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고등학교 야구부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강원&인천
(전반기 / 후반기)
강릉고등학교50px강원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설악고등학교
원주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제물포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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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고등학교 야구부
(Dongsan High School)
창단1945년
소속 리그인천·강원권
감독금광옥
연고구단SK 와이번스
우승 기록[1]11회

홈페이지
대회우승준우승4강
대통령배1회(2016)-1회(1990)
청룡기6회(1955, 56, 57, 59, 66, 2005)2회(1961, 77)2회(1989, 2016)
황금사자기2회(1957, 88)3회(1968, 2001, 02)4회(1986, 87, 2015, 16)
봉황대기1회(1989)-4회(1992, 99, 2004, 15)
협회장기1회(2015)--
1955년, 1956년, 195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인천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경기공업고등학교
1957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2]동산고등학교경기공업고등학교
195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기공업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경동고등학교
196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동대문상업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
1988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
1989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충암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대전고등학교
200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성남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경남고등학교
2015년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기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2017년 우승 팀
201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2017년 우승 팀

1 연혁

현존하는 국내 70개 고교야구팀 중 메이저 5개 대회를[3] 모두 석권한 경험이 있는 유한 팀

인천고와 함께 인천야구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야구부. 역대 우승 횟수로 보자면 인천야구 최강자[4]이며 사상 처음으로 청룡기를 영구보존[5]하게 된 팀.

1.1 1940년대 ~ 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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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함께 창단이 되었는데, 인천야구의 대부인 박현식의 모교로서, 박현식의 형인 박현덕이 초대 감독을 맡아 창단 초기부터 정상에 도전했던 팀이었다. 불행히도 이 시기에는 너무나 강력했던 경남중의 장태영의 위세에 눌려 결승도 가지 못하고 한 시대를 접었지만, 곧 그들의 시대가 찾아오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의 정착 과정에서 인천 지역은 우수한 인재들의 수급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1950년대 고교야구의 절대 패권 지역이 되는데, 인천고가 먼저 서동준[6]이라는 에이스를 앞세워 1953년과 1954년 청룡기를 잇따라 제패하지만, 동산고는 1955년 인천고와의 결승에서 1학년 에이스 신인식을 앞세워 첫 우승에 성공했고, 신인식이 뛰던 3년 간 청룡기 3연패와 1957년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한 시대를 완벽하게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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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고에 소장중인 청룡기.[7]

청룡기 3연패는 2012년~2014년 덕수고의 3연패가 나오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이었고[8] 덕분에 동산고는 청룡기를 영구소유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1959년 훗날 군산상고의 영광을 안겨준 이로 더 유명한 최관수[9]가 동산고의 우승을 이끌었고, 1966년 청룡기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초창기 청룡기에서 가장 많은 우승횟수를 기록한 팀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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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관수

1.2 1970년대

그리고 영광의 시대는 끝났고, 긴 침묵의 시대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였냐면 1977년 청룡기 준우승 외에는 단 한 차례도 메이저대회 4강에 들지 못하는 부진에 시달린 것. 라이벌인 인천고는 1979년 최계훈의 활약 속에 준우승 4회라도 차지했지, 동산고는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하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1.3 1980년대

겨우 빛이 보인 것은 1986년으로 2학년 정민태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정민태는 팀에게 두 차례 황금사자기 4강을 선사하고 졸업을 했고, 이대로 동산고의 우승의 꿈이 사라지나 싶었지만, 위재영이 나타났다. 1학년 신분으로 역투를 거듭하며 1988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안겨주거니, 1989년에는 봉황대기 우승도 이끌어 내면서 오랜 우승의 갈증을 깨끗하게 풀어주는데 성공했다.

1.4 2000년대

그리고 다시 한동안 침묵하던 동산고는 2001년과 200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 2년 연속 올라가지만, 각각 휘문고와 북일고에 패하면서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도 이 때 뛰었던 선수들이 자못 강한데 송은범이 1학년때부터 등판했던 에이스였다. 송은범의 1년 선배 이현승이 역시 마운드를 지켰으며, 포수 마스크는 임준혁이 썼다. 2004년 대붕기에서 조정훈의 마산용마고와 [10] 결승전에서 금민철의 호투로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강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팀 출신의 최고 선수인 류현진의 고 3시즌이었던 2005년 청룡기 대회에서 우승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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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11]

4강까지는 류현진이 평균자책 0을 찍으며 결승에 올려놓았고, 결승에서 류현진이 초반 8실점으로 무너진 후에는 최승준과 현천웅[12]이 이끄는 타선의 힘으로 0-8로 뒤지던 경기를 10-8로 역전하며 6번째 청룡기의 주역이 되었다.

