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經七書
1 소개
중국의 일곱가지 대표적인 병서를 묶은 책이다. 송나라 사람인 원풍이 이 일곱서적을 뽑아 칠서라 부른게 유래라고 한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무과의 시험과목으로도 사용되기도 했었다. 유명한 무경총요가 바로 이 무경칠해의 참고서이기도 하다.
2 구성
- 각각 춘추전국시대, 오손자라 불리는[1] 손자 손무가 저술한 손자병법.
-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문후와 무후를 섬겼던 오자 오기가 저술한 오자병법.
- 주나라 태공망, 혹은 한나라 황석공이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육도와 삼략.[2]
- 진나라 울료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울료자.[3]
- 제나라 사마양저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마법.[4]
- 당 태종이 묻고 그 신하 이정이 대답한 문답내용인 이위공문대.[5]
3 내용
이중 가장 유명했던 두 병서인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묶어서 손오병법이라고도 칭했으며, 육도와 삼략을 합쳐서 육도삼략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중 오자병법, 사마법은 손실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울료자 역시 완전히 보존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 병가의 율료자와 잡기로 구분되는 울료자가 있었기에 현존하는 울료자가 병가의 울료자인지, 잡기의 울료자인지, 혹은 양쪽의 혼합인지도 의문시되고 있는 상태.
오손자 손무가 저술한 손자병법의 경우 그 손자인 손빈이 저술한 손자병법과 혼돈되었던 적도 있었으나, 손빈의 손빈병법이 발굴되면서 두 개의 손자병법이 동시에 공존함이 밝혀졌으며 흔히 손자병법하면 손무가 저술한 총론 13편, 각론 82편 [6]의 손자병법을 의미한다.
손오병법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즉 육도, 삼략, 울료자, 사마법, 이위공문대는 저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 실제 육도나 삼략은 한나라나 수나라에 와서 저술, 통합되었다는 설도 있고 사마법 역시 사기의 저자 사마천에 따르면 그 내용이 굉장히 방대할 뿐더러 병법만을 논한 서적이 아니었다고 하며, 사마양저 본인이 저술한 것이 아니라 사마양저의 이름만 딴 병법으로 언급되어있다. 울료자 역시 방효유(方孝孺)가 위서라고 언급한 이래로, 청나라 시기 이후로는 위서라는 것이 통설이 되어버렸다. 이위공문대 역시 정사에 기록된 이정의 저술들 가운데 그 이름을 찾을 수 없고, 실질적으로 송대 이후의 무경칠서 합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실물을 본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증학이 발달한 명청대 이후에는 거의 위서 취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