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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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ing Arthur / Arthur Pendragon

아서 왕 전설주인공.

고대 브리튼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왕.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며 중세 시대의 문학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또한 중세 아홉 위인(Nine Worthies) 중 하나로 칭송을 받았다.[1]

자주 아더 왕이라 표기되지만, 외래어 표기법의 표준 표기로는 아서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아서 위즐리셜록 홈즈를 쓴 아서 코난 도일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만 맥아더(MacArthur)의 경우에는 관용 존중의 차원에서 아더로 쓰이고 읽힌다.

2 실제 역사와 아서 왕

2.1 역사적 사건

전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시기의 역사는 로마 제국의 약화로 로마령 브리튼으로부터 로마 군단이 철수한 5-6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희한하게 영국사에서도 이 당시의 역사서나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사건은 이후의 사료와 고고학적 발굴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평화가 정착된 7-8세기가 되면 이와 반대로 사료가 많아져서 아서의 모델이 되는 여러 인물들을 추정할 수 있다.

로마 군단이 철수한 힘의 공백 아래 로마화 된 주민들과 로마화 되지 않은 야만족들(사실 이들은 모두 켈트족 계통이다.)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더욱이 현재 독일 땅에 살고 있던 호전적인 게르만족 계통인 앵글족과 유트족, 그리고색슨족이 바다를 건너 침략해왔다. 결과적으로 이 당시 영국 땅에는 여러 민족들에 의한 여러 왕국이 만들어져 이런저런 분쟁이 잦았고,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 땅 대부분을 차지하고(켈트족은 산악지대인 스코틀랜드, 웨일즈, 바다 건너 아일랜드와 브레타뉴로 밀려남) 어느정도 안정을 이룬 7-8세기가 되어야 혼란이 종식된다. 켈트족의 아서 왕 전설이 이 당시 만들어진 앵글로-색슨족의 베오울프 전설과 여러가지로 비슷한 면은 바로 이때 각 전승이나 민담들이 이 두 전설에 공통적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그래서 아서 왕의 모델은 아마도 이 당시 앵글로색슨족의 침략으로부터 켈트족을 일시적으로나마 구원한 "어떤 켈트족 영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앵글로 색슨족의 공세는 한 세대 정도의 시기 동안 극도로 위축되었던 정황이 기록 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나 나타나므로, 그러한 인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이 설에 근거해서 여러 인물들이 아서 왕의 모델이 되지만, 그 인물의 존재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참고로 1981년의 영화 "엑스칼리버"는 아서 왕 전설을 집대성했다고 보는 토머스 맬로니의 15세기의 저서 《아서 왕의 죽음》(Le Morte D'Arthur: 제목은 불어지만 실제론 영어로 쓰임)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하여 배경은 시기를 알 수 없는 중세로 되어 있으며, 이는 중세 기사도 문학의 대표작이다. 대부분의 아서 왕 영화가 고대가 아니라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따라서 그가 실존 인물이라면 저런 플레이트 아머는 입었을 리가 없다.[2]

2.2 역사 VS. 신화

역사상 아서 왕 혹은 그 모델이 되는 인물이 정말로 존재했는지도 분명하지 않으며, 단순히 전설일 뿐이라며 역사상의 아서 왕 및 그 모델의 존재를 부인하는 역사가들도 많다. 역사상의 인물을 아서 왕에 대응시키려는 이런저런 노력은 계속 있어왔다.

역사상의 아서 왕의 실체에 대한 설명 중에 유명한 것은 아서 왕 전설이 브리타니아에 파견된 사르마티아 중기병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중기병 자체가 '기사'의 이미지를 연상시킬 뿐 아니라 그들이 펜드래곤과 비슷한 용의 문양을 사용했다는 점, 땅에 칼을 꽂아놓는 관습이 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된다. 또한 사르마트족의 전설에는 영웅이 죽게 되자 그의 검을 바다에 던지는 이야기[3]나, 아서 왕의 '호수의 여인'을 연상시키는 '물의 여인'도 나온다고 한다. 영화 '킹 아서'가 이런 학설을 기초로 만들어 졌다. 이에 대해서는 사르마트족과 관련시킬 만한 전설은 초기 기록이 아닌 후대의 기록에 주로 나오며, 켈트의 전설에 비슷한 내용이 많이 있으므로 굳이 사르마트와 관련시킬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있다.