1.5 2010년대

2005년 청룡기 우승을 차지한 뒤로는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동산고가 부진한 사이 그동안 인천에서도 하위권에 그쳤던 제물포고가 이 시기에 선전하면서 두 학교의 운명이 얄궂게 갈렸다. 언급되지 않는 안습인천고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다소 부진했다고 보면 된다. 2010년에 두 차례 8강에 올랐던 것이 그럴 듯한 성적.

그러나 2011년 동산고 출신 금광옥 감독이 팀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반전의 기반을 닦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산고 야구부의 실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는데 어떤 정도였냐면... 동산중학교 야구부와의 친선경기에서까지 털릴 수준(...)이었다고 한다. 결국 금광옥 감독은 선수들의 기본기 강화에 방점을 찍고 선수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금광옥 감독 부임 이후 윤용하[13], 위재영, 강귀태 등 프로 출신 동문들도 코치로 합류하면서 팀이 어느 정도의 구색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이 팀의 실력은 서서히 만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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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장기 우승

안정훈, 김찬호, 최민섭 등 3학년 투수들의 활약과 김혜성, 정수근 등 2학년 야수들을 앞세워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었다. 봉황대기에서 10년 만에 메이저 전국대회 4강에 올랐으나 경북고에 0:4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아쉽게 좌절되었으며, 6월에 열린 황금사자기에서 다시 4강에 진출했으나 선린인터넷고에 3 : 4로 역전패했다. 8월에 열린 협회장기에서 결승에 올라 충암고에 3 : 1로 승리하며 10년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2016년에는 전국대회의 예선격인 고교야구 주말리그를 통째로 씹어먹고 황금사자기와 청룡기에서도 모두 4강에 진출했으나 각각 덕수고와 서울고에 막혀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대통령배에서는 2015년 49회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결승에 진출한 서울 성남고에게 8-2로 대승을 거두며 개교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배를 차지했다.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나선 송창현이 호투했고 중심타자로 거듭난 정수근이 4타점을 올리면서 낙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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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배 우승

대통령배 우승으로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는 대한야구협회가 주관하는 전국단위 대회에서[14] 한 번 이상 우승을 차지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우리나라 고교야구에서 이 기록을 세운건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이후 동산고가 2번째.[15]

2 지역 학교와의 라이벌리

2.1 vs 인천고등학교

동산고 야구부는 인천고 야구부에 이어 인천에서 두 번째로 창단된 학생 야구단이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공존했고 1982년 제물포고가 팀을 창단하기 전까지는 인천에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유이한 야구부였기 때문에 강력한 지역 라이벌로 성장했다.

특히 1950년대 고교야구 초창기 시절에는 두 학교가 한국 고교야구의 중심이었다. 1953년부터 인천고가 청룡기 2연패를 먼저 했고, 1955년 인천고의 3연패 시도를 동산고가 저지했다. 동산고는 1955년부터 청룡기에서 3연속 우승하면서 청룡기를 영구보존하게 됐다. 인천고 입장에서는 청룡기를 영구보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얻었지만 하필이면 지역 라이벌인 동산고가 이를 저지하고 청룡기를 영구보존했기 때문에 동산고가 불구대천의 원쑤가 된 셈.

이후에도 라이벌 의식은 강해졌다. 특히 메이저 전국대회에 인천 대표(1981년 직할시 승격 이전에는 경기도 대표)로 참가하려면 지역예선을 거쳐야 하는데 지역예선에서 맞붙는 팀은 항상 동산고와 인천고였다.[16] 이러한 환경 탓에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강력한 라이벌리가 형성됐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

라이벌리의 정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꽤 어두운 흑역사도 있었다. 1975년 5월 23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경기도 예선에서 두 학교가 맞붙었는데 경기 도중 집단 난투극이 일어났다.

사연인즉슨... 이날 경기는 6회까지 동산고가 인천고에 7대0으로 크게 앞서다가 6회말 인천고가 7점을 따라잡으며 7대7 동점을 이뤘다. 그러자 동산고는 일몰 서스펜디드 게임을 노리기 위해 지연 작전으로 경기를 끌고 갔다. 당시는 일몰 이후에는 경기를 중단하고 다음날 경기를 재개하는 서스펜디드 게임이 빈번했던 시절이었다.[17]

동산고의 지연 작전은 이러하다. 투수가 1루수를 향해 무제한 견제구(...)를 던지는가 하면, 야수들이 번갈아서 타임을 걸고 스파이크 끈을 풀었다 다시 매기도 했고, 포수가 난데없이 덕아웃으로 들어가서 프로텍터를 고쳐 입기도(...) 했다.

