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노크

뱀파이어 연대기의 등장 캐릭터. 5권은 거의가 이 녀석 얘기다. 뱀파이어 연대기는 비기독교적인 뱀파이어의 근원을 잡았다고 할 수 있는데, 멤노크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꼬인다.

멤노크는 사실 성경에서 루시퍼, 사탄, 이블리스, 거짓말하는 영 등으로 불리는 바로 그 존재다. 이름만 멤노크다. 신에 의해 창조된 천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창조된 대천사들 중 하나로, 천사들 중 가장 딴지를 잘 거는 녀석이었다. 영적 존재인 인간이 탄생하고 그 인간들의 사령들이 지구를 감싼 영계(셔올)를 창조하자, "어, 저기 있는 애들 중에도 좀만 도와주면 천국에 들어올 애들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셔올로 가서 사령들을 감화시켜 천국으로 올려보내게 된다.

이외에도 인간이 되어서 유일신 사상과 여러 가지 문명의 발전을 퍼트린다거나 하는 소소한 일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셔올에서 영혼들을 정화시킨 뒤 천국으로 올려보내는 게 주업무. 신이라는 게 영적 존재에 대해서도 패배자는 볼 필요도 없어라는 식이라, 멤노크 본인이 아, 젠장. 신이 버리면 내가 줍겠어!라는 지장보살의 마음으로 영계를 보살피고 있다. 실제로 하는 일이 지장보살 판박이다. 참고로 이 덕에 천국은 한층 더 좋아졌다는 모양. 하지만 셔올은 정화과정(대개가 영혼들의 자학이다!) 때문에 지옥이라 불리게 되어버렸다.

이 일에 넌더리가 나서 자기를 도울 누군가를 찾아 지상에 내려왔는데 마침 천사 수준으로 강해진 레스타 드 리용쿠르를 발견, 유혹한다는 게 <악마 멤노크>의 줄거리. 레스타는 도와줄 듯 도와줄 듯하다가 결국 거절했는데, 그가 한 일이 결국 멤노크를 돕게 된다.(!) 셔올에 올 인간이 그대로 천국에 가면 업무가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선행과 신앙을 온 세상에 권하는 게 악마를 돕는 거라니 좀 아이러니.

즉, 앤 라이스는 멤노크의 등장으로 비기독교적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꿔버렸다. 물론 멤노크를 긍정적이고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그가 반대하는 신은 무신경하고 어딘가 제멋대로로 묘사하기는 했다. 그러나 절대자로서의 신을 인정하고, 무엇보다 예수가 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말하자면 옛날에는 "성경이 맞을 리가 없잖아"였다면, 멤노크를 등장시킴으로써 "성경에 있는 말은 진실이야. 근데 신이 제정신이야?"라는 식으로 태도가 바뀐 것이다. 우주의 창조자가 야훼임을 인정한 것이고, 다만 그가 무신경하고 무자비하기에 그를 신앙할 수 없다는 얘기. 결국 앤 라이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