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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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각하는 예수의 모습은 십자가와 장발, 수염과 속옷 그리고 머리에 쓴 가시관이다. 그러나 이 또한 상상일 뿐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그 시대 사람들만이 알 뿐이다.

기원전 4?년[1] ~ 기원 후 30년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복음서 13장 34절[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5장 3절

1 개요

언어별 명칭
한국어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어יֵשׁוּ (예슈) 또는 יֵשׁוּעַ (예슈아)
현대 그리스어Ἰησοῦς Χριστός(이수스 흐리스토스)[3]
라틴어Iesus Christus(예수스 크리스투스), Dominus(도미누스)[4]
영어Jesus Christ(지저스 크라이스트)
독일어Jesus Christus(예주스 크리스투스)
러시아어Иисус Христос(이수스 흐리스토스)
스페인어Jesús Cristo(헤수스 크리스토)
만주어Isus Heristos(이수스 허리스토스)
베트남어Giêsu Kitô(제수 끼또), Gia tô Cơ Đốc(자 또 꺼 독)[5]
아랍어عيسى المسيح(이사 알-마시흐)[6]
아이슬란드어Jesús Kristur(예수스 크리스튀르)
이탈리아어Gesù Cristo(제수 크리스토)
일본어イエス・キリスト(이에스 키리스토)
중국어耶稣 基督(예쑤 지두)[7]
터키어İsa Mesih(이사 메시흐)
프랑스어Jésus-Christ(제쥐 크리, 제쥐 크리스트)[8]
포르투갈어Jesus Cristo(제수스 크리스토)
에스페란토Jesuo Kristo(예수오 크리스토)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류 역사상 어떠한 인물도 근접 불가능한 최대의 슈퍼 스타

그리스도교의 창시자[9]로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느 역사 전문가나 지식가나 종교인이든 아니든 거의 이견이 없다. [10][11][12] 더군다나 이슬람교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넘사벽급의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도 볼수있다. [13]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예수를 보는 시선은 종교마다 입장차가 있다. 쉽게 요약하면 이렇다.

  • 기독교에 의하면 온 인류의 구세주이자 성부, 성령과 다른 위격(페르소나)이되 본질(essence) 및 본성(nature)은 같은 자로, 그의 실체(substance)는 하느님이다.[14]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삼위일체론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을 우선 쳐내고, 그리스 철학을 통해 복음서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한 결과물이 지금의 삼위일체 정의이다.</ref>
  •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거짓된 예언자로 간주한다.[16]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가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찬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fc=4&bbs_id=libertyherald_news&doc_num=8293 극우 개신교 기자가 쓴 기사를 읽어보자.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성전이라도 선포할 기세다.]] 실제로 기독일보 같은 개신교 언론을 보면 이슬람을 공격하며 이스라엘을 띄워주곤 하는데 참.(..)</ref>[17]

또한 비종교적,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는 자신의 민족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를 대상으로 평등과 박애를 전파한 위대한 사회운동가이자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하다.[18]

성경에서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동정녀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19]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목수를 양부로[20] 둔 인물. 기독교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책의 진주인공이며 책의 전반부 자체가 이 사람의 등장에 대한 복선이다.[21] 신자들에게는 인류 최고의 영웅, 대인배로 여겨진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귀담아 들을만한 이야기들이 성경에 꽤 나오며[22] 4대 성인 중 1명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인지도 면에서는 그들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23][24]

나자렛 출신이라는 의미로 나자렛 예수라고도 불린다.[25][26] 단,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므로 나자렛 출생은 아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나자렛 출신이다.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 헤로데의 마수를 피해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해 있다가 그가 죽은 뒤 돌아와 정착한 곳이 나자렛이다. 다만 성모 마리아가 임신한 곳 역시 나자렛에 있을 때 일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은 본래 예슈아(יֵשׁוּעַ) 또는 예호슈아(יְהוֹשֻׁעַ)라는 흔한 유대인 이름이었는데,[27] 신약성경그리스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이에수스(Ἰησοῦς)라는 그리스스러운 이름으로 변형되었다. 그리스 문자에는 숫자가 할당되어 있는데[28], Ἰησοῦς는 각각 10, 8, 200, 70, 400, 200을 상징해 합치면 888이 된다.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구원해 주신다.'

그리스도(Χριστός)는 메시아(מָשִׁיחַ, mashíakh)라는 히브리어그리스어 번역이며,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 고대 이스라엘의 전승에서 기름 부음의 의식은 크게 3가지 경우로, 특정인을 지명하는 경우에 해당이 된다. 왕, 대제사장 - 하느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제사 의식의 주관자, 그리고 선지자 - 혹은 선견자, 예언자 - 이다. 신약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예수는 이 3가지의 역할 각각에 대한 정체성을 동시에 띄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즉, 예수는 신약성경 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왕, 대제사장, 예언자라는 이스라엘 민족 내부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통합적이고 최종적으로 부여받은 유일한 존재로 통용된다. 예를 들어 왕의 역할을 보면, 이는 그 머리 위에 기름을 붓는 대관례에서 비롯된 것인데, 기름 부음을 받는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었다[29]. 이 전통은 사울에게서 시작하여 다윗 때 확립된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다윗처럼 이민족을 물리치고 팔레스타인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지도자를 의미했다.

그 밖에 '임마누엘'(עִמָּנוּאֵל)이라고도 지칭되었다. 뜻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가 처녀에게서 탄생한다는 것을 예언하는 말을 구약 이사야 7장 14절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당대 유다 왕국 왕인 아하즈(BCE 736~716 재위)에게 메시아 강림을 전한 것이다. 성경 해석 과정의 예언 성취에는 부분 성취와 반복 성취가 있는데, 이는 아하즈 왕 시대에 실제로 임마누엘이라는 아이가 태어나 예표가 되었고, 예수의 탄생으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십자가형을 받아 죽을 때의 예수의 죄명은 바로 로마 제국에 반역하는 민족 지도자라는 의미인 '유다인의 왕'이다. 당시 이스라엘로마 제국 총독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있었고, 사형을 내릴 수 있는 기관도 총독부여서, 사형 제도가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형에 처해질 만큼의 죄는 무자비한 살인이나, 쿠데타 정도가 되지 않고서는 사형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는 당연히 살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쿠데타를 한 정치범으로 몰아서 처형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명패를 십자가 머리에 붙이고 형을 받았다. 때문에 가톨릭정교회에서 성물로 취급하는 예수의 십자고상 등에는 'IESVS NAZARENVS REX IVDÆORVM(나자렛 사람 예수, 유다인의 왕)'의 머릿글자인 INRI를 흔히 볼 수있다.

세속적 의미에서 세상을 평정하고 유대인들을 구원할 구세주로서 메시아를 기대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선 이단 중의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과거의 경우 유대인들에게서의 예수는 그저 사기꾼 정도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사정이 조금 나아져서 개혁에 실패한 젊은 사상가 혹은 랍비로 보는 경향이 생겼고, 심지어 예수를 본받는 랍비도 등장할 정도이다. 실제로 예수를 유대교에 도전한 혁명가로 볼 수 있지만, 살인, 간음, 이혼, 맹세, '귀에는 귀, 눈에는 눈'을 가리키는 유대교모세율법에 대해서 예수가 새로운 해석과 명령을 제시하므로[30] 타나크(히브리 성서)의 율법을 철폐하지 않으면서도(율법의 연속성) 율법을 완성한다고 본다.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청년기

예수의 조상이나 가계는 역사적으로는 불분명하나, 마태복음 1장에서 기록된 예수의 계보에 따르면 예수가 아브라함다윗의 후손이라고 나온다.[31] 예수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이고 아버지는 목수인 요셉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이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해 처녀잉태했다고 주장한다.[32] 이 이야기를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예수는 마리아의 사생아인 셈이다. 다만 이 부분은 이사야서 7장 14절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 특별한 표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33] 사실 예수는 혈연 상의 세속적인 가족에 대해서 가치를 두지 않는 듯한 언행을 자주 보였으며, 동시에 공생활 기간에는 형제들이나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했으므로, 제자들은 예수의 자세한 가계에 대한 정보를 예수 본인에게서는 별로 듣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복음서에 예수의 형제들이 언급되고, 바울 서신에서 그 중 하나 이상은 예수 사후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가계에 대한 정보는 그에게서 나왔으리라 추측하는건 무리가 아니다.

