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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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로, 32세의 나이에 아테네에서 '정원'이라는 학교를 열었다.

Έπίκουρος / Epikouros (기원전 341? ~ 기원전 270?)

1 개요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들 중 한명. 그리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로, 32세의 나이에 아테네에서 '정원'이라는 학교를 열었다.

2 사상

당대에 에피쿠로스가 남긴 저서는 300편이 넘으나(물론 당시의 책이니만큼 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전하는 것은 오직 편지 몇 장과 다른 책에 인용된 단편적인 내용뿐이다. 안습. 하지만 그 내용 중에는 현대인이 보기에 당시의 사고라기에는 충격적이기까지 한 것들이 많다. 우선 그의 글 중에는 사회계약론과 유사한 주장이 등장한다.

자연의 정의는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려는 상호 이득의 협정이다. /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도록 계약을 맺을 수 없는 짐승들에게는, 어떤 것도 정의롭거나 부정의하지 않다. 또한 해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도록 계약을 맺을 수 없거나, 그런 계약을 맺을 의사가 없는 인간 종족에 대해서도, 정의/불의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 정의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어디서든 사람들의 상호 관계에서 서로 해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으려는 계약이다.

- '중요한 가르침' 31 ~ 33

또한 에트루리아 철학의 영향을 받아 데모크리토스 등이 주창한 입자설(원자설의 시초)을 수용하였다(단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을 비판한 내용도 있다).

2.1 쾌락주의

흔히들 그가 '쾌락주의'의 대표자였다는 것때문에 방탕하고 문란한 사상가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스토아 학파에서도 이를 빌미로 에피쿠로스를 공격했지만 이는 전혀 잘못된 이해이다. 오히려 그를 까는 예시로 들었던 방탕한 삶 등은 에피쿠로스와 반대항에 놓여있던 키레네 학파의 것에 가깝다[1].

그가 말하는 쾌락은 '고통의 부재'로, 오히려 쾌락을 일부러 추구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가 추구하라고 주장한 것 중의 하나는 '신체의 고통이 없는 상태'(aponia)였으며, 이를 위해서는 생을 유지할 정도만을 소비하는 절제가 필요하다. 또 한편으로 에피쿠로스는 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정신적인 고통을 준다고 보고 우주와 고통, 욕망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았는데(여기서 철학이 필요해진다), 이를 통해 '마음의 평안'(ataraxia)을 얻을 수가 있다고 보았는데, 이 아타락시아 개념은 되려 스토아 학파의 아파테이아 개념과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또 한편으로 그는 철저히 감각에 기초하여 그의 학문을 전개했으며, 앞서 말했듯 입자설에 맞추어 우주론을 펼쳤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남아있는 그의 글에서는) 천문학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데, 천문학에서 대해서는 이런저런 입장을 취합하다보니 뻘소리 비슷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애초에 그 부분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 에피쿠로스는 가까이 다가가 알 수 없는 천체들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도 없고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감각만 설명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고...[2]

2.2 성향

이외에 공동체적 삶을 살면서 우애를 강조했으며(그러나 재산을 공유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3]) 노예, 여성(심지어는 창녀도) 등까지도 학파에 받아들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 이후 혼란스러웠던 그리스의 정치 상황 등에 영향을 받아 그의 철학은 은둔적이고 개인의 보신(保身)적 성향이 강했으며, 정치성은 약했다[4].

3 기타

고대 서양 무신론의 대표주자로도 잘 알려져 있으나, 의 부재를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신을 계속해서 그의 책에 언급하지만 그의 저서에서 신은 일반적인 인간보다 초월적인 존재로 쾌락을 누리고 있는 존재일 뿐이며, 그러한 신이 무언가를 주재해 움직인다면 완전한 쾌락의 상태에서 벗어날 것이므로 신은 그러지 못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물론 세상을 주무르는 초월적인 인격신의 개념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로서 생각할 수 있는 상당수의 신 개념을 비판한 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에피쿠로스는 모든 인간이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의 최고점인 죽음이 쾌락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죽음은 그 자체로써 매우 고통스럽지만 인간이라면 결코 피할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의 부재를 추구해야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에게는 라스트보스라는 느낌이랄까. 간단한 역설로 설명한다. 요지는 "인간이 살아있다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죽었다면 죽음을 느낄 수 없다. 고로 인간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그 마음을 던져버려라. 그렇다면 그대는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다."

어째 고대 그리스판 불교 같다
  1. 단 그는 방탕한 삶 등으로 누리는 쾌락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쾌락도 행복의 일종이며 윤리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다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쾌락을 추구해보았자 그에 수반되는 고통이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에피쿠로스는 성행위는 남에게 피해나 안 주면 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2. 다만 이 부분을 읽다보면 당시 그리스 천문학자들이 뭐하는 놈들이었는지 의심될 정도로 다른 천문학자들의 주장이 획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다시 짚어볼 것은 그 때는 기원전 4 ~ 3세기였다는 것이다. 4원소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지진, 번개, 구름 등은 약간 뻘스러운 소리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로서는 분명 뛰어난 해설이다.
  3. 피타고라스가 '친구는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한다'고 말했지만, 에피쿠로스는 각자의 재산을 공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재산을 공유하면 의심이 생기고, 의심이 생기면 우정이 깨지기 때문이다. -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중 아폴로도로스의 에피쿠로스에 대한 설명
  4. 다른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의 안전이 고통을 제거하는 어떤 힘 또는 부에 의해서 어느 정도까지 달성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순수한 안전은 대중으로부터의 고요와 은거로부터 생겨난다. - '중요한 가르침'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