그와 관련된 다른 유명한 설로는 '아서 왕 = 로마의 군인 아르토리우스'설로, 루키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Lucius Artorius Castus)가 5,500명의 사르마트 기병을 이끌고 브리타니아 북부의 '하드리아누스의 성벽'을 수비한 것이 아서 왕 이야기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의 유사성과 함께 그의 깃발이 펜드래곤이라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반론으로는 그는 로마 제국이 아직 강성하던 시기의 인물이라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점, 그가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점, 그가 사르마트 기병을 지휘했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다는 점 등이 있다. 1970년대에는 정설로 취급받았으나, 이젠 좀 아니다 싶다는 분위기.

2004년의 미국영화 "킹 아서"는 아서가 브리튼에 주둔했던 로마군의 보조병(사르마티아 중기병) 출신일 것이라는 설과, 로마인 아르토리우스라는 설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또 다른 학설로는 로마의 기록에 '브리튼의 왕(REX BRITANNICA,a king of Britons)'으로 등장하는 리오타무스가 있다. 리오타무스라는 말은 브리튼어로 위대한 왕을 의미하므로 본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리오타무스는 로마의 요청으로 무려 12,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왔는데, 이는 이 시대에 브리튼의 분쟁에서 동원되는 병력을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리오타무스는 색슨족과 맞서싸우는 입장에서 본토에서의 증원을 막기 위해서 로마와 협력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리오타무스는 로마 관리의 배신 때문에 로마군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르군드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했는데, 패배 후 리오타무스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리오타무스가 퇴각한 방향에 아발론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으므로 이 마을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학설에 대한 반론은 별다른 내용이 없고, 기껏해야 아서는 로마와 협력한 것이 아니라 로마군을 무찔렀다는 전설이 남아있다는 점 정도이다. 그 이유는 이 시대의 기록이 부족해서 연구 자체가 어렵고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이 주장의 약점이기도 한데, 리오타무스는 명백하게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서보다도 알려진 바가 적은 인물인 것이다. 아서 왕과의 관련 여부는 둘째치고 우선 리오타무스가 누구인지부터 연구해야 할 판이다.

그 외에도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가 아서 왕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색슨족을 물리친 바돈 전투를 중심으로 아서의 존재를 탐구하던 중에 나온 견해이다. 바돈 전투는 벌어진 정확한 시기도, 바돈이 어디인지도, 그리고 싸운 것이 브리튼 인들인지 로마군인지조차 불분명하지만 최소한 색슨족이 바돈에서의 패배로 활동이 수십년동안 위축된 점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사실인 듯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길다스에 따르면 색슨족 부대는 브리튼으로 너무 깊이 들어왔다가 함정에 빠져 바돈에서 포위 섬멸되었다고 한다. 길다스는 바돈 전투의 지휘관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길다스의 다른 기록을 보면 이 당시의 군 지휘관은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인 듯하다. 그런데 몬모스의 고드프리는 이 바돈 전투는 아서 왕이 지휘했다고 적었으므로,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가 곧 아서 왕이라는 것. 문제는 그 고드프리의 기록은 신뢰성이 상당히 떨어지며, 고드프리는 아우렐리아누스가 아서 왕의 큰아버지(즉 우서 펜드래곤의 형)라고 적어놨다는 점이다. 길다스의 기록을 검토한 학자들 중에도 아우렐리아누스가 활동한 것은 바돈 전투보다 앞선 시대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다른 문제는, 사실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우스는 길다스의 기록 이외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정체 역시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로마의 기록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이 가설을 따른 작품이 ABE 전집에 포함된 영국 역사소설 '횃불을 들고'인데 이 작품에서는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와 그의 조카이자 기병대장인 새끼곰 '알토스' 두 사람이 아서 왕의 모델로 나온다. (해당 소설은 시공사에서 '횃불을 든 사람들'로 재발간되었다.)

이 외에도 잉글랜드 북부의 브리튼 왕국의 왕이었던 우리엔 레게드(Urien Rheged)나 전설적인 북부 브리튼의 왕 코엘 헨(Coel Hen)[4] 등 여러 설이 있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너무 많다...

그중 역시 거인 2명을 죽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명은 콜랑이라는 이름의 키가 5m이고 거대한 탄 거인기사로 나온다. 이때 최후는 목이 잘렸는데... 목이 그대로 몸에 있고 대롱대롱 매달린체...쉽게 말해 끔살이다. 또 한 명은 산 미카엘 성에 사는 식인 거인이다. 이때 엑스칼리버로 거인을 죽이고 거인의 보물을 백성에게 나눠줬고 거인의 목을 베고....