2000년 넘게 자기 생일날에 축하받아 본 적이 없는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다. 12월 25일이란 날짜는 3세기경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인기있던 태양신인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신)의 생일이었다.[34] 로마력에서는 12월 25일이 동지였기 때문. 이 시절에는 동짓점 절입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게 아니라, 달력에서 대충 며칠쯤에 오면 그 날이 무슨 날이라고 정하자는 식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 외에 예수가 3월 25일, 즉 춘분 무렵에 수태되었다는 신비적 이유로 9개월을 더하니 자동적으로 12월 25일이라고 생각했을 거라는, 꽤 정밀한 전례학 자료 고증을 통한 설도 새로 제시되었으나, 대부분 책들이 전례학과는 거리가 먼 데서 자료를 찾다 보니… 12월 25일이 무적의 태양신의 생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로마 제국 시대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로 포용하기 위한 계산이었다는 주장도 있다.[35][36]또한 출생 당시 양치기들이 양을 치고 있다는 기록이 루카 복음서 2장 8~20절에 나오는데, 당시의 양치기들은 겨울에 바깥일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의 말처럼 9월이라는 기록이 신빙성이 더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자신의 생일이라 간주하는 날에 상당수의 인류에게 빼먹지 않고 꼬박고박 매년 축하를 받는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사람. 때문에 일부 소수 신자들 중에선 세속화된 크리스마스를 안지키고 진짜 탄생일로 추정되는 날을 계산해서 기념하는 경우도 있다.[37] 요셉로마 제국의 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내려가는 도중 낳았다는 복음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정확한 출생년은 BCE 4년[38]. 그마저도 날짜에 대해서는 포기해야 한다. 이전 판본에서는 1월 4일이라고 했다. 이건 동방교회에서 역법상 차이로 동짓날이 달라진 것이다. 이것도 전례학적으로는 이미 예전에 알려진 일. 그런데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CE 1년은 물론 BCE 4년에도 호적조사는 없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최초로 로마식 호적조사를 한 것은 CE 6년이다. 일단 목동들이 밖에서 을 치다가 노숙할 정도였으면 겨울은 아니며, 오히려 초여름으로 추정된다. 로마 기록을 대입하면 좀 더 아스트랄해진다. 로마 제국의 경우는 인구조사관이 따로 있어서 각지의 인구를 조사한 통계를 남기는 경우인데, 기록에 의거하면 내전 등의 요인으로 해서 켄소르(Censor), 즉 조사관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기원전 8년과 기원후 14년으로 기록된다. 달리 말해서, 기원후 6년의 조사 역시 불분명하며, 적어도 경전 기록대로 하여 황제가 지시한 호구조사나 공식 조사는 아니거나 혹은 애초에 그조차 틀렸을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다. 12살부터 30살까지 예수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궁금해 한다.

예수의 직업은 영어판과 한국어성경 모두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갈릴래아 나자렛 지방의 목수의 아들 또는 목수[39]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를 들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가구 제작 장인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부적절한데, 원어인 그리스어로는 텍톤(tekton)은 목재를 사용하는 것이든 석재를 사용하는 것이든 건물을 짓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 일반적으로 옛날에는 나무로 집을 지었고, 한국도 영국도 옛날엔 가구를 만드는 목수와 집을 짓는 목수가 따로 구분이 엄격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번역이다. 예수가 살던 나자렛 근처는 나무가 적고, 그리스풍 신도시가 건설되던 시기였으므로 목재보단 석재를 써서 일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통해 석공이라고 번역하는게 맞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원어의 중의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아예 건설업자라고 옮기는게 제일 정확할 수도 있겠다. 다음과 같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언급이 간접적, 정황적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 우리는 저자가, ‘나는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14장 58절)
  •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마태오 복음서 7장 24-27절)
  •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코 복음 12장 10-11절)

즉 건설에 관한 비유를 여럿 하고 있다. 그에 반해 목재나 석재를 써서 일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비유는 찾기 힘들다. 결국 한국어 단어의 목수나 석공이라는 단어는 나무/돌을 이용해 건물뿐만 아니라 소도구나 가구를 만드는 사람도 포함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번역이 미묘하게 엇나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를 불문하고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지만, 성경에는 마구간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멀쩡한 가정집에서 태어났을 확률도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여관에 방이 없다는 이유로 마구간에서 출산한다는 것 자체가 뜬금없지 않은가? 당시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부유한 가정 아니면 가축이 사는 공간과 사람이 사는 공간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유에서 포에 싸진 상태로 구유에 뉘어졌다는 복음서의 기록[40]이 있으나 이는 하나님의 가호를 받은 존재라는 증표였다는 견해도 있다. 유대교에서는 포와 구유가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하느님이 인간으로, 즉 자신의 창조물로 태어났다는 것으로 상징되므로 다시 나타낼 필요가 없다. 다만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카 복음서 2:7)"라는 구절을 "여관에 자리가 없어서, 아기가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말구유에 눕혔다."고 해석하는 것 자체는 매우 자연스럽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이해한다. 또한 포와 구유가 하느님의 가호를 상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말의 반대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2.2 세례자 요한을 만나다

기존 4대 복음서는 인간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보여주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 역사적 예수에 대해 알기가 어렵다. 그나마 예수를 가장 인간적으로 조명한 복음서는 루카 복음서이다. 세례자 요한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등의 내용을 보면,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 많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41]


2.3 공생애

이후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변혁을 일으켰다. 이 변혁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삶을 사는 것[42]과 민중들을 억압하는 잘못된 유대교 율법주의 권위를 타파하는 것인데, 이는 형식적 율법에 기대어 기득권을 누리는 당대 권력자들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예수는 이로 인해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선고받게 된다.

신학자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역사적 예수를 '갈릴래아의 견유'[43]라고 설명한다. 다만, 크로산은 자기 저서에서 각지의 여러 권위자들이 역사적 예수상을 재구성했지만 서로 모두 달랐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크로산의 이론도 결국 크로산의 개인 의견.


2.4 죽음과 부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야 말로 인류구원의 상징과 약속이고,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다.

예수의 일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부활이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아 처형 되었으나 장사한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준 뒤 승천했다고 한다.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에 따르면, 예수는 이미 전부터 십자가에 매달릴 것을 예견했고, 빌라도 앞에 스스로 선 것이라 한다. 교리에 따르면 이것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된 그의 행보이며, 형벌 자체는 인간의 죄를 대신 받음을 의미하고, 부활은 죄를 사한 후의 인류구원을 의미한다. 물론 이 구원은 예수를 믿는 자에 대한 구원을 의미한다.

4복음서의 경우 일관되게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고, 복음주의가 아닌 대다수의 학자들도 네 가지 팩트(죽어서 묻힘 - 빈 무덤이 발견됨 -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난 예수를 체험 - 열 두 제자들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음)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44]

다만 빈 무덤에 관해선 역사적 예수 연구의 권위자인 존 도미닉 크로산은 부정하며[45] 부활이 육의 부활이 아닌 영적인 의미의 부활이라고 본다. 어느 지질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예수의 정확한 사망 날짜는 A.D.33년 4월 3일 금요일]이라고 한다.

어쨌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과정은 비기독교나 기독교인 상관할 거 없이 널리 알려진 매우 유명한 얘기.
약간 외적인 부분이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신' 에서는 참혹한 모습이 성스러운 표식이 되는데에 대한 거부감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기독교는 공인 이전까지는 닻을 상징으로 썼지만 공인 이후에는 십자가를 상징으로 쓰고 있다. 십자가는 사도시대에도 사랑과 희생을 상징했고 2세기 무렵에 성호를 긋는 등 사용이 점점 확대되다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 것.



