠젠 슈고와 규슈 탄다이에 임명되었으며, 1567년 모리 가와 내통하던 가신 다카하시 아키다네를 다치바나 도세츠의 도움으로 멸망시킨다. 이렇게 모리 가와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1569년에는 류조지 다카노부와도 대립하였으며, 류조지가 히젠을 침공하나 모토나리가 치쿠젠으로 빈집털이를 오는 바람에 퇴각한다.
이에 오우치 씨 일족인 오우치 테루히로를 스오로 보내 모토나리를 괴롭혔으며, 1570년 다시 다카노부와 히젠에서 전투를 벌이지만 이마야마 전투에서 대패하여 동생인 치카사다가 전사하고 만다. 결국 류조지 가와 화친을 맺고 1576년 아들 요시무네에게 당주 자리를 양도하고 은거한다.
1577년 시마즈 요시히로가 휴가를 침공하자 대군을 이끌고 나섰으나 미미가와 전투에서 또 대패하였으며, 이 전투로 많은 가신들이 전사한데다 여러 호족들이 배신하여 오토모 가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류조지 가마저 멸망시킨 시마즈 가에 대항하기 위해 가신 타치바나 도세츠를 보내 치쿠고를 침공케 했으나 도중에 도세츠가 병사하면서 오히려 시마즈 군의 공격을 받는다.
결국 1586년 오사카로 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시마즈 이에히사에게 거성 후나이관을 빼앗겨 우스키 성에서 농성을 벌인다. 1587년 히데요시가 규슈 정벌에 나서며 전세가 역전된다. 하지만 소린 자신은 시마즈 요시히사의 항복 직전 병사하고 만다. 향년 58세.
히데요시는 소린에게 휴가 1국을 주려고 했으나 이를 거부해, 오토모 가는 분고 1국으로 결정된다. 이후 오토모 가는 조선 침략 때 평양성에서 당주 요시무네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개역당한다.
미미가와 합전 직전 선교사 프란시스코 카브랄로부터 세례를 받아 세례명을 돈 프란시스코라 하였으며 프란이라고 서명하였다. 사망했을 때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렀으나 이후 아들 요시무네가 다시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독실한 기독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호색한이었다고 한다. 미녀를 찾아 교토까지 갔으며 가신의 처를 빼앗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무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이에 도세츠가 자주 훈계하였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무욕의 군주로 그려지는 데 이는 만년의 모습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당한 문화인으로 알려져 있다.
2 창작물에서
2.1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천하창세까지는 시마즈 가를 압살했으나 혁신 때부터는 시마즈 가의 호구. 철포 재평가에 기술 테크가 생기면서 일방적으로 밀린다. 그리고 가문 고유 기술인 구니쿠즈시는 시마즈 군에 대항해 농성을 벌일 때 대포의 위력에 놀라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소가를 처음부터 종속시킨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절개발이 가능하고. 플레이 여하에 따라서는. 아소가의 유력무장인 카이 쇼운이 부하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고노 미치나오와는 혼인관계에다가. 숙장정과 목장이 덤으로 딸려오고 더불어. 오우치 살해 이벤트가 발생하면 무능한 아우를 오우치 쪽으로 보내는 것으로 승낙함으로써. 남만정과 무역정, 거기다 공가정과 하치만구까지 딸려오기 때문에. 개발 못하는게 전혀 없다. 다만, 자금력이 부족한 초반에는 무리한 개발 보다는. 북큐슈 제압부터 신경쓰도록 하자. 오토모 소린도 무장으로 굴린다면 가능은 하나. 의리가 1이라. 사사하는게 답이다. 어떻게 하면 도세츠와 쇼운의 의리가 90대인데. 군주가 저 모양인지(...)
그러나. 오토모 요시무네가 당주인 후대에서는 난이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후나이 외에는 거의 영토가 없다시피 해서. 사실상 히데요리에게 반 종속이라. 가문도 영지도 없고. 난이도는 또 괴랄맞다. 거기다 다이묘인 본인이 또 F4 급 인지라. 행동횟수가 1이다. 더불어, 있는 무장이라고는 타와라 쇼닌 정도인데. 역시 싸움에 잼병이고. 하나같이 나사가 단단히 빠진 가문인지라 또 무진장 힘들다. 재수 없으면 시작하자 마자 시마즈의 맹공에 몰락하기도 한다. 타치바나 가문이 독립한 상황이고. 밑에는 이토가문이 있지만. 있으나 마나 거의 털리고. 위에는 쿠로다 요시타카가 버티고 있다가. 결국 망한다.
신장의 야망 시리즈 최신작인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는 오우치 가문이 건재한 극 초반부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본인이 생존한 상태의 거의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북 큐슈의 패자로 군림하는 강한 세력을 갖추고 있다. 개인 능력도 나쁘지 않은 편으로, 통무지정 순으로 76/66/82/86. 초장부터 분고, 부슈, 치쿠고, 치쿠젠의 4개 국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인공지능에게 내버려두면 멍청한(..) 인공지능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힘의 차이를 바탕으로 류조지를 쥐어패고 북큐슈에서 떵떵거리다가 모리와 싸우면서 국력을 낭비하고 그러다 남 큐슈를 통일하고 북진하는 시마즈에게 털리는 상황이 90% 이상(..)의 확률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잡으면 타고난 국력 차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보다도 더 빨리 류조지를 해치우고 모리와는 화친하면서 아직 다 크지 못한 남쪽의 시마즈를 박살내며 큐슈 전체를 통일하는 것 까지 정말 '쉽게' 할 수 있는 초심자 세력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살아있는 시나리오의 이마가와 플레이와 비슷한 느낌.
