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 전투 | ||
작전명 | ||
Operation Ironclad(철갑 작전) | ||
날짜 | ||
1942년 5월 5일~1942년 11월 6일 | ||
장소 | ||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 | ||
교전국1 | 교전국2 | |
교전국 | 영국 남로디지아 남아프리카연방 | 비시 프랑스 일본 |
지휘관 | 로버트 스터지스 | 아르망 아네 |
병력 | 10,000~15,000명 | 보병 8,000명 전차 6대 항공기 35대 군함 4대 |
피해 규모 | 107명 전사, 280명 부상 (질병 포함 총 620명 부상 또는 사망) | 150명 사망, 약 500명 부상 |
결과 | ||
연합군의 승리 | ||
기타 | ||
연합군의 안정적인 유럽·중동, 인도-호주를 잇는 보급로 확보 |
파일:Operation ironclad.jpg
제2도시 타마타브 해안에 상륙하는 연합군 병사들
1 개요
1897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의 통치아래 본국과의 교역으로 나름의 인프라를 갖추고 경제를 불려나갔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0년대 본국이 본진까지 털리자 마다가스카르는 교역량이 줄어 경제가 파탄났는데, 이 상황에서 나치 독일의 괴뢰국 비시 프랑스가 탄생했고 마다가스카르는 비시정권으로의 복속을 표명했다.
연합국 입장에서 보면 당시의 아프리카 정세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였고, 이 때문에 수에즈 운하가 막혀 연합군은 희망봉을 통해 인도양으로 나가는 우회로를 보급로로 쓰고있었다. 그런데 희망봉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마다가스카르가 갑자기 추축국으로 편입을 발표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아닐수가 없었다.
또한 마다가스카르가 추축군의 손에 넘어갈 경우 섬의 항구와 공항을 통해 추축군이 남아프리카까지 손을 넓힐 위험도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은 이 섬을 공격하게 된다.
2 연표
1942.3.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군이 디에고 수아레즈 정찰.
1942.5.5 철갑 작전 - 연합군이 디에고 수아레즈 항에 상륙.
1942.5.29 일본 잠수함 3척이 마다가스카르 도착.
1942.9.10 스트림라인 제인 작전 - 본격적으로 본토 상륙.
1942.9.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 점령.
1942.10.18 연합군이 안드리아마나리나 점령.
1942.11.1 총독 아만트 안트가 항복.
1942.11.6 연합군의 최종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