3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예수의 정체

교부(敎父)들을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일치 안에서 한 분이시며 같은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데, 그는 신성(神性)에 완전하시며, 동시에 인성(人性)도 완전한 분이시고, 참으로 하느님이심과 동시에 참으로 인간이시며, 또한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계시며, 그의 신성은 성부와 같은 본질을 지니고 계시며, 그의 인격은 우리와 같은 본질을 지니고 계시는데, 죄로부터는 떨어져 있으나 모든 측면에서 우리와 같으시고, 그의 신성에 관해서는 역사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출생하셨고, 그러나 그의 인간적 출생에 관해서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한 분이시고 동일한 그리스도, 성자, 주님,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그는 2가지 본성으로 인식되는 바, 혼돈 없이, 변화 없이, 구분 없이, 분리 없이 계신 분이며, 본성들의 차이는 결합으로 인해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 오히려 각 본성의 특징들은 보존되고, 한 위격과 생존을 형성하기 위하여 함께 오며, 두 위격으로 분리되거나 나눠짐 없이 한 분 같은 성자요 독생자이시며, 말씀, 하느님, 주 예수 그리스도시며 이와 같은 사실은 심지어 가장 최초의 예언자도 그에 관하여 말씀하셨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교부들의 신조로도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칼케돈 신조-
[46]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聖父)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中-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말씀)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말씀)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말씀)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육신(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 복음서 1장 1-14절.
그분(=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

기독교적 관점에서 예수의 정체를 유추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은 요한 복음서이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는 한처음에[47] 하느님과 같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예수는 하느님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48]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말로, 예수가 인간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요한 복음서의 이 구절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100% 인간이면서[49] 또한 100% 하느님이라고 본다. 또한 예수가 하느님이면, 그리스도교가 어째서 유일신교가 되냐는 의문이 나오자 삼위일체론으로 이것을 설명했다. 즉 성부=하느님, 예수=하느님, 성령=하느님이지만, 성부=예수=성령은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한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다음 구절들을 보면 이 뜻은 더 명확해진다.[50]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God replied to Moses: I am who I am. Then he added: This is what you will tell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출애굽기 3장 14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He said to them, “You belong to what is below, I belong to what is above. You belong to this world, but I do not belong to this world. That is why I told you that you will die in your sins. For if you do not believe that I AM, you will die in your sins.” So they said to him, “Who are you?” Jesus said to them, “What I told you from the beginning. I have much to say about you in condemnation. But the one who sent me is true, and what I heard from him I tell the world.” They did not realize that he was speaking to them of the Father. So Jesus said (to them), “When you lift up the Son of Man, then you will realize that I AM, and that I do nothing on my own, but I say only what the Father taught me. The one who sent me is with me. He has not left me alone, because I always do what is pleasing to him.” Because he spoke this way, many came to believe in him.
(요한 복음서 8장 23-30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Jesus said to them, “Amen, amen, I say to you, before Abraham came to be, I AM.”
(요한 복음서 8장 58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고백하는 초월자를 뜻하는 말인 야훼는, '나는 있다', '나는 나다' 등의 뜻이며 영어로 하면 'I AM'이 된다. 그런데 인용한 구절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I AM으로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자신을 야훼라고 드러냈다.[51]

문제는 이 교리는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점이며, 초기 그리스도교의 분열은 대부분 이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 이거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아리우스파,[52] 네스토리우스파,[53] 오리엔트 정교회[54] 등이 떨어져 나갔으며, 급기야 초대교회 자체가 가톨릭[55] 정교회[56] 찢어져 버렸다.

한편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유대교이슬람에서는 바로 이것 때문에, 기독교를 다신교라고 디스한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삼위일체론 항목을 참고해보자.

3.1 타나크와 예수

흔히 예수가 타나크(구약)의 율법을 폐지하였다고 표현되지만, 이 표현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수 자신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오 복음서 5장 17절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가 보는 타나크의 율법은, 예수가 폐지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것이다. 또한 같은 원리로, 신약은 타나크를 폐지하지 않는다. 알기쉽게 비유하자면 신약은 타나크의 후속작이 아닌 확장팩에 해당하는 것이며, 따라서 타나크가 부정된다면 신약은 의미를 상실한다고 그리스도교는 해석한다.[57] 그렇기에 그리스도교는 상술했다시피 타나크에서는 예수에 관한 복선이 들어있다고 보고 있으며,[58] 심지어 예수 자신도 타나크의 복선 및 떡밥을 회수하고 자신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이를테면 이사야서의 다음 구절을 보자.

가톨릭 성경개신교 개역한글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서 52장 13절-53장 12절[59]

이 구절은 이른바 '야훼의 종'으로 불리는 이에 대한 구절로, 타인의 악행과 죄악을 짊어지고는 재판을 통하여 죽는다. 그러면서도 이 종은 초월자에게 벌 받은자로 여겨지며,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예수는 바로 이 '야훼의 종'의 행적을 자신의 삶을 통해 실현하였고, 그렇기에 스스로가 구약에 이미 예고되어있는 자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나자렛에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복음서 4장 18-19절

라며 이사야 61장 1-2절을 칠십인역에 따라 자유롭게 인용하여, 자신이 구약에 예고되어있는 예언자임을 강조했다.[60] 그외에도 자신이 요나의 기적을[61]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빵으로 장정 오천명 이상을 먹인 기적에서는 출애굽기의 만나 및 예언자 엘리사의 기적을 자신에게 연관시킨다. 또한 신명기에는 모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구절이 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신명기 18장 15절

그런데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서 모세가 수명을 마치고 난 후, 에필로그 격으로 나오는 구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이 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
신명기 34장 10절

즉 모세는 하느님이 자신과 같은 예언자를 보내줄 것이라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하였는데, 정작 신명기의 저자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시대까지 모세급 예언자는 알려진바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명기는 이 떡밥이 회수되지 않은 상태로 끝난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과 (부자관계로 표현되는) 매우 특별하고 각별한 관계를 이루며, 자신을 보는 사람은 곧 하느님을 보는 사람이며, 자신이 아버지와 어떤 동일함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야훼와 얼굴을 마주보면서 사귀는 사람'이라는 모세급 예언자의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동시에 그 조건을 뛰어넘는 예언자임을 표현한다. 이외에도, 예수는 전술한 바와 같이 자신이 타나크에 예고되어 있고 복선이 뿌려져있는 자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며, 그렇기에 타나크를 읽을 때 예수에 대한 복선과 떡밥을 찾으며 읽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 매우 권장하는 독서법이다.

당연히 유대교에서는 이런 해석을 부정한다. 유대교는 신약을 타나크의 확장팩이 아닌 동인 작품(...)으로 여기며,[62] 비록 타나크에서는 메시아의 도래와 같은 많은 떡밥들이 맥거핀 상태이기는 하지만, 묵묵히 기다리며 왜 하느님께서 복선 회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묵상할 일이지, 거짓 예언자가 떡밥을 회수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떡밥이 풀리는건 결코 아니라고 고백한다.


4 역사적 예수

역사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예수를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의 신학론이다.

5 예수/역사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6 예수/가공 매체

해당 문서 참조.


7 이슬람교에서의 예수

아랍어로 예수는 이사, 마리아는 마르얌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적개심으로 인해 이슬람이 기독교의 적이니 예수를 싫어할 것이라고 흔하게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 이슬람교[63]에서도 예수를 신이 인류에 내린 예언자 중 한명으로 보며 결코 나쁘게 보지 않고 예수는 이슬람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기본적인 연대기는 기독교와 같지만, 몇가지 결정적인 기독교와의 시각차가 있다.

우선 이슬람에서는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한다. 정확히는 이는 이슬람교의 특징으로, 이슬람에서는 하나의 신 이외에 그 누구도 신성을 가지지 못하며 '천사'들조차 기독교에 비해 훨신 수동적인 느낌이 강하다.[64] 무함마드예수가 인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예언자인건 맞지만 그들은 모두와 같이 생로병사가 있는 인간이며,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이슬람교에서 무함마드를 '숭배'하는 것은 엄연히 금지되며 무함마드 본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예수는 위대한 예언자이긴 하지만 신성을 가지거나 초월적인 존재인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연대기나 예수가 행한 기적등은 모두 인정된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 병자를 치료하거나 장애를 고치는등 예수가 한 기적들은 기독교와 같이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며,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한 것이다. 예수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예언자'니까.
  • 예수가 언젠가 부활할 것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이건 기독교의 시각처럼 신성을 가지거나 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죽은게 아니라, 신이 그가 죽은것처럼 사람들을 속인 뒤 예수를 하늘로 끌어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신 유다와 예수의 몸을 바꿔서 십자가에 박힌 것은 유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즉 예수도 인간인 만큼 일단 죽으면 다시 부활할 수 없는건 여느 인간과 같다. 예수가 부활한다는 것은 애초에 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는 현재 하나님의 곁에 있으며 심판의 날에 다시 내려올 것이다.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예수나 마리아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 더 알려면 [이 영화도 한번 참고하자. 마침 한글 자막까지 나와있으니]. 다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약간 반유대인 감정이 섞인것같으니 주의.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모세무함마드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대상인 주요 예언자(نبي, Nabi) 중 1명이며, 모세와 함께 무함마드의 선배격으로 보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예언자를 총 25명으로 보고 있는데 예수는 그 중 24번째 예언자이다. 무함마드가 25번째 예언자이다.[65] 무슬림들 중에 종종 '이사(عيسى, /ʕiːsɑ/)'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이슬람권에서 예수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슬람의 예수 신앙은 의외로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아 성모 마리아[66]로부터 출생, 죽은 자를 살리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함, 구세주로서 승천과 재림 등을 모두 믿는다. 결정적인 차이는 삼위일체론 교리,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이라는 것[67]과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자세한 사정은 나오지 않지만, 쿠란에서 자비로운 알라는 예수가 불신자에게 고통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수난은 그저 인간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며,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예수가 아니라 배신자 이스카리옷 유다라고 나온다. 알라가 권능을 발휘해 예수를 구해주었다는 것.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슬람에서는 예수에게 무함마드 처럼 신약성경을 내려주었다고 믿는다.[68]

