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인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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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를 편집할 때는 저작권 침해 방지에 각별히 유의하여 주십시오.쿠샨 왕조 | ||
쿠샨 왕조의 영역 | ||
존속기간 | 30년 ~ 375년 | |
수도 | 페샤와르, 탁실라, 마투라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언어 | 그리스어, 박트리아어 등 | |
종교 | 불교, 힌두교, 샤머니즘, 조로아스터교 | |
성립 이전 | 인도-스키타이, 인도-파르티아 왕국 | |
멸망 이후 | 사산 왕조, 굽타 왕조, 에프탈 |
1 개요
한나라의 장건이 찾아갔던 그 대월지, 즉 샤카족의 한 분파에서 시작하여 전성기인 카니슈카 1세 때에는 중앙아시아부터 북인도까지 통일한 제국. 이름의 유래는 힌두'쿠시'산맥을 넘어왔다 해서 쿠샨 왕조라 불린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불교가 다시 바뀌는 데 그게 바로 우리나라와 중국에 널리퍼져 있는 대승불교다. 동서 중계 무역으로 번성했다.
2 역사
기원전 250년에 셀레우코스 제국에서 독립한 박트리아가 전성기 였던 메난드로스 왕의 치세에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부 펀자브 지방을 지배하던 기원전 2세기 중엽, 북쪽에서 흉노족이 몰아낸 대월지 족에게 밀려난 샤카족이 남하해 왔다.
한편 마우리아 왕조가 기원전 2세기 중엽 붕괴되면서 북인도 지역은 여러 소국들이 할거하는 형태가 계속되었다. 이 틈을 타서 박트리아 지역의 그리스 문화가 인도 문화에 유입되어 혼합된 문하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때 본래 월지의 5제후 가운데 쿠샨족{중국어 귀상(貴霜)}은 월지에서 독립하여 대월지를 대신해 박트리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뒤 북인도 서부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걸친 쿠샨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쿠샨 왕조는 2세기 중엽 3대 카니슈카왕 시기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파르티아에 뒤이어 등장한 사산 왕조의 공격에 점점 쇠락하다가 내부적으로 키다라족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키다라족의 근원이 확실치 않아 쿠샨 왕조의 연장선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선 따로 분리해서 보는듯. 키다라족도 훗날 에프탈에 의해 멸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