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몽 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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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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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습)

이름레몽 코파
(Raymond Kopa)
생년월일1931년 10월 13일
국적프랑스
출신지뇌레멩
신장169cm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소속 팀앙제 SCO(1949-1951)
스타드 드 랭스(1951-1956)
레알 마드리드(1956-1959)
스타드 드 랭스(1959-1967)
국가대표45경기 18골
1956 Ballond'or
수상
스탠리 매튜스
2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3위
레이몽 코파
1957 Ballond'or
수상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2위
빌리 라이트
3위
레이몽 코파
1958 Ballond'or
수상
레이몽 코파
2위
헬무트 란
3위
쥐스트 퐁텐
1959 Ballond'or
수상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2위
레이몽 코파
3위
존 찰스

1 소개

나폴레옹

전통적으로 플레이메이커의 등장으로 흥망성쇠가 갈렸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1세대 플레이메이커. 대표팀과 소속팀이었던 랭스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빠른 속도, 드리블, 패싱 능력으로 유명했다. 프랑스 선수로는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선수이다.

2 클럽

1949년 만 17세의 나이로 2부리그 소속의 앙제 SCO에서 데뷔했다. 2년간 주전 선수로 활약한 코파는 당대 프랑스 최고의 클럽인 스타드 드 랭스로 이적한다. 랭스에서 코파는 로저 마르셰, 쥐스트 퐁텐 등과 함께 랭스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2번의 리그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컵 초대 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국가대표와 클럽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준 코파는 1955-56 시즌이 끝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헨토와 같은 무수한 스타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코파는 진가를 발휘했고 10번 롤로 뛴 것은 아니었으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승사자 군단'의 일원으로 코파는 3회의 유러피언 컵 우승, 2회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3시즌을 보낸 코파는 다시 친정팀인 스타드 드 랭스로 돌아왔다. 랭스는 여전히 강팀이었고 다시 돌아온 코파는 랭스가 좋은 성적을 내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1963-64 시즌 랭스는 충격적인 강등을 선고받았다. 코파의 하락세와 함께 팀 역시 하락세가 온 것. 코파는 팀에 잔류했고 2시즌만에 팀을 다시 1부리그에 올려놓은 뒤 1시즌을 더 뛰었다. 그러나 1부리그에 돌아온 랭스는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되었고, 코파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1952년부터 1962년까지 45경기에 나서 12골을 기록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1954년 월드컵, 1958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1954년 월드컵에는 조별리그 2경기에 모두 출장했으며 멕시코전에서는 경기 막판 PK로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광탈. 1958년 월드컵에서 코파의 활약상은 단연 돋보였다. 희대의 골잡이 쥐스트 퐁텐과 함께 프랑스를 이끈 코파는 대회에서 총 3골 9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팀을 3위에 올려놓았다.

이 대회의 활약과 레알에서의 활약이 합쳐져 1958년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1962년 헝가리와의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4 여담

폴란드계이다. 코파의 원래 이름은 Raymond Kopaszewski(레몽 코파셰프스키)이다. 광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적 광산에서 가족의 일을 도왔고 14세 때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하나 잃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진이나 내용은 추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