하지만 기독교 측에서는 삼위일체론을 부정하고 십자가희생마저 부정하는 이슬람의 주장이 기독교 신학에서의 예수의 존재 의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되기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애초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몇몇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슬람의 탄생의 배후에 네스토리우스교의 예수이해가 내포되어있을 수 있다고 한다. 네스토리우스교삼위일체론을 부정하고 예수 안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엄격히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제도교회의 핍박으로 동쪽으로 쭉 도피한 네스토리우스 교회들은 파르티아 지방으로 흩어지면서 8세기 초 이슬람 세력이 북상할 무렵 중요 도시에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학교수도원이 결합된 제도로서 흩어져 있던 네스토리우스 신자들에게 어려운 환경에도 생존할 수 잇는 지식과 신앙심을 부여하고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가지게 해 주었다.

만약 정말로 이슬람네스토리우스교의 예수 이해가 반영된 것이라면, 무함마드가 어린시절 어느 늙은 수도자에게서 예수 이야기와 천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매우 심취했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 일화에서의 수도자가 네스토리우스교의 수도자일 수도 있게 된다.

예수와 신을 분리해서 본 아리우스파와도 매우 유사하다. 카르타고가 이집트와 시리아[69]보다 무슬림에게 늦게 정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바로 카르타고 중심의 아프리키야는 아리우스파들의 집산지 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다른 충돌 없이 빠른 개종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8 예수 그 이후

2000년이 더 넘게 지난 지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예수가 인류 역사에서 성인이 아니었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자를 제외하고는[70] 거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제자들사도 바오로의 행보에 의한 선교가 이루어졌으며, 수 백년 뒤에는 밀라노 칙령에 의해 로마제국국교가 되어 유럽 전역에 걸쳐서 공통된 서양 문화권을 형성하는데 한 축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 칙령 이후 서양의 철학이나 문화, 역사에 그리스도교가 끼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기독교세계에 널리 전파된 이유가 단지 서구세력역사 때문일 뿐이라면서 기독교 교리 자체는 다른 종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기독교의 교리가 유럽이 대항해시대를 열고, 르네상스 및 계몽사상 등이 나오는데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서양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된 것도 맞지만, 기독교서양의 발전에 힘을 보탠 것도 사실이다.[71] 물론 신자가 아닌 이상에야 일방적으로 특정 종교가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힘들지만, 적어도 서양 역사의 주역 중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는데 일조했던 원인은, 계급가난에 치여 핍박받는 대중이 존재해 왔고, 아직도 존재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로와 구원을 말해주는 그 교리에 있다. 이런 개개인에 대한 사랑이나 구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마음이 서양의 계몽철학+천부인권 사상을 낳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문화학자는 없다.[72]

다른 방향으로 보면, 이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류의 역사에 가난갈등이 존재하는 한, 기독교의 위상은 계속 굳건하리라는 의미다.

다만 유일신 종교라는 특성상 타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편이다. 때문에 예수쟁이라면서 기독교 신도들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신자가 아닐지라도 예수를 인류 역사상의 대표적인 성인으로 여기는 통념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다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예수에 대한 비난은 삼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쪽은 본인보다는 과도한 몇몇 강성 팬덤이 문제이고.


9 한국에서의 인식

크게 광신도, 참그리스도인, 일반 신도, 예수를 인간으로서만 존경하는 사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예수를 증오하는 사람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 광신도의 경우는 예수의 말이나 행동을 자기 멋대로 왜곡해석, 지 입맛대로 해석, 지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실천 등등 비신자는 물론 신도들이 보기에도 영 좋지 못한 짓을 하면서 깽판을 부리는 자들이다. 보통 선민사상에 찌들어 다른 사람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갱생시켜야 할 죄인으로 낮추어 볼 때가 많으며, 이런 사고관이 공격적이거나 민폐스러운 전도행위 등으로 드러나게 된다. 광신도들 때문에 한국 기독교에 평판이 매우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광신도들은 성경을 안 읽는 것 같기도 하다.
  • 참그리스도인[73]은 순수하게 예수의 사랑, 이념과 기독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려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즉 본래 예수와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였던 '하느님 나라'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도와 선교를 충실히 하는[74]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광신도와는 달리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며,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기독교도라는 티가 나고 또한 예수를 전하며 진실하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봉사와 헌신으로 선교에 참여한다. 심슨 가족네드 플랜더스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 일반 신도는 크리스찬 중에서 위 두 종류의 사람들을 제외한 신도들을 모두 일컫는 말에 가깝다. 딱히 기독교적 세계관을 비신도들에게 표출[75]하지는 않지만 교회/성당은 다닌다고 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물론 이 사람들도 엄연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며 기독교의 본래의 목적에 따르는 사람들이긴 한데, 온유도 광신도 없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다 일컫는 말로 보면 된다. 기독교도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무신론자일 수도 있지만, 다른 종교이거나 예수에 대해 별 감정이 없는 집단일 수도 있다.
  • 예수를 성인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쌍욕을 하면서 비난하는 부류도 있다. 주로 무신론자반종교주의자(특히 반기독교) 중에 많이 보인다.
  • 예수의 실존 여부를 의심하거나,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예수는 허구이기에 이를 비판 혹은 비난하기에 앞서서 논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일단 학계에서는 예수가 역사상으로 실존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을 인정하고 말고는 개인의 몫이지만, 일부 극단적인 쪽에서는 까기 위해 까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맨 위의 광신도와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 특이한 경우로, 역사적 인물 예수의 인격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리스도교는 믿지 않고, 그를 "훌륭한 분이셨으나 후세에 하느님으로 왜곡당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혹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하느님의 아들인 척 했다고 생각하거나.[76]


10 유명한 일화들

기독교의 창시자로서 서양사를 필두로한 세계사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하다고 할 수 있다.


11 어록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 루카 복음서 3장 4절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요한 복음서 8장 31-32절[7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5장 17절 ~ 18절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6장~ 3,4절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7장 1-2절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7장 7절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마태오 복음서 5장 44절
예수께서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시자... - 마르코 복음서 9장 23절
나는 생명의 빵이다. - 요한 복음서 6장 48절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 요한 복음서 8장 12절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 요한 복음서 10장 9절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 요한 복음서 10장 11절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 요한 복음서 11장 25-26절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 요한 복음서 14장 6-7절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 요한 복음서 15장 1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요한 복음서 15장 5절
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 루카 복음서 6장 27절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 요한 복음서 10장 30절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 요한 복음서 17장 21절
나는 너희가 내게서 평화를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 복음서 16장 33절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주었다. - 요한 복음서 15장 15절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 마태오 복음서 22장 37절 ~ 40절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 마태오 복음서 10장 28절
손이나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던져버려라.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낫다.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불붙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한 눈을 잃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낫다. - 마태오 복음서 18:8~9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 루카 복음서 6:24~25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7:21~2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요한복음 3:16,18,36
사실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 전체가 예수의 행록이자 어록이다.

12 예수에 대한 여러가지 말들에 대해서

예수가 살았던 당대에 메시아(=그리스도)를 자처한 인물은 상당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대대로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으로는 대표적으로 바르 코크바(130년 경)가 있었고,[78]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런 메시아 자칭자들 중 하나였다.

