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David Ricardo.
데이비드 리카도, 혹은 데이비드 리카르도.
영국 출신의 고전학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이어서 고전학파 경제학을 확립시켰다. 고등학교 경제를 이수했다면 비교우위론과 절대우위론을 배울 때 등장하는 학자이다. 엄밀히 말하면 절대우위론을 주장한 것은 스미스 쪽이고, 그에 대항하여 비교우위론을 주장한 것은 리카도 쪽이다. 중등교육 차원에서도 잘 알려져서인지 케인즈와 더불어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는 그 유명한 인구론을 주장한 맬서스와는 서로 논쟁을 주고 받는 친구 관계였다고 한다. 그의 이론은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등 여러 사상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가 애덤 스미스로부터 이어받아 발전시킨 노동가치이론은 이후 마르크스에게 잉여가치론으로 비판·계승된다.
2 생애[1]
1772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문은 세파르딤 계통의 유대인으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에 정착하였다. 그의 성씨가 포르투갈계의 성씨인 '리카르도'인 것은 이 때문이다. 증권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증권업에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 14세부터 아버지의 사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으나, 성인이 된 후 기독교인과 결혼하면서 종교 문제로 아버지와 절연하였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후, 증권중개업ㆍ공채인 수업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
1799년 우연히 A.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눈을 뜬다. 이후 10년간 경제학 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최초의 저작 <지금의 고가, 지폐의 평가절하를 나타내는 근거(The High Price of Bullion, a Proof of the Depreciation of Bank Notes)>를 1810년 발간한다. 그는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지폐발행을 늘리던 잉글랜드은행의 통화정책을 비판함으로써 지금주의자(地金主義者)에게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였다. 즉, 은행은 한 나라의 경제 동향을 살펴 대출정책을 취하고, 통화와 신용 규모에 대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중앙 금융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영국 하원에서는 지금위원회(地金委員會)를 설립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토머스 맬서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1815년 발표된 〈저곡가가 자본의 이윤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시론(Essay on the Influence of a Low Price of Corn on the Profits of Stock)〉에서 수입곡물에 대한 관세 인상은 생산자의 이윤을 하락시키며 지주의 지대 수입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리카도는 고전학파의 창시자인 스미스 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고전학파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1817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를 발표하였다. 그는 사회적 생산물이 지주ㆍ노동자ㆍ소유자 사이에 분배되는 법칙을 분석하였다. 또한 상품의 국내 가치는 생산에서 소요되는 노동량에 의해 결정되며, 지대는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등 스미스의 노동가치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윤과 임금, 지대의 소득관계를 밝혔는데 이윤은 임금에 반비례하며 임금은 생필품 비용에 따라서 변화하고, 지대의 상승은 한계경작비용과 인구의 증가에 따른다고 하였다. 또한 국가 간 무역에 있어 비교우위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과세문제를 상세히 다루었다. 그는 애덤 스미스와 대표적인 고전파 경제학자로 불리나, 그보다 더 경제학을 세분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대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밀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직접적으로 그의 사상을 계승하거나 적어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1823년 병으로 의회에서 물러난 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3 업적
3.1 노동가치이론
노동가치이론은 훗날 한계혁명이 일어나기 전 초창기 경제학의 특징인 객관적 가치론의 대표적인 학설이다. 즉 우리의 주관적 요인, 우리의 기호나 우리가 느끼는 효용에 의해서 상품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질적으로 대상에 투여한 객관적 대상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인데,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는 그 객관적 대상을 노동이라고 본 것이다. 이 노동을 시간이라는 단위로 측정하여 그 구체성을 사상(버림)하면 추상적이고 계측 가능한 대상으로서의 노동이 도출되고 이를 얼마나 투입했느냐가 곧 상품의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에 의해서 사람들은 교환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훗날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분석에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경쟁과 가치 이전의 동학이 배제되어 있어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노동가치이론을 발전시키게 된다.
3.2 비교우위론
비교우위 참고
3.3 차액지대론
토지를 가지고 있는 지주계층, 토지를 임대하여 수익을 얻는 자본가계층, 토지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노동자계층이 있다고 하자. 이럴 경우 자본가는 지주에게서 토지를 임대하고, 생산된 수확물로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토지의 질은 천차만별이며, 따라서 수확물의 양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렇기에 토지의 질에 따라 지대가 달라질 것이고, 자본가는 최대의 이익을 얻기위해 가장 투자 지대대비 수확물이 많은 토지를 임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들은 가장 이익이 높은 토지를 임대하려 할 것이고, 이것은 이익을 평준화시키는 과정을 가져오기에 결국 어떤 토지를 임대하더라도 이익은 동일할 것이다. 즉, 질이 높은 토지나 질이 낮은 토지나 수확량은 다르더라도, 임대시 수익은 동일해진다. 그렇기에 자본가들은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모두 같은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토지를 가진 지주계층의 이익만 커진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익추구를 경제의 가장 큰 발전요소로 본 리카도는 자본가의 이익을 더 키워야 된다고 보았으며, 결국 자본가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소득(의식주의 최저욕구만을 충족시키는)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본 이론이다.
4 영향
그의 영향은 현대 경제학이 발전해온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에로 스라파 등의 불완전경제이론을 주창한 학자들도 리카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을 묶어 '네오리카도주의 경제학파'라고도 부른다.
- ↑ 본 소항목은 네이버 지식백과 데이비드 리카도 David Ricardo (시사상식사전, 박문각)에서 대부분 발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