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서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서로마 제국 멸망
없음없음오도아케르

1 개요

Romulus Augustus.(AD461~?) 재위: AD475-AD476.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당시 서로마 제국 내의 실력자였던 오레스테스의 아들이다. 원래 이름은 로물루스였으며, 황제가 되면서 아우구스툴루스-작은, 어린 아우구스투스-가 덧붙었다.

2 생애

2.1 즉위

동로마에서 임명하여 글리케리우스 황제를 쫓아낸 율리우스 네포스가 황제로 있었지만, 이 당시 양 로마 제국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리키메르 사후 그의 지지세력이 동로마 제국과 척을 지게 되면서 그 지도자인 오레스테스[1]는 동로마 제국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추대한다.

2.2 폐위

서로마 제국에 용병으로 고용되어 있던 야만족 출신의 장교들이 봉급으로 땅을 요구했는데 오레스테스가 무슨 베짱에서인지[2]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들이 오도아케르를 리더로 하여 로마에 쳐들어와서 전투에서 이기고[3] 오레스테스를 죽인 다음 라벤나로 들어가 황제를 폐위시켰다.

물론 여전히 율리우스 네포스는 자신을 제국 서방 황제로 자칭했으며 동로마 제국 측에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황제 취급하지 않았지만, 율리우스 네포스는 이탈리아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데다, 이후 이탈리아 반도를 손에 넣은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위를 정식으로 동로마 황제에게 반납하는 제스처[4]를 취하면서 이때를 계기로 서로마 제국 황제위는 사실상 사라졌다.

2.3 이후 생애

오도아케르의 관용 덕택인지 퇴위 후에는 나폴리 근교의 자택에서 엄청난 재산을 갖고 조용히 지내다 자연사했으며, 그나마 피를 흘리지는 않은 최후였다.

로마의 초대 왕의 이름이 로물루스였고 초대 황제가 아우구스투스였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연의 일치다.[5]

3 창작물에서

Romulus_Augustulus.png

<마지막 군단>이라는 영화에서는 이 황제가 나중에 탈출해서 영국으로 가서 아서 왕의 조상이 된다는 내용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고증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 동로마 제국이 황제를 보호하겠다고 했다거나 뒤늦게 오도아케르를 승인했다거나[6], 아니면 410년에 이미 황제를 자칭한 인물에게 선동되어 극히 일부를 빼면 일찌감치 갈리아로 떠난 브리타니아의 군단이 로마 멸망 시점에도 건재하다던가[7] 하는 게 대표적.
  1. 참고로 매국노이긴 하지만 엄연한 로마인이었다.
  2. 당시 서로마 정규군은 극도로 약화되어 있었던 데다 그나마도 각 지역에 사실상 정착하다시피 한 게르만족에 맞서 분산되어 방어전을 벌이느라 라벤나를 구원할 여력이 없었다. 이들은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각개격파당하여 대부분 전멸한다.
  3. 두 번 모두 이겼고 두 번째 전투에서 오레스테스를 참했다.
  4. 서로마 황제의 관을 보냈다. 물론 동로마 황제는 당연히 이걸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이후 오도아케르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보낸 테오도리크에게 죽는 원인이 된다.
  5. 심지어 동로마 제국의 경우 기독교를 공인한 최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똑같은 이름의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마지막 황제였다. 또 어거지로나마 연장한다면, 비잔틴 제국을 멸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은 인물은 메메드 2세, 오스만의 마지막 황제는 메메드 6세다.
  6. 로물루스 황제는 애시당초 동로마 제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옹립되었으며 그렇다고 오도아케르를 승인하지도 않았다. 테오도리크가 왜 오도아케르를 죽일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자.
  7. 오히려 건재했던 군단은 갈리아 지역에 배치되어 게르만족에 맞서 싸우고 있던 군단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프랑크족과 마지막까지 싸웠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전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