공관복음서에는 예수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계속 숨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윌리엄 브레데(William Wrede, 1859~1906)는 '메시아 비밀'이라는 가설로 설명한다. 예수는 원래 스스로를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규정하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가 죽은 뒤 그리스도로 규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숨겼다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단,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여서. 또한, 보수적인 기독교 신학적 해석으로는, 메시아를 숨긴 시기는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대중 치유를 했을 시기이고, 이 때에 자신이 단순한 인기인이나 치유하는 자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 즉 십자가에서 죽는 데 방해되기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숨겼다고 한다. 요한 복음서는 초기 갈릴래아에서의 활동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주로 후기에 가르침이나 랍비들과의 이야기가 쓰여졌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없다는 말.

이러한 복음서의 차이는 저자의 기술 방식의 차이, 그리고 해당 복음서가 씌여질 당시의 사회상이나 그리스도교의 위상변화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추가로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서 퍼온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예수의 생애 연구사》(1913년, 원제:《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그 연구자의 생각과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예수에게 투영하는 것임으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재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슈바이처는 자신도 역사적 예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투영한다. 슈바이처의 예수는 자기 자신을 죽여서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인물로 표현된다. 슈바이처는 그리스도가 아닌 역사적 예수만을 믿었던 인물이다. 이후 그는 신학자의 삶을 버리고 의학을 공부해 아프리카로 떠났다.

1838년 크리스티안 빌케(Christian Wilke)의 연구로 4복음서마르코 복음서가 가장 먼저 쓰여졌다는 설이 나온 이래, 그 이후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가 쓰여지고, 마지막으로 요한 복음서가 쓰여졌다는 것이 정설이다.[79] 여러 성서학자들이 받아들이는 설이라 많은 책들이 다른 설명 없이 저 설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하지만 해당 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이문 현상이 나타난다. 마르코 복음을 프로토타입으로 생각하기에는, 거꾸로 마태오 복음서나 루카 복음서에서 마르코 복음서를 옮겨 쓴 듯 보이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훨씬 복잡한 편집사/전승사적 설을 주장하는 추세이며, 특히 마르코 복음을 토대로 나머지 공관 복음이 작성되었다는 단순화는 피하고 있다. 즉 공관 복음계의 어떤 특정한 공통된 전승이 있었고, 그 전승을 토대로 복음서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차례차례 작성되었다는 것.

한편 시대상 가장 앞선다고 강하게 추정되는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든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든가, 다윗의 자손이라든가 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후대에 가필 된 것이 아닌가는 설이 존재한다. 더욱이 많은 고대사본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장면조차도 안 나온다.[80] 다만 베들레헴에서 동정녀에게 탄생한 것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내용이 빠져있는 것은, 성서비평학계에선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에 의하면, 마르코 복음서는 비유대인들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라서 예수의 혈통 같은 것에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게 원인이다.[81] 또한 시기상으로 가장 늦은 복음서이며 비유대인을 타겟으로 잡은 요한 복음 역시도, 예수의 어린 시절은 과감하게 생략되어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 중, 예수가 아니라 사도 바오로(바울)가 정립해 놓은 것들이 적지 않게 있다.[82] 바오로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유대인이었고, 초기 기독교의 핵심 멤버가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구약과의 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바오로의 생각은 한마디로 "예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류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십자가 대속이 핵심적 개념이다. 바오로는 정말로 이 세상이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현세에 집착하지 않았고 깨끗한 삶을 지켜며 예수의 재림을 기다렸다. 한편, 아담의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다는 원죄 개념은 바오로가 말한 개념이 아닌, 성 아우구스티노가 4세기에 주창한 것이다. 서신서에서 보여지는 죄의 개념은 '하느님을 싫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적인 죄를 짓게 된다는 정도. 로마서 5장에서는 아담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군상으로서 언급하고 그리스도를 순종의 새지도자로 표현한다.[83]

한떄 예수가 아내를 언급한 고대의 파피루스가 나와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하버드 대학교 캐런 킹 석좌교수와 컬럼비아 대학교의 공동분석에 의하면, 파피루스는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7~8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다만 파피루스에 쓰인 아내에 대한 견해는, 이것이 누가 썼는지 모르고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라고 밝혔다. 근데 사실 이 시기에 기록된 위경들에는 이것보다 더한 막장 스토리도[84] 얼마든지 있어서 기사와는 달리 기독교계에서는 시큰둥한 분위기로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애초에 위경이든 새로 발견한 판본이든지 어떤 내용이건간에 정경으로 확립되지 않았으면 기독교 입장에서는 정식 성경도, 하느님의 말씀도 아닌 것이니 주목할 필요가 없기 때문. [#] 그리고 결국 이 파피루스는 현대에 위조된 것으로 학자들이 [결론]을 내어 논란이 종료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피루스 자체는 오래된 것이 맞지만, 거기에 적혀있는 내용은 현대에 위조된 것이라고 한다.

12.1 결혼 여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 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

위의 말씀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인식하지만,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결혼했다는 설이나,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요한 복음서카나의 혼인잔치가 예수 본인의 결혼식이라는 설이 있다. [85] 왜냐하면 뜬금없이 결혼식 이야기가 나오는데다가, 예수가 주도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런 가설이 등장한 것. 그러나 성경 본문만으로 판단하면 이런 설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와 계셨다."나, "여인이시여,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와 같이 해당 혼인잔치가 본인과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다. 또한 예수의 성경험 여부를 놓고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을 터부시하는 관념에서 나온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찌 되었든 예수의 신성(神性)은 그의 가르침과 행동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 성경험 유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86]

12.2 외모

예수의 얼굴은 시대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중세 모자이크 등에는 젊다는 이유로 수염을 안 그리기도 하며, 무표정한 청년 전사형 예수가 대략 천년 간 유지되었다.

요즘은 보통 예수를 잘생긴 유럽인으로 묘사하지만, 그는 오늘날 소위 중동이라 불리는 곳에서 태어났으니, 유럽인(백인)이 아니라 중동계 유태인이다. 그런데 중동인들도 넓게 보면 코카소이드 인종이니 몇몇 흑인들이 주장하는 예수 흑인설 역시 완전 허구다.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이론을 남겼는데, 예수의 실제 연령은 현 서기 기준으로 3~5살 정도 많으며, 아버지인 요셉을 따라 목수 일을 했기 때문에 몸은 강건했을 것이고, 출신을 고려할 때 아랍인과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한다. 즉, 마초 같은 모습.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예수의 인종 구성 및 직업을 토대로 예수의 초상을 과학적으로 복원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무엇보다 머리가 짧다.

스파이크 리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 맬컴 엑스에서도 "하느님백인이죠, 안 그런가요?"라는 목사에게 맬컴 엑스가 "성경을 바탕으로 볼 때 예수는 전형적인 아랍인 외모를 가졌을 텐데, 헛소리 하지 마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고 이 복원도가 진짜 예수의 모습이라는 건 아니다. 이 복원도는 그 당시 그 지방에 살았던 남자의 유골을 가지고 재해석해서 복원한 것이다. 이 외모에 의하면 예수의 키는 155cm이다. 이는 그 당시 그 지방에 살았던 남자의 평균 신장에 해당된다. 같은 인종에 같은 민족이라도 외모는 개체별로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으니, 실제 정확한 예수의 모습(얼굴 및 체형)은 아무도 모른다.

이사야서 53장은 장차 메시아로서 올 예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 이사야서 53장 2절

즉 이 구절에 의하면 예수는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다.[88] 다만 이것도 깊이 따지고 들면, 시대에 따라 역변하는 미적 기준이라는 변수가 있는지라 어떠어떠하게 생겼다고 확언하기에는 여전히 어렵다. 되려 당시 기준으로 추남이 현대 기준으로 미남일 수도 있다. 실제로 똑같은 175cm/55kg의 여성이 조선 시대 초반에는 추녀였지만 지금은 미녀다.

한편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에게 발현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성화가 있는데, 굉장한 훈남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것도 성모 마리아성 후안 디에고 앞에서 발현할 때 멕시코 원주민의 외모를 지닌 채 발현한 사례를 보면, 그냥 시현자의 문화적 배경에 맞춰 주는 것일지도. 그리고 이 성화도 원본은 1934년도에 그려진 것이 따로 있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위 성화는 성녀 파우스티나가 선종하고 5년 뒤인 아돌프 힐라라는 화가가 성녀 파우스티나의 고해사제였던 안드레아스 신부의 감독 하에 그린 것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로 이 성화를 봉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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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안나 알리 수녀에게 발현했을때 찍은 모습

정리하자면 예수의 외모는 그 당시에 사진이나 초상화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다만 2000년 전 중동에 살던 유태인들의 평균적인 외모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고,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체격을 지니고 있었을 것 같다. 하튼 예수가 미남이든 추남이든, 위너루저든, 피부색이 희건 검건 다른 무슨 색이건, 그것은 호사가들의 흥밋거리 정도일 뿐이지 기독교인에게나 비기독교인에게나 의미는 전혀 없다.

