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이 야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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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yai János[2]
1802년 12월 15일 ~ 1860년 1월 27일

1 개요

보여이 야노시는 헝가리의 수학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개념을 정립한 학자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 생애 및 업적

트란실바니아 지방 클라우젠부르크(현 클루지나포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보여이 파르커시(Bolyai Farkas, 1775~1856)또한 수학자였다. 그는 1818년부터 1822년까지 빈 공과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 있는 평행선 공준에 대한 증명을 시도했으나 계속 실패하던 도중,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3]

제발 포기하려무나. 그것을 기피하거라. 평행선 공준 증명에 매달리는 것은 네 건강과 복과 평온을 앗아갈 뿐이란다.

그러나 그는 평행선 공준이 다른 공준들과 독립적인 무언가라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 공준과 이론에 기초한 것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인 것이다.

물론 정리 이후 아버지께 답장이 갔다. 내용이 좀 오글거린다

아버지. 저는 무(無)로부터 또다른 신세계를 창조하였습니다.

1820년부터 1823년까지 논문이 집필되었고 그의 논문은 1832년 보여이 파르커시가 집필한 교과서에 첨부되기도 하였다. 나중에 가우스에게도 보여이의 논문이 전해졌다. 가우스는 " 기하학계의 일류가 아닐 수 없는 젊은 천재" 라고 보여이를 칭찬하였으나 "이미 내가 진행한 연구가 그와 매우 비슷하였다"라고 덧붙였다.[4] 흔한 통수

게다가 1848년 지나가던 보여이는 논문을 발표한 해로부터 이미 3년 전에 연상의 어떤 러시아 수학자가 자신의 논문과 비슷한 것을 발표했음을 알게 된다. 뜻밖의 통수[5]이후 그는 화가 나고 낙심해서 논문 발표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1860년 트란실바니아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그의 집에는 2만장 내외의 미출간 논문들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유일하게 출간된 그의 저작물은 아버지의 교과서에 곁가지로 낀 24장의 논문이 전부이다.

2.1 먼치킨

안습했던 생애와는 별개로 장교까지 지내고 13살에 미적분학을 마스터한 엘리트. 거기다가 모국어인 헝가리어 이외에도 중국어티베트어를 포함한 9개 외국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했고 바이올린에도 소질이 있어서 빈에서 연주회까지 연 적이 있다. 이쯤되면 그냥 엄친아거기다가 군 시절 자신에게 시비를 건 자기 부대원 13명과 차례로 결투해서 모두 부상을 입히거나 무장해제시키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발휘하였으며, 한 명을 쓰러뜨릴 때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뒤 다음 상대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1. 위 초상화는 생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이전 자료를 토대로 2012년 같은 헝가리의 화가 머르코시 페렌츠(Márkos Ferenc)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다.
  2. 성이 보여이다. 헝가리는 한국과 일본처럼 인명을 적을 시 성이 이름 앞에 오는 몇 안되는 나라이다. 영문 표기는 Johann Bolyai.
  3. 편지를 받았을 당시의 보여이는 군 장교였다고 한다.
  4. 사실 그는 이미 연구를 마쳤고 다 알고 있었다. 그냥 불확실성과 비판이 두려워서 발표를 미루어 왔을 뿐이고.
  5. 다만 먼저 나왔다는 그의 논문은 쌍곡 기하학 위주로 저술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