기본적으로 타치바나 도세츠, 타카하시 쇼운이라는 두 용장을 쌍두마차로, 전반적인 인재풀은 과히 나쁘지 않으며[1] 역시나 탑클래스급 능력치를 가진 명장 타치바나 무네시게라도 원복하면 전투 관련 인재 방면에서는 시마즈를 제외하고서는 서부 전체에서 비견할만 한 상대가 없을 정도. 시마즈에게 한창 털리는 후반기 시나리오 전까지[2]는 오토모 소린의 세력이 큐슈 최강이기 때문에 힘을 빠르게 모아 류조지를 털어버리고 나베시마 나오시게와 같은 유능한 인재풀들을 끌어모으고 생산력이 뛰어난 히젠을 석권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시나리오일 수록 시마즈가 약하기 때문에 초기 시나리오에 빠르게 히젠까지 먹어치우는 데에만 성공하면 모리의 뒤치기만 조심하면 큐슈 통일은 정말 매우 쉽다. 심지어 모리의 컴퓨터 인공지능은 그렇게 공격적이지도 않은 편.
일단 큐슈만 통일하면 그 다음의 행보는 주코쿠의 모리이든 시코쿠이든 정말 쉽게 풀어갈 수 있다. 시마즈의 유능하기 짝이 없는 인재풀과 류조지의 준수한 인재풀, 오토모 자체의 인재풀이 합쳐진 데다 큐슈 전토의 생산력으로 전투를 풀어가면 사실 어지간한 세력은 오토모의 상대가 될 수가 없다. 그나마 천하포무 이 후, 오다 노부나가가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여 기나이를 통일했다는 전제 하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꽤 골치아픈 세력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노부나가와 대치한다는 선까지 갔다는 것은 주코쿠, 시코쿠를 장악했다는 의미와 동일한 지라 결국 플레이어가 국력 상으로도 밀릴 수가 없는 싸움. 기나이까지 먹는다면 그 선에서 총무사령 정책을 선택하고 게임을 클리어시켜버릴 수 있다.
소린의 말년이라 할 수 있는 테도리카와, 몽환으로 이 후 시나리오들에서는 게임 자체가 꽤 어려워진다. 시마즈가 이미 큐슈 남부를 통일한 상태라 호시탐탐 북진을 노리고 있고 반대로 오토모 가문은 배하에 있던 영주 세력들이 독립한 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 일단 최대한 빨리 독립한 군소 영주들을 제거하여 본 영지를 안정화시키고 역시나 위와 마찬가지로 시마즈, 모리와의 싸움은 최대한 회피하면서 생산력이 뛰어난 히젠을 먹기 위해 류조지와 맞설 필요가 있다. 초기 시나리오와는 달리 후반기의 류조지는 이미 히젠을 거의 다 먹은 상태라 상당히 강한 편이기에 전투 시 주의할 필요가 있으나 여전히 오토모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며 류조지 가문을 멸망시키는 시점부터 시마즈와의 전면 대결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해도 좋다. 적절하게 시마즈 가문과의 정면 승부에게 승리하고 큐슈를 통일해주면 이 후의 루트는 위와 동일.
오토모 소린의 오토모 가문 고유 정책인 '절지단보호'[3]는 먼저 '남만보호' 정책이 실시되어 있어야 하며 패널티로는 보수 성향의 무장들의 충성 수치 -2가 확보되는 것이고 어드밴티지로는 각 성의 인구 증가 속도가 빨라지며 창조 성향의 무장들의 충성 수치 +2가 확보되는 것이다. 사실 보통의 고유 정책들은 굉장히 효과가 좋은 것이 일반적인데 오토모 가문의 고유 정책 절지단보호는 너무 쓰기 애매한 정책이다. 가문에서 보수 성향 무장들을 죄다 내쫓을 것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선 실시되어야 하는 남만보호 정책부터가 보수 성향 무장들의 충성 수치 -2를 패널티로 얻는데 여기에 절지단보호까지 실행하면 무려 -4의 충성 수치가 까여버린다. 어지간히 필요 요구 충성치가 낮은(충성스러운) 보수 성향 무장이 아닌 이상, 이래가지고서는 죄다 불만을 품어서 적의 공작과 매수에 그대로 당해버린다. 오토모 가문 무장들 중 주요 유력 무장들이 대부분 창조 성향인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 작에서 장수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시스템이란 것을 생각하면 거의 가문의 보수 성향 무장 반 수가 날아간다는 것은 치명적인 치명타나 다름없다. 인구 수 좀 빨리 늘리자고 당장의 그만한 패널티를 감내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큰 정책인 것. 물론 오토모 가문이 서부 전체를 석권하고 엄청나게 강한 세력이 되었다면 무장 수도 무지막지해질테니 그 때에는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써도 될 정책이기는 하지만 초반부터 쓰는 것은 무리인 정책이라고 봐도 좋다. 그나마 창조인 무장이 시마즈나 류죠지 같은 경우는 몰라도. 아소나 사가라 같은 보수형 무장은 혐오하기 때문에. 등용만 안하면 된다. 군단을 분할하면 군단소속으로 능력치의 합이 300이상의 군단 소속일 경우. 충성도가 +2 되기 떄문에. 남만보호만 쓰고. 절지단 정책을 쓰지 않으면. 충성도 변화가 없다. 중도형 무장은 절지단 정책에 영향이 없기에 무난하므로. 무리없이 모리를 병합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공가를 지지하는 세력 이외의 다른 세력은 병합이 가능하나. 조정에게 공작을 펼쳐서 관위를 뜯어내기는 힘들다.
2.2 전국 바사라 시리즈
오토모 소린(전국 바사라)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