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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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証人役場事務長逮捕監禁致死事件

1995년 일본에서 일어난 옴진리교에 의한 상해치사 사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사건은 처음 의도가 살인이 아니었고 살인으로 변경된 뒤에는 실행 전에 이미 피해자가 사망했으므로 살인 사건이라 볼 수 없다.

사건의 발단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 메구로 공증인 사무소의 카리야 키요시(仮谷清志, Kariya Kiyoshi)[1] 사무장 여동생은 옴진리교에 빠져서 수천만엔을 헌납했다. 그러나 교단은 더 바치라며 이 여인의 소유로 되어있는 당시 시가 2억 7천만엔 규모의 메구로 공증인 사무소 건물과 부지를 바치라고 강요했다. 이것만큼은 들어줄 수 없었던 여인은 결국 옴진리교에서 도망쳐서 오빠인 사무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사건을 보고받고 꼭지가 돈 아사하라 쇼코는 도망친 여자를 잡기위해 오빠인 카리야 키요시 사무장을 납치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1995년 2월 28일 오후 4시, 아사하라의 명령을 받은 신도 4명이 사무실을 나온 카리야 키요시 사무장을 벤으로 납치해서 옴진리교의 비밀 아지트로 끌고갔다.

이들은 마취제인 티오펜탈을 주사하면서 사무장에게 여동생의 행방을 캐물었지만 실패했다. 처음 아사하라 쇼코는 사무장의 기억 속에서 납치감금의 기억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경시청에서 수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납치에 가담한 신도 중 한 명을 지명해 사무장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카리야 키요시 사무장은 이미 마취제를 너무 과도하게 주사당해 그 부작용으로 사망해버린 상태였고 아사하라가 명을 내린 신도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 종료"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사망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목에 줄을 매었고 사체를 소각로에 넣어 소각한 뒤 아사하라에게 보고하자 아사하라는 치하하면서 인절미와 오렌지 주스를 상으로 내렸다고 한다. 일본 경찰은 처음에는 이 사건도 살인으로 간주했으나 뒤늦게 사실을 확인하고 감금치사로 혐의를 변경했다.

아사하라는 피해자의 사망을 보고받자 "그는 원래 전생의 내 제자였다. 전생에서의 소원을 내가 들어준 것"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했다고 한다. 3월 4일, 이 사건이 아사히 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보도되자 옴진리교는 아사히 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오히려 다른 신문들도 보도하면서 사건이 더 커져버렸다. 3월 18일에는 피해자를 옴진리교로부터 구하자라는 모임에서 무려 1만여 명이 모여 옴진리교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이미 사카모토 츠츠미 살인사건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던 옴진리교는 이 사건까지 터지자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겠다고 엄청난 짓을 저지르는데 그것이 바로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본격적인 소탕 작전에 착수하면서 옴진리교가 몰락하는데 일조하고 만다. 인과응보인 셈이다.
  1. 일본 방송 동영상의 48분 4초부터 잠깐동안의 씬에 이분의 당시 모습이 나온다. 지금은 이 일본 방송 동영상은 계정 폐지로 없고, 이제부터 이분 당시 모습을 참고하려면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