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가 3형제

일본 전국시대 모리 가문, 모리 모토나리의 세 아들.
모토나리는 슬하에 10남 2녀를 두었으나, 그 중에서도 장남부터 삼남까지가 특히 유명하다.

장남은 효심이 지극하고 내정면에서 아버지를 충실히 수행하였고,
차남은 무에 밝아 가문의 맹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삼남은 문에 밝아 가문의 지장으로서 각각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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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세 아들을 모아놓고서 각자 화살 한 대씩을 부러뜨리게 하자, 모두가 쉽게 부러뜨렸으나 이번에는 화살 세 대를 한 번에 부러뜨리게 하자, 이번에는 모두가 부러뜨리지 못했음에
'이렇듯 세 명이 합심하면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는 세 화살의 교훈으로 유명하다.[1] 이 이벤트의 존재 때문에 3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울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실상은 영지 분할과 가문 운영, 성격차 등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못했다. 즉, '세 화살의 교훈'이 사실이라면 가문의 분열을 우려한 모리 모토나리의 아이디어였을 터.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서 모리가 3형제가 막장으로 싸우지는 않을지언정 다소 갈등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2]

실화 여부를 떠나서, 옛 모리가의 영지였던 아키와 빈고(현 히로시마 현)에는 세 화살의 교훈(三矢訓)이 관광 상품으로 쓰일 정도로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히로시마의 축구팀 이름은 산프레체 히로시마[3]일 정도.

여담으로 삼형제 모두가 정실 외의 측실을 두지 않았다. 아버지 모토나리도 정실이 죽고난 다음에야 측실을 두었다.

  1. 단, 이 이야기는 배경이 이미 장남이 사망한 이후가 되어있어, 실화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코에이의 역사시뮬레이션 게임 태합입지전5에서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자 이벤트 발생년도를 장남이 죽기 전인 1561년 ~ 1562년으로 설정해놓았다. 여담으로 이 일화의 원전은 중국 춘추 시대의 이야기다. 원래 일화가 춘추 시대때의 일화임을 생각하면 모토나리가 사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석할수도 있을 것이다.
  2. 모토하루와 타카카게는 각각 킷카와와 코바야카와 가문이 본가보다 우수하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나와 모토나리의 걱정을 산다. 거기다가 장자인 타카모토가 동생들보다 보여주는 능력치는 낮다보니(대신 가운데서 중심을 지키는 인물이라고 해석) 더더욱 모리 본가에 대한 경외심이 없어지게 된다(이 때문에 이츠쿠시마 전투 이벤트에서 모토나리는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모리 가를 이어야 된다며 타카모토는 후방으로 빼둘려고 했지만 타카모토는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이를 본 타카카게가 어차피 형님 혼자 남으면 모리가는 전멸이나 마찬가지이니 같이 데려가죠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다소 우습게 보이고 있었다. 사실 타카모토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함께 싸우러 가겠다고 고집한것.). 거기에 모토하루와 타카카게는 서로 공을 다투는 모습을 보인다
  3. 3+Frecce=세 대의 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