체자레 보르지아라는 인물의 얼굴이 예수의 초상화의 모델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하지만 이전 시기 정교회에서도 현대 예수 성화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스타일로 그려짐을 보면 별 의미 없는 음모론이다.

13 트리비아

  • 대한민국 전주시에는 예수의 이름을 딴 예수대학교(Jesus University)가 존재한다.
  • [당신이 예수에 대해 알지 못했던 5가지]<닐 타이슨의 스타 토크>의 <과학과 종교>관련 편에서 나온 예수회의 제임스 마틴 신부가 썼다.
  • 개신교 카드 게임으로 유명한 암송왕에서는 예수가 팥죽이나 문설주의 피보다 약하다.
  • 공관 복음과 요한 복음에서 예수의 화법은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공관 복음에 자주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요한 복음에서는 단 두 번만 사용한다.(3, 3.5). 그 대신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이 강조되며, 세상,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에게서 받는 영광 등의 주제가 예수에게서 말해진다. 이러한 차이들 때문에 19세기 초부터 요한 복음의 예수 증언이 가지는 역사성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곧, 요한 복음의 예수에게서 강력하게 드러나는 신학적 성격이 역사와는 다른 관념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 연구에서는, '이것 아니면 저것' 곧 '역사 아니면 신학'이라는 과거의 양자택일에는 비판적으로 바뀌었다. 곧 요한 복음의 예수가 가지는 역사성에 대한 해답은 전에 생각하던 것 보다 더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유대 독립 전쟁 때문에 서기 1세기 초의 팔레스티나와 단절된 것으로 보이지만, 지리와 연대에 관한 자료들, 유대 지방과 로마 제국의 제도에 관계되는 사항들에 대해서 증언을 하고 있으며 당시 생활상에 대해 해박하다. 또한 저자는 스스로를 예수에 대한 목격자 곧 증인으로 여기며,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는다.(19, 35; 21, 24)[89] 이러한 면모들은 근대에 강력히 제기되었던, 요한 복음 예수의 역사성 논쟁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한다. 아무튼 이 부분은 워낙 온갖 추측과 떡밥과 썰이 난무하는지라, "이런 이런 말투가 역사적 예수의 말"이라는 식의 단정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애초에 이런 면모 때문에 '역사적 예수'라는게 현대에는 다 식어버려 유행이 지난 떡밥이 되어버린 감도 있고(...)
  •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한 이후, 예수에 대한 재판이 불법적이며 무효라고 인정해달라는 청원장이 이스라엘 법원에 접수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 법원은 이 골때리는 문제에 대해서, '예수는 로마 제국 법에 따라 처벌받았으므로 로마 제국의 후계인 이탈리아 법정에 가서 소송하라'는 답변을 보냈다. 하지만 현대 법치제도에서 고소자(유대인)가 아니라 판결자(로마 제국 법원)만이 피고(예수)의 명예회복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상식이다. 당연히 바티칸이 있는 이탈리아에선 진작에 무고함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 시대 로마 제국 속주들의 모습을 보면, 산헤드린에서의 판결이 사실상 확정적인 판결이라 볼 수 있다. 속주 유력자들이 내린 의견이기 때문에 보통 로마 제국 총독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게 보통인데, 잘 받아들이지 않아서 속주에서 분란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책임은 총독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다 받아들여 주었다. 로마 제국은 분명 속주에 대해 우위에 있지만, 속주 총독은 현지 유력자들을 무시할 수 없단 이야기. 복음서에도 바라바 대신 예수를 처형하라는 유대인들의 요구를 민란이 날까봐 무서워서 들어주었다는 말이 있다.
  • 일각에서는 예수는 자녀를 두었고 예수의 사위가 메로빙거 왕조의 초대 국왕이었다고 한다. 만들어진지 백년도 안 된 헛소리다.
  1. 서력 기원은 정의 상으로는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기원 전이란 뜻의 BC는 Before christ 의 약자고, AD는 Anno domine의 약자. 그런데 후대 역사학과 신학의 연구 결과, 초기 신학자들이 연표를 잘못 세는 바람에 (...) 약간의 갭이 생겼음을 알게 됐다. 헤롯 대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성경의 기록과, 헤롯이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는 점을 결합해 기원전 4년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현대 신학에선 헤롯이 말년에는 중병을 앓아 통치를 제대로 못했으니 그보다 좀 더 전인 기원전 6년 쯤이라는 설을 지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 부록에는 기원전 4년으로 기록됐다.
  2. 예수의 사상을 한 줄로 표현한 어록이라고 볼 수 있다.
  3. 코이네 그리스어 발음은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4. 영어의 Lord와 같은 뜻. Domini는 Dominus의 소유격이나 속격, 혹은 복수이다. 여담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BC#s-4(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 할 때의 Domini가 이 뜻이다.
  5. 수많은 표기가 있다.
  6. 메시아 예수라는 의미이며, 야수 알-마시흐(يسوع المسيح)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7. 한국식으로 읽으면 야소 기독. 조선 시대 가톨릭 신자들이 야소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기독(基督)은 기독교의 그 기독 맞다. 그리스도의 한자 가차이다. 참고로 광동어로는 예써우 게이둑(Je4sou1 Gei1duk1), 대만어로는 Iâ-so͘ Ki-tok(야쏘 끼똑), 그리고 하카어로는 Yâ-sû Kî-tuk(야쑤 기둑)이라고 한다.
  8. 가톨릭식으론 제쥐 크리 /ʒe.zy.kʁi/, 개신교식으론 제쥐 크리스트 /ʒe.zy.kʁist/라고 발음한다.
  9. 정확히는 예수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예수 사후에도 초기 기독교는 유대의 분파로 인식되었다.
  10. 탄생 이후 2000년이 넘은 지금 전 세계 인구의 약 1/3인 24억명 정도의 인구가 기독교 신자다.
  11. 오로지 종교적 관점에서가 아니다. 당장 유럽이나 미국 등 오랜 역사를 이끌어오거나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권에서 탄생한 문화, 언어, 미술, 음악, 문학 심지어는 정치 등에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는 단 하나도 없다. 와닿지 않는다면 지금 날짜부터 확인해보자.
  12. 당장 기원전과 기원후를 예수를 기점으로 나눈다는 것과, 또한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이후 로마 제국이 대략 A.C 300년 이후부터 가톨릭을 국교로 지정한 이래로 르네상스가 오기전까지 인류역사에 중세시대 전체를 관장한 사상인 헤브라이즘을 유산으로써 남긴 사람이며, 그 여파가 현대까지도 남아 가톨릭+개신교를 통틀어 대략 24억의 신자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예수다.
  13. 이전 문서에서는 인류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 중 하나라고 언급하면서 그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하게 독보적인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투로 작성되었지만, 현실은 기독교 문화이건 비기독교 문화이건 우리 주변에는 다른 그 누군가가 남긴 것 보다도 예수와 연관된 문화의 산물이 쌓이고 쌓였다.기독교 아니라고 쓸데없이 부정하려 들지 말자
  14.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예수는 100% 거짓 없는 하느님이면서 또한 거짓 없는 인간이며, 창조되지 않은 자,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한 자이다. 그는 창조주임에도 피조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었다고 한다.
  15. 이슬람에서 예수는 무함마드와 같은 급의 위대한 예언자로 존경 받지만 결정적으로 기독교와 다른 점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다는 점. 이슬람에 의하면 하나님에게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다고. 참고로 아들은 기독교를 저격한 것이고, 딸은 아랍의 전통 다신교를 저격(...)한 것이다.
  16. 타나크(히브리 성서) 신명기에 '거짓 예언자'에 대한 묘사가 있다. 예수가 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에 맡기도록 하자.
  17. 사실 그렇게 까지 이상한것은 아니다. 한국의 개신교가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그 덕분에 골수 기독교인들을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공화당이 유대인들을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민주당보다 더 친-이스라엘적 행보를 걷는다. 이스라엘에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면 예수가 재림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18. 당연히 공산주의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해 부자의 재산을 뺏으라는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 참고로, 그리스도교는 교리상 공산주의와는 상극이지만, 사회주의에는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19. 마태오 복음서 12장 46절-50절 참고.
  20. 관점에 따라 달리 본다.
  21. 다만 유대교에서는 이 책의 후반부를 동인지 취급한다.
  22. 그러나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비신자들은 예수를 알아 들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항목 참조.
  23. 그러나 신자들은 4대 성인이라고 당연히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인과 한자 문화권의 성인은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
  24. 물론 반기독교 측에서도 4대 성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기를 따르려고 하는 자에게 죽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게 해 달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라는 말을 하는 것과 떠나기 전에 가족과 작별을 허락해 달라는 말에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함으로(루카 복음서 9:57-62 ) 가족조차 버리고 따르라는 한 사례를 들어 거부감을 나타낸다.
  25. 또는 나사렛. 공동 번역과 가톨릭 번역에서는 나자렛을, 대부분의 개신교 계열 번역에서는 나사렛을 사용한다. 예수가 살던 시절 라틴어로는 예수스 나자레누스(Iesus Nazarenus), 현대 히브리어로는 예슈 하노츠리(ישו הנוצרי).
