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대 국왕 | ||||||
샤를 7세 | ← | 루이 11세 | → | 샤를 8세 |
이름 | 신중왕 (le Prudent) |
생몰년도 | 1423년 7월 3일 ~ 1483년 8월 30일 (60세) |
재위기간 | 1461년 7월 22일 ~ 1483년 8월 30일 |
출생지 | 프랑스 부르주 |
사망지 | 프랑스 플레시스-레-투르 |
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의 6대 왕이며 샤를 7세의 아들이다.
샤를 7세가 쫓겨다니던 시절에 태어난 왕이다. 그런데 1440년 17세의 나이 때 귀족들의 반란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여 이후 17년동안 유배령을 당하게 된다. 유배에 풀려난 이후에도 역시 음모에 가담하여 1456년 부르고뉴 공국으로 도망가 부르고뉴 선량공 필리프 3세의 비호를 받았다.
아버지 샤를 7세가 1461년 죽자 루이 11세는 왕위에 올라 아버지 측근세력을 일소하고 제후세력들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1465년 불평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나 콩플랑 및 상모르양 조약으로 일부 왕령을 동생에게 넘기는 조치를 취했으나, 1477년 반란을 주도하던 부르고뉴 공국 군주 용담공 샤를 1세[1]가 스위스와의 싸움에서 죽게 되자 본격적으로 제후들에게 공세를 펼쳤고, 1480년 왕국 내 봉건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리게 되었다. 1475년 잉글랜드의 나약한 헨리 6세가 앙주 등의 주요 영토까지 칼레를 위해 포기하면서 영국은 더 이상 프랑스에 전쟁을 걸 명분을 상실했고 이것이 완전한 백년전쟁의 끝이었다.
우편제도의 창설, 민병제도의 확충 그리고 상공업 육성 등의 정책을 통해 중앙집권적 요소를 확립시켰다.- ↑ 자신을 비호했던 부르고뉴 선량공 필리프 3세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