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통일신라시대의 궁궐 또는 연못인 동궁과 월지를 찾아오셨나요? |
月氏, 月支
월지의 이동과정. 초기에는 남러시아에 정착했으나 오손에게 밀려났다.
타림 분지에 위치하고 동서 무역을 독점하던 강국. 한자명만 전해지며 어떠한 인종이 건설했었는지는 불명. 흉노에게 멸망한 후 이때 일부가 남아서 서쪽으로 간 세력을 대월지(大月氏)라고 하고, 남아 있던 부족을 소월지(小月氏)라 불렀다. 대월지는 소그디아나로 건너가 박트리아를 정복하고 그 땅을 5명의 흡후[1]에게 다스리게 했다. 이후 장건이 흉노에 대한 원한을 내세우며 동맹을 맺으러 오지만 실패한다.
이후 귀상흡후(貴霜翕侯) 구취각이 5명의 흡후를 통합하고 인도로 진출하여 쿠샨 왕조를 건설하는등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었지만 3세기경 그 세력이 쇠약해져서 멸망하였고 소월지는 1세기경 한에 흡수되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월지족이 인도유럽어족이라고 보고 있고, 고문헌의 토하리인(Tocharians)과 같거나 긴밀히 연결된 종족으로 믿고 있다. 중앙 아시아 연구가인 르네 그루쎄는 당시 중국 문헌과 서방 측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월지는 토하리인과 함께 인도-스키타이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한 예로 당시 그리스의 사가 프톨레미는 월지의 영역을 토가라(Thogara)로 기록해 두었다. 또한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박트리아의 침략 민족을 토하로이(Tokharoi)라고 부르고 있다. 이 때는 월지가 대하를 정복하고 대월지를 세운 때와 일치하고 있다.
한편, 르네 그루쎄에 따르면 감숙 성에 남아있던 소월지는 이후 쿠차와 연관이 있다. 이들은 당나라에 정복될 때까지 실크로드 지역 최동부의 인도유럽어족 국가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