  26. 이에 대해 유대인에 풍습에 의거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유대인이 성(姓)을 구별짓는 방법이 2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누구의 아들 누구 의 방식인데, 한 예로 예수의 12제자(혹 사도#s-2)중에 야고보라 칭하는(이름하는) 자가 둘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다. 둘째로, 지명을 이용한 성인데 예수와 관련된 시몬으로써 첫째는 예수의 수제자이며 베드로(혹 게바/케바)라고도 불리는 갈릴래아(게넷사렛) 베드로가 있고, 예수가 십자가를 드는 것을 도와 준 퀴레네 시몬이 있다
  27. 구약의 지도자(혹 지휘자) 중의 한명인 여호수아가 예슈아의 어원이다
  28. 그리스 숫자는 그리스 문자로 표기된다. 알파가 1, 베타가 2 같은 식이다. 병행표기될 경우 숫자 쪽에 특정 부호를 작성하여 구별한다.
  29. 사무엘상 10장 1절, 16장 1~13절, 시편 2장 7절, 89장 26절 참고.
  30. 마태오 복음서 5~7장 산상수훈 참고.
  31.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 마태복음 1:17
  32. 성경적으로 보면 이는 창세기 때부터 이미 암시가 되어 있었던 부분이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의 꼬드김에 넘어간 하와와 그녀의 남편 아담이 나무 열매를 먹는데 그 이후 여호와가 뱀에게 벌을 내리는 부분 중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라는 말이 나온다. 이 구절에서 '여자의 후손'은 '남자의 개입 없이 탄생한 동정녀의 아들'으로 해석할 수 있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은 예수가 죄를 이기고 세상을 구한다는 것,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예수가 죽음을 겪어 넘어지나 상한 발꿈치가 나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듯이 예수가 죽고 3일 후 부활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3. 해당 이사야서의 히브리어 원문은 동정녀가 아닌 '(결혼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젊은 여인'이다. 그런데 구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역 성경에서는 그것을 동정녀로 옮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하느님의 특별한 표징' 중에는 처녀잉태가 포함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34. 가끔 솔 인빅투스와 미트라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트라를 포함한 각종 태양신을 짬뽕시킨 신이 솔 인빅투스이다.
  35. 쉽게 말하면 이러하다. 로마인들은 12월 25일에 솔 인벡투스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축제를 벌였다. 당연히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선 솔 인벡투스의 탄생을 축하하는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축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솔 인벡투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합시다"라고 말한 것.
  36. 세례자 요한이 니산월 14일(태양력 3월 말경)인 파스카에 태어났다는 계산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티쉬리 15일(태양력 9월 말경)인 초막절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성서학적 해석으로는 초막절 출생은 의미가 있다.
  37. 사실 가톨릭 대사전의 '예수성탄' 항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적인 기념일, 예수의 실질적인 탄생일에 관하여 구약전승과 신약성서에는 기록된 바가 없고,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의 날짜나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儀式)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 날은 어디까지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 탄생한 날이 아닌 것.
  38. 현대신학은 BCE 6년을 지지한다.
  39. 그런데 예수의 직업이 목수였다는 걸 모르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다.
  40. 루카 복음서 2장 참고
  41. 애초에 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엘리사벳이 친척이기 때문에, 예수와 세례자 요한은 약간의 혈연이 존재한다. 사실 나이도 6개월밖에 차이가 안 난다.
  42. 개신교 복음서에는 '회개'라고 표현되지만, 그리스어 원문은 '생각을 바꾸다'라는 뜻.
  43. 犬儒, Cynic. 헬레니즘 철학의 한 사조였던 키니코스학파 계열의 사상가. 이들은 들개처럼 사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견유라고 번역한 것이다. 인류문명의 가치를 근원적으로 거부하고 철저한 무소유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세상을 떠돌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료행위를 했다고 한다.
  44. 특히 예수가 잡힌 즉시 순식간에 와해되었던 제자들과 신도들이 갑자기 열렬하게 그리스도가 부활했음을 외치며 순교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어떤 영적인 경험(부활이든 아니든 간에)을 했고 그 경험으로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다.
  45.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의 시체는 매장되지 않고 버려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 그러나 매장된 경우도 꽤 있고 축제기간이라 자비를 베푸는 차원에서 매장시키게 해줬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46. 영어 번역본을 중역하되, 이 항목에서는 person(페르소나)은 위격으로, nature는 본성으로, essence는 본질로 번역했다.
  47. '한처음'은 라틴어로 In principio. 창세기에서도 사용된 말로, 단순히 시간상으로 처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단순한 시간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정도의 의미이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인 '한처음'이라는 요상한 말로 번역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타입문 세계관의 근원이라는 말이 떠오를 수도 있는데, 사실 진짜로 그것과 비슷한 의미이다.
  48. 라틴어로 caro. 번역에 따라 이를 육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한국어 가톨릭 성경. 그런데 라틴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말은 homo이고, 그렇기에 요한복음에서 굳이 homo 대신 caro를 택한 것은 꽤 주목할 만하다. 굳이 이 구절에서 복음서가 caro라는 말을 쓴 것은, 예수가 단순히 인간의 형상을 취한 것이 아니라, 나약한 육신을 지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었다는 뜻으로 적은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에서 티리엘필멸자가 된 것이 연상될 수 있는데 실제로 티리엘의 모델이 예수이고, 이 구절에서 caro는 '필멸자'에 가까운 뉘앙스로 쓰인 말이다.
  49. 원죄가 없다는 점 때문에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은 원래 원죄가 없는데 아담하와의 죄 때문에 원죄에 시달리는 것이다. 즉 예수가 원죄가 없다고 해서 그가 사람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사람은 세례만 받아도 원죄를 용서받는다.
  50. 인용한 국역 성경과 영어 성경은 각각 가톨릭 성경과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새 미국 성경 개정판, NABRE)이다. I AM의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역본들을 인용했다. 또한 NABRE에서 I AM을 대문자로 강조한 것도 그대로 인용했다.
  51. 참고로 흔히 성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알려진 야훼는, 성부만을 뜻하는게 아니라 삼위 전체를 모두 지칭한다. 그렇기에 가톨릭 성경 등에서 야훼를 성부가 아니라 주님(Dominus)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애초에 야훼는 엄밀히 말하자면 제우스, 오딘 같은 이름이라기보다는 존재방식의 표현에 가까운 어휘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말 그대로 I AM이다. 예수가 야훼라고 하는게 양태론이라고 잘못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양태론은 예수가 성부라고 하는 것이지 야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52.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며, 하느님이 창조한 인간이다'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파가 세력을 얻은 곳은 중동지역인데, 훗날 이슬람에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이슬람이 이해하는 예수는 아리우스파의 관점과 비슷하다.
  53.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았다. 정통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다. 위의 칼케돈 신조에서 보듯이, 정통 신학에서는 예수에게 인성과 신성이 혼돈 없이, 변화 없이, 구분 없이, 분리 없이 있다고 본다.
  54. 예수에게는 신성만이 존재하거나, 인성만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55. 성령은 성부와 예수에게서 발한다고 보았다.
  56. 성령은 성부에게서만 발한다고 보았다.
  57. 일찍이 마르치온 같은 경우 "타나크 폐지하고 신약으로만 가시죠?"라고 주장하였으나, 교회에서는 "오리지널 없이 확장팩을 어떻게 돌리라는 것이오?"라며 파문했다.
  58. 때문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토라 즉, 모세오경을 해석하는 경향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유대교는 토라를 율법에 대한 근거로 여기며, 심지어 흔히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쯤으로 해석하는 창세기에서도 할례의 유례 등을 찾아내며, 그렇기에 엄연히 율법서로 취급한다. 반대로 그리스도교에서는 토라인 모세오경에서 복선을 찾아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출애굽기는 복음서의 복선으로 본다.
  59. 왼쪽은 가톨릭 성경, 오른쪽은 개역한글 성경이다. 화자가 야훼인지 이스라엘 사람인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묘사되어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는 운문이다. 워낙 중요한 구절이다보니, 양쪽 모두 번역자들이 영혼을 갈아넣어 맛깔나는 번역을 보여준다. 굳이 양쪽 번역을 다 인용한것도 이 때문.