동산고의 지연 작전에 빡친 인천고 응원단은 그라운드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고 일부는 유리병과 돌을 그라운드로 던졌다. 문제는 당시 심판들인데 동산고의 이러한 지연 작전에 구두 경고만 보냈을 뿐 제지를 하지 않았다. 결국 인천고의 한 재학생이 동산고 선수들을 향해 욕을 퍼부으며 그라운드로 난입(...)했고 동산고 선수들은 이 학생을 집단 구타했다. 그러자 학우의 구타에 빡친 인천고 응원단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었고 이에 질세라 동산고 응원단도 난입해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중앙 일간지에 기사로도 났다.당시 인천고 재학생이셨던 분의 증언도 있다. 7분 55초부터 들어보자. 결국 이 싸움의 여파로 두 학교는 청룡기 대회 출전을 포기했고 이 해의 청룡기 대회는 경기도 대표가 출전하지 않은 채 열렸다. 1975년 5월 30일 동아일보 기사 '인천야구 자성의 금족령'

동산고 출신 일부 교사들은 지역예선 당일이나 전날 수업 중 하라는 정규수업은 안하고 '인천고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의 정신교육 특별 수업(?!)을 했다고 하는데 이 수업 내용에서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바로 이 난투극이다. 물론 결론은 '야구는 야구로 이겨야 한다'였다.

이후에도 동산고와 인천고는 선수끼리는 물론 학생들끼리도 암묵적으로 강력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으며 숭의야구장에서 전국대회 지역예선이 열리던 날에는 양교 모두 1, 2학년 학생들을 응원단으로 총동원해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18] 특히 지역예선은 재학생은 물론 나이 지긋한 선배 졸업생들도 와서 응원을 하곤 했다.

2.2 vs 제물포고등학교

동산고와 제물포고는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70년에 가까운 동산고의 야구 역사에 비해 제물포고의 야구 역사는 절반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구 실력까지 동산고에 밀리면서 라이벌이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제물포고 동문회의 공격적인 후원에 힘입어 제물포고의 실력이 급상승했지만 여전히 두 학교는 라이벌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지역 내 평범한 경쟁학교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두 학교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매우 가까운 관계다. [19]

국가대표 축구에 비유하면 제물포고는 중국, 인천고는 일본, 동산고는 한국에 비유하면 얼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20]

3 출신선수[21]

이름포지션프로입단경력
박현식투수-농협-육군-미창-제일은행
금광옥포수1982년 원년 멤버경희대-삼미/청보/태평양(1982~1988)
김재현투수1982년 원년 멤버삼미/청보(1982~1986)
이광근외야수1986년 1차 지명중앙대-청보/태평양(1986-1992)
정민태투수1992년 1차 지명한양대-태평양/현대(1992~2000)-요미우리(2001~2002)-현대(2003~2007)
-KIA(2008)
위재영투수1995년 1차 지명인하대-태평양/현대(1995~2004)-SK(2005~2007)
송지만외야수1996년 2차 3라운드인하대-한화(1996~2003)-현대(2004~2007)-넥센(2008~2014)
전준호투수1994년 고졸연고지명태평양/현대(1994~2007)-히어로즈(2008~2009)-SK(2010~2011)
황우구내야수1999년 2차 1라운드인하대-한화(1999~2004)
권윤민포수1997년 고졸우선지명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인하대-CHC)
2007년 2차 5라운드
CHC(2000~2003)-KIA(2007~2008)
강귀태포수1998년 고졸 우선지명동국대-현대(2002~2007)-넥센(2008~2012)-KIA(2013)
이양기외야수1999년 2차 12라운드탐라대-한화 (2003~)
정상호포수2001년 1차 지명SK (2001~2015)-LG(2016~)
조중근1루수, 외야수2001년 2차 8라운드SK(2001~2007)-현대(2007)-넥센(2008~2013)-kt(2014~2015)
이현승투수2002년 2차 3라운드인하대-현대(2006~2007)-히어로즈(2008~2009)-두산(2009~)
송은범투수2003년 1차 지명SK(2003~2013)-KIA(2013~2014)-한화(2015~)
임준혁투수2003년 2차 2라운드KIA(2003~2016)-SK(2016~)
금민철투수2005년 2차 지명 4라운드두산(2005~2009)-넥센(2009~)
김기태투수2006년 2차 3라운드삼성(2006~)
류현진투수2006년 2차 1라운드한화(2006~2012)-LAD(2013~)
박경태투수2006년 2차 3라운드KIA(2006~)
최승준내야수2006년 2차 지명 7라운드LG(2006~2015)-SK(2016~)
김진곤외야수2009년 신고선수 입단제주산업정보대-SK(2009~2010)-고양 원더스(2012~2014)-kt(2014~)
이경록외야수2011년 9라운드동강대-대불대-삼성(2011)-KIA(2012~)
김경태투수2010년 7라운드한화(2010~)
최지만포수,내야수200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SEA)SEA(2010~2015)-BAL(2016)-LAA(2016~)
김태형투수2012년 NC 다이노스 특별지명NC(2012)-넥센(2013~2015)-LG(2016~)
이건욱투수2014년 1차 지명SK(2014~)
김택형투수2015년 2차 2라운드넥센(2015~)
안정훈투수2016년 2차 2라운드넥센(2016~)

