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의 소설 대지를 영화화한 것. 한국에서는 1988년부로 50년이 지났기에 판권이 만료됐다.
1937년에 미국에서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감독이기도 한 빅터 플레밍이 공동 감독을 맡았으며 왕룽은 폴 무니(1895~1967), 오란은 루이제 레이니(1910~2014년 12월 30일 105번째 생일(1월 12일)을 보름도 안 남기고 사망)가 연기했다. 백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으나 나머지 조연들은 중국계 및 한국계 배우들이 연기했고, 복장이나 배경은 꽤 원작처럼 중국풍 고증을 잘 따른 편이다. 유명 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1908~1997)가 이름없던 시절, 이 영화에서 엑스트라인 중국 농부로 나오려고 반나절을 분장해 잠깐 촬영했지만 도저히 중국인같지 않다고 나오던 분량이 삭제되는 통에 스튜어트가 울분을 참아야 했던 일화도 있다. 영화 그렘린에서 모과이를 팔던 가게 주인으로 나온 중국계 배우 키예 루크(1904~1991)가 여기서 왕룽의 장남 왕이로 나왔었다. 제작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맡은 MGM/UA. 참고로 음악을 아르놀트 쇤베르크에게 맡기려 했는데 그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가, 도중 하차[1]하여 에드워드 워드(1900~1971),허버트 스토다트(1885~1949)가 맡았다.
영화는 원작을 좀 간추리긴 했지만, 흥행에 성공했고(박스오피스 280만 달러, 제작비는 80만 달러였다), 평도 꽤 괜찮았다. 참고로 영화에선 오란이 죽자, 왕룽이 울면서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대지였어." 대사를 하면서 끝난다.
단, 펄 벅 자신은 이 영화를 상당히 싫어했다. 중국 이야기인데 주연 배우들만은 왜 죄다 백인으로 바꿔버린 것도 문제였고, 원작의 이야기인 농부의 삶을 왜곡하여 왕룽과 오란 사이의 멜로드라마로만 만들어 버린 것도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심지어 영화 프로듀서[2]인 앨버트 레윈(1894~1968)도 이 영화를 마음에 안 들어했는데 죽기 직전에서야 영화 제작한 것을 후회했다고 카더라 이야기도 있는데 출처바람.
- ↑ 쇤베르크의 하차 이유에 대하여 90년대에 삶과 꿈이라는 잡지에서는 제작자인 레윈이 여기서 폭풍우를 느끼는 음악를 넣어주고 뭐 넣어달라라고 하두 간섭하여 쇤베르크가 "그냥 폭풍우 효과음을 틀어주면 되잖아요!" 라고 짜증내며 갈등을 빚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 ↑ 공동 제작자이던 어빙 탈버그는 1936년 9월 촬영한지 한달만에 37세 나이로 요절했다. 참고로 이 사람도 배우들이 죄다 백인으로 바꿔버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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