여길 참조.

아서 왕 전설의 시기와 영국 역사를 쭉 비교해 봤을 때, 실재했다면 여러 정황 상으로 로마 지배시기가 끝나가던 때(5세기 후반~6세기 전반)가 가장 적절하며 그 시절에 실제로 영국을 통치했을 만한 강력한 군사지휘관의 증거가 여럿 나오고 있다.

그로 인해 그의 정체가 사실 로마군에 복무한 퇴역 군인이며, 로마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앵글로색슨족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혹은 그 과정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가설이 강하게 힘을 얻고 있다. 아서 왕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인 넨니우스(Nennius)의 기록에서는 그를 '왕'이 아닌 군 사령관(dux bellorum)으로 부르며, '브리튼의 왕들 편에서 싸웠다'고 서술하므로 본인은 왕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엑스칼리버 전설의 경우 금속 제련 기술의 발달로 인해 품질 좋은 금속검을 대량으로 보유했던 것을 비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가 사망했을 때 호수로 유해를 보냈다는 전설의 경우, 북유럽에서 죽은 이들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비유하는 이야기가 많아 같은 맥락으로 취급했다. 또한, 그 가설을 따르며 진상을 추적해 나가던 다큐멘터리에서는 여러 기록들을 조사해 가다가 마침내 아서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발견하기도 했다.

사실 신화의 대부분의 내용은 영국에 돌던 전설의 모음집적 성격이 짙다.

최근 켈트족 연구가들에 의해 아서 왕은 사실 폭군이었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링크의 세계일보 기사 헤드라인은 명백한 오역으로, 원문의 문구는 "genocidal warlord", 즉 번역하자면 인종학살을 저지른 전쟁지도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아서 왕의 주적은 대륙에서 쳐들어온 앵글로색슨(Anglo-Saxon)족이었으므로 색슨을 증오하는 켈트족 입장에서 색슨족을 마구 죽였다고 폭군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또한 위 기사에서 을 죽인다 운운하는데 여기서 사실 곰은 켈트족 왕권과 용맹의 상징이라고 한다. 게다가 아더라는 이름 자체가 곰의 의미가 있다. 역시 명백한 오역. 더욱 황당한 것은, 이 문제가 오역 때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저 기사에서 말하는 내용은 아서가 직접 인종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이 아니라 켈트족의 예언서 등을 보면 켈트족이 아서가 돌아오면 색슨족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내용이다. 즉 '인종학살을 저지른 전쟁지도자'가 아니라 '인종학살에 적합할 것으로 (후세에) 떠받들어진 전쟁지도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실제 역사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여하간, 주류 학계에서는 이제 아서 왕이 정확히 어떤 인물을 모델로 했는지 가려내는 일은 반쯤 접은 상태다. 위에서 설명한 인물들도 죄다 물증이 없는 추측에 싸인 가설일 뿐이다. 참고로 아서 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당대가 아닌 9, 10세기 윤색된 역사서로서 존재하는 연대기에는 그저 무슨 무슨 전투에서만 싸웠다는 기록만 있다.

다만 당시 시대를 생각하면 어떠한 가설을 따라도 지금의 상상화 처럼 철갑옷을 두른 이미지는 절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갈리아 전기에 나오는 켈트족처럼 벗고 싸웠을 가능성도 없다. 아서 왕은 소위 문명화(실제로는 로마화)된 켈트족, 즉 브리튼족의 장수에, 로마군 출신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리아 전기가 쓰여질 무렵과 아서 왕이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 사이의 시간차, 골 지방과 영국의 기후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당대의 무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체인메일로 무장 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나마도 부하들을 다 입히지는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신화와 아서 왕

아서 왕은 실제 역사적 모델과는 무관하게, 완전히 켈트 신화에서 유래한 신화적인 존재라는 설도 있다.
그중에서는 거인2명을 죽인 영웅이라는 점도 있다


실제로 아서 왕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켈트 신화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4 관련 항목

  1. 참고로 나머지 여덟은 헥토르, 알렉산드로스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다윗, 여호수아, 유다 마카베오스, 샤를마뉴, 고드프루아 드 부용. 하나같이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인들이다.
  2. 중세 이전에는 저런 플레이트 아머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3. 심지어 두 번은 던지지 않고 던졌다고 속이려는 내용도 나온다.
  4. 이 두 사람은 웨일즈의 시와 전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왕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