4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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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범 2000~2002년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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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당시. 2003년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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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200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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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당시. 현재 유니폼이다.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2. 1955년 대회 우승. 1956년 대회는 동대문운동장 공사 관계로 미실시
  3. 청룡기+황금사자기+봉황대기+대통령배+협회장기
  4. 그동안 11회에 걸쳐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심지어 전국대회 그랜드슬램 기록까지 세우며 우승 기록 5회에 머무른 인천고등학교 야구부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No.3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는 안타깝게도 전국대회 우승 0회(...) 안습
  5. 후술하겠지만 1955년부터 1957년까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6. 졸업이후 한일은행 야구단에 입단해 선수겸 코치로 활약하다 선수 은퇴후 은행 업무와 TBC 야구 해설의원을 겸임하기도 했다. 이후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한일은행 지점장을 거쳐 꽤 높은 자리까지 오르기도. 참고로 서동준이 TBC 야구 해설의원을 그만두고 공백이 생기자 TBC는 체육교사를 야구 해설가로 초빙했는데 그가 바로 하일성이다.
  7. 이 청룡기는 동산고 교장실에 보관돼 있다.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께 격려를 받거나 사고를 쳐서 불려가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보기 힘들다.
  8. 덕수고와 겹치는 공통점이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청룡기 3연패, 다른 하나는 대한야구협회 주관 5대 대회를 모두 석권한 그랜드슬램 기록.
  9. 1970년 군산상고 초대 감독이 돼 군산상고를 고교 최강의 팀으로 조련시켰다. 군산상고에게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을 안겨준 197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도 이 분의 조련 덕에 가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병인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고 결국 1998년 3월 향년 57세라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10. 이틀 연속 연장 12회 혈투를 치뤘다고 수정 전 서술 되어 있었으나, 연장 12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한 건 첫 날 이었고 그 다음날은 5회 1-1 동점 상황에서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되었다.
  11. 왼쪽 사진에서 류현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저씨는 류현진아버지인 류재천 씨다. 참고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동산고등학교 동문 관계다.
  12. 대회 최우수선수.고3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건국대에 진학했으나 대학 졸업반 때 역시 미지명. 롯데와 KIA에서 신고선수로 뛰었으나 방출되었다. 한 살 위의 형 현지웅은 인천고-건국대에서 유격수로 뛰었으나 미지명.
  13. 동산고-동국대 출신의 외야수.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했으나 1993년 고향팀인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됐고 얼마 못가 은퇴했다. 프로에서는 주로 대타 요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14.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대통령배, 협회장기.
  15. 다만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협회장기를 그랜드슬램의 기록 범위에서 빼고 4대 대회로 범위를 좁힐 경우 동산고는 덕수고, 서울고, 휘문고, 경북고, 대구상원고, 광주일고, 광주동성고, 북일고, 군산상고에 이어 국내에서 10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학교가 된다. 최초의 그랜드슬램 달성팀은 1970년대 최강팀이던 경북고가 1971년에 기록을 세웠다.
  16.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인천고등학교와 인천체육고등학교가 야구부를 창단했지만 이 팀들의 실력은 두 학교에 절대적으로 밀렸다. 결국 동인천고와 인천체고의 야구부는 얼마 못 가 해체됐다.
  17. 숭의야구장에 야간 조명 시설이 설치된 것은 프로야구가 창설되던 1982년이었다. 물론 프로야구만을 위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숭의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보조경기장이었다. 결국 세계대회 개최를 위해 조명탑을 세운 셈이다.
  18. 현재는 지역예선 제도가 아닌 고교야구 주말리그를 통해 전국대회 진출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양교 응원단이 예선전에서 직접적으로 마주칠 기회는 많지 않다.
  19. 인천 중구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인문계 고등학교가 제물포고였고 인천 동구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인문계 고등학교가 동산고이기 때문.
  20. 제물포고(중국)과 인천고(일본)는 야구(축구) 말고 외적인 면(지역 명문학교로서의 라이벌리) (정치, 역사)에서 더 크다는 점. 그리고 동산고(한국)와 인천고(일본)은 야구(축구)로 따져봐도 수십년간 치열한 라이벌이었다는 점. 그래도 미세하나마 동산고(한국)쪽이 더 커리어가 좋다는 점, 그리고 동산고(한국)이 지리적으로도 다른 두 학교(국가) 사이에 끼어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제물포고(중국)이 학교역사(역사, 국력)면에서는 큰 족적을 남겼지만 야구(축구)에서는 별볼일 없었다는것도 공통점이라 하겠다. 그러면 정민태차범근이고 류현진박지성이 되려나
  21. 나무위키 등록선수만. 졸업 연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