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길리우스

Publius Vergilius Maro
BC70 ~ BC 19

1 개요

풀네임은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 고대 로마의 시인이다. 초기 작풍은 에피쿠로스적이라고 하나, 후기로 갈수록 스토아적이라고 한다. 여러 작품이 전해지지만, 현재로서는 농경시, 전원시, 아이네이스만이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시집 아펜딕스 베르길리아나는 베르길리우스의 것이라고 오래 알려졌으나, 현재는 개중에 몇몇은 베르길리우스의 초기 시일지 모르겠으나 나머지는 베르길리우스의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베르길리우스는 즉흥으로 운율에 맞는 시를 써낼 만큼의 재능이 있었으나, 산문으로 써낸 다음 천천히 운문으로 정리하고 다시 퇴고에 몰두하며 시간을 오래 들이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전원시는 목자들이 읊는 이상적 상상세계, 현실의 불행에 대한 상투적인 비탄이 결합되었으나 언어적인 유려함이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기존의 시들보다 더 이상화된 세계를 노래하였고, 특히 목가적인 세계와 현실세계를 가깝게 접근시키려는 시도가 돋보인다.[1] 농경시는 세네카가 이르길 농부보다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하며, 치밀하게 언어를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고 한다. 베르길리우스는 농경시를 처음 쓸 무렵에는 폴리오의 후원을 받았으나, 완성할 즈음에는 아우구스투스와 친밀하면서 대표적인 문예 후원자인 마이케나스에게 속해 그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농경시는 열심히 노력하면 이탈리아의 땅은 보답을 준다는 내용으로, 시적 아름다움은 물론 긴 전쟁으로 피폐해진 농토를 재건하고 도시를 편하게 하려는 당시의 정치상황과 시골 출신인 베르길리우스 자신이 가지는 안타까움 마음이 함께 담겼다. 그의 최대 걸작인 아이네이스는 그의 작품 중 가장 그리고 압도적으로 유명하며, 고대 로마의 여러 서사시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베르길리우스 자신은 키는 컸지만 허약했다고 하며, 형제들과 함께 다른 젊은이들처럼 정치나 법률, 수사학 등을 공부하다 문학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법정에 한 번 서 보았으나 수줍은 성격 탓에 제대로 된 변호가 가능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문학으로 방향을 바꾸어 문학에 투신하기로 마음먹고 평생 장대한 서사시를 쓰기를 꿈꿔왔으며, 농경시와 전원시 등을 완성하여 마이케나스를 통해 아우구스투스와도 면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이 탁월하다고 느낀 마이케나스와 아우구스투스 등은 로마를 위한 로마 역사를 다루는 장대한 서사시를 써 보라는 격려와 권유를 하게 되었다고 짐작되며, 베르길리우스는 이에 고무받아 아이네이스를 쓰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11년째 아이네이스에 매달리던 베르길리우스는 앞으로 3년을 더 아이네이스에 바치기로 하고 그리스 지방으로 답사 여행을 떠나게 되나, 메가라에서 열병을 얻어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고 곧 죽는다. 그 탓에 아이네이스는 미완으로 남았으며, 베르길리우스는 죽기 전에 미완성 작품인 아이네이스를 불태우라고 부탁하나 아우구스투스가 이 같은 위대한 작품은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하여 세상에 남게 되었다.[2]

퇴고에 몰두하던 수줍은 시인의 작품은, 라틴어가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으며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또한 건전하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는 그의 작품은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각지의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이게 된다. 기독교 시대에 이르러서도 전원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 찬미한 것으로 믿어졌고, 아이네이스 역시 신의 소명에 전적으로 충실한 아이네아스가 갖은 고난과 역경에 부딪혀 괴로워하면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것이 기독교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고 여겨짐으로[3] 변함없이 애송되고 필사되었다.

단테 알리기에리신곡에서 지옥에서 연옥, 천국의 문 앞까지 단테를 인도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이는 그가 라틴어 세계와 이탈리아에 미친 영향력이 단테에게 얼마나 거대하게 이해되고 있었는가를 대변한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등 라틴어의 영향력이 닿는 곳이라면 베르길리우스의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부터 베르길리우스 점이 널리 유행했다고 하며, 영국의 찰스 1세도 내전에 시달리던 와중 시험해 봤다고 한다.[4]

2 관련 항목

  1. 아우구스투스의 승전 이후 군인들이 주인들을 내쫓고 땅을 차지하는 세태에 빗대어 목자들이 슬픔을 노래하거나, 안토니우스옥타비아의 결혼에서 태어날 아기를 기대하며 구세주가 될 아기의 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구세주가 될 아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이해되기도 했으며, 주인들이 내쫓기는 것은 베르길리우스 자신도 비록 연줄을 통해 되찾긴 하였으나 땅을 빼앗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2. 아우구스투스는 베르길리우스 생전 2, 4, 6권의 낭독을 들었다고 한다.
  3. 비록 아이네이스에서 찬미되는 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지만.
  4. 디도가 아이네이스에게 저주를 내리는 흉흉한 시행, 그는 전쟁에서 대담한 부족의 무구에 시달리게 하고 하는 대목과 마주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