董遇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계직(季直). 고사성어 독서삼여의 유래가 된 인물.
흥평 연간[1]에 관중에서 난이 일어나자 형 계중과 함께 단외에게 의지했으며, 돌벼를 캐어먹거나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면서 경서를 끼고 다녀 틈나는대로 되풀이해서 읽었다. 형이 비웃었지만 책읽는 습관은 고치지 않았고 건안[2] 초에 헌제의 기강이 잠시 베풀어질 때 군에서 효렴으로 천거되었다가 점차 승진해 황문시랑이 되었으며, 이 때 헌제가 정치를 조조에게 맡겼고 동우는 아침저녁으로 헌제를 모셔 경전을 강의해 헌제의 사랑과 믿음을 받았다.
217년에 허도의 모든 관리들이 황제의 명령을 빙자해 일을 행했고 동우는 함께 모의하지 않았지만 체포되어 업성에 끌려갔다가 할 일 없는 한가한 자리로 벼슬을 옮겼으며, 조조를 따라 서쪽으로 정벌을 떠날 때 맹진현을 통해 소제의 무덤을 지나치게 되었다. 조조가 무덤에 가서 아뢰어야 하는지에 의심을 품고 좌우를 돌아보면서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고 동우가 품계를 뛰어넘어 앞으로 나와서 말했는데, 이에 조조는 그대로 지나쳤다.
황초 연간[3]에 군수가 되었고 조예가 즉위하자 조정으로 들어와 시중, 대사농 등을 역임하고 몇 년 후에 병으로 사망했다.
동우는 노자와 춘추좌씨전에 통달해 그 주를 지었는데, 춘추좌씨전의 경우에는 다시 묶고 붉은 빛깔의 먹으로 주해를 달았고 사람들 중에 좇아서 배우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선뜻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먼저 백 번을 읽어야 한다면서 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고 했다. 이에 힘들고 괴로워 책 읽을 겨를이 없다고 하자 한 해의 여가인 겨울, 하루의 여가인 밤, 한 때의 여가인 오랫동안 내리는 비를 세 가지 여가로 이 세 가지 여가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여러 학생들 중에는 동우를 좇아서 배우는 이가 극히 적어 그가 붉은 빛깔의 먹으로 주해한 것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