  60. 칠십인역의 이 구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구약 본문은 다음과 같다.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61. 예언자 요나는 사흘동안 물고기 배속에 있었다가 나왔고, 이후에 이민족인 아시리아에 유대교 신앙이 전파된다. 이에 대비되어 예수는 죽은지 사흗날에 부활하고, 이후에 민족신앙적 요소를 완전히 탈피한 그리스도교가 세계로 퍼진다. 여기서 눈썰미가 빠른 사람은, "요나는 3일동안 물고기 배속"이었고 "예수는 세번째날에" 부활이므로 날짜가 하루 차이 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시대에 따른 어휘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복음서는 이 어휘변화의 과도기로 학계에서 추정되고 있다. 이를테면 루가복음에서는 예수의 부활이 '사흘만에'라고 표현되고 마태오 복음에서는 '사흗날에'라고 표현된다. 그러나 공관복음은 모두 예수가 금요일에 사망하여 주일(일요일)에 부활했음을 고백한다.
  62. 비슷한 이유로 강성 유대교 신자들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 성경을 운운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데,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인 작품인 신약과 꾸란을 가지고 본편을 해석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 동인 작품들 때문에, 본편이 전세계에서 히트친건 안자랑
  63. 종교에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이슬람과 기독교는 모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뿌리가 같으니 당연한 거다.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종교의 우위는 이슬람>기독교=유대교>>기타 다신교>불교>>>무신론 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같은 신을 믿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보며 다신교는 잘못된 신을 믿지만 신성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니 그 아래로 보고 신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를 가장 나쁘게 본다.
  64. 그러니까 천사가 자의를 가지고 인간을 돕는다기보다는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기계같다는 느낌이 좀 더 강하다.
  65. 알라가 예언자 25명을 세상에 내보냈는데 그 중 중요한 예언자가 모세, 예수, 무함마드 이렇게 셋이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무함마드가 꿈에서 모세를 만나 하루에 몇 번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을지 상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66. 아버지 없이 잉태된 것까지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라고.
  67.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는 ' 아버지도 아들도 없이 홀로 계신분' 이다. 즉, 예언자건 누구건 간에 아들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68. 하지만 이는 이슬람에 있는 신약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인데, 신약 성경 중에서 예수가 집필한 성경은 전혀 없다. 그의 제자가 예수의 생애를 서술한 것. 이러한 차이 때문에 무슬림들은 현존하는 신약성경은 변질되었다고 본다. 민간에서는 구, 신약 성경이 쿠란처럼 원래는 아랍어로 내려졌다고 믿는다.(아랍어는 천상의 언어이기 때문에)
  69. 이집트와 시리아에는 비칼케돈파 교회들이 현존하고 있다.
  70.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과 동급의 취급이다.
  71. 진화론 vs. 창조론 등의 이미지 때문에 과학발전을 기독교가 저해했다는 오해도 있지만, 중세 시절 자연철학(후에 과학으로 발전)의 가장 큰 후원자는 교회였다. 물론 처음 자연선택설이 나왔을때 기독교 측에서 보여준 반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과학과 상극인 종교는 아니다. 마치 공학과 예술이 때로는 삐걱거릴지언정 본질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이듯이, 과학과 기독교는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다.
  72. 짧게 설명을 하자면, 천부인권(자연권)의 개념은 자연법에서의 인권을 뜻하는데, 서구의 자연법 사상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들과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중요시 한 개념이다. 애초에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한 조물주'가 어느 종교의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서구의 천부인권적 개념이 그리스도교의 문화적 배경에서 나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73. 보통 기독교도 입장에서. 비신자들이 보는 '참기독교도'는 또 다를 수 있다.
  74. 예수가 가르치는 하느님 나라는 복음을 열심히 전해서 세상을 구원받게 하라는 사명과 함께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가 대우받는, 하느님의 정의로운 통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의미한다.
  75. 기독교적 수사, 비유를 사용한다든가.
  76.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의 주인공이 이런 경우이다. 논쟁 중에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자 상대가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이냐고 묻고, 그녀는 '요즘같이 핵전쟁의 위협이 큰 세상에 그런 분이 평화사상을 퍼트려 주셨으면 좋겠다.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라고 답한다.
  77. 연세대학교의 모토, 건학 이념이다.
  78. 이 사람을 당대의 유명한 랍비 아키바메시아라 인정해 버렸다. 랍비 아키바 일생일대의 뼈아픈 실수. 결국 바르 코크바는 메시아로서 對 로마 제국 독립운동을 벌이다 패배한 뒤 예루살렘 성이 허물려버렸다. 성전이 허물려 버린 것은 그보다 이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기인 서기 70년 경으로,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지 고작 한 세대가 지난 다음이다.
  79. 661절로 구성된 마르코 복음서 중 600절이 마태오 복음서에 들어있고, 루카 복음서에는 350절 정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80. 흰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젊은이가, 부활 소식을 전하고 끝난다.
  81.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란 점과 베델레헴 출생이란 점, 동정녀의 아들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메시아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 에피소드와 족보는, 비유대인과 비교할때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82. 물론 그렇다고 예수가 남긴 교리가 별로 없다고 이해하는 것도 곤란하다. 요한 복음 3장에서 예수가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 자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하나라고 증언한 이야기 등 예수 스스로가 남겨놓은 교리들도 상당 수 있다. 가톨릭에 의하면 교황수위권 역시도 예수가 정해준 교리. 가끔 매우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사실 기독교 초기 교리는 모조리 바오로가 만든 것이고, 예수는 가상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오늘날에는 학계에서 부정당한다. 자세한건 예수/역사 참조.
  83.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해 죽음이 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온 인류에게 죽음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으나 그 때는 율법이 없어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이 지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은 아담이 지은 죄와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은 더 많은 사람에게 넘쳤기 때문입니다. 또 거저 주시는 이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생긴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지은 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심판을 받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많은 죄인들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지은 죄로 죽음이 사람을 지배하였으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치 않으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될 것입니다. 율법이 들어와서 범죄가 늘어나게 되었으나 죄가 늘어난 곳에는 은혜도 더욱 풍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죄가 죽음이란 수단으로 군림하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의로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12‭-‬21
  84. 야설 급의 내용이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스토리의 위경도 허다하다.
  85. 랍비는 기본적으로 결혼을 해야만 인정을 받았는데, 예수 또한 랍비로 불렸기 때문이었다.
  86. 참고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메이저한 종교 중에서 성 행위에 대하여 가장 긍정적인 해석을 하는 종교이다. '성 행위'를 '창조'의 연장선으로 보기 때문. 그리스도교에서 금기시 하는것은 '성 행위'가 아니라 결혼 제도를 벗어난 성 행위이다. 그리고 사제수도자들이 독신을 지키는 것은 성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성욕 그 자체를 봉헌하기 위해서이다.
  87. 서방 라틴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면도를 야만민족과 구별짓는 문명인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동로마와 비잔틴 지역 로마인들은 수염을 기르는 것을 멋이자 기품으로 여겼다. 즉 거대한 영토를 가졌기에 광활한 영토만큼 문화의 차이가 있었고 그에 따라 예수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멋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카톨릭 교황이 면도를 하고 정교회 총대주교가 수염을 기르는 것을 생각해보라.
  88. 이사야서는 B.C. 700년에서 600년 사이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구절이 실제 예수의 외모를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89. 이 구절들은 복음서의 원 저자가 한 말이라기보다는, 그의 저자들이 마무리를 하며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