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전투 | ||
날짜 | ||
1592년 6월 4일(음력 4월 25일) | ||
장소 | ||
조선 경상도 상주 | ||
교전국1 | 교전국2 | |
교전국 | 조선 왕국 | 쇼쿠호 일본 |
지휘관 | 이일,김해,김수,권길,박지 | 고니시 유키나가,소 요시토시 |
병력 | 1000여명 | 보병 1만 8700명 |
피해 규모 | 전멸 | 불명 |
결과 | ||
일본군의 승리 . |
1 개요
임진왜란 중 벌어진 전투. 이 전투로 인해 경상도가 왜군에게 넘어갔다.
2 전투 이전
4월 14일 동래성이 함락되면서 개전 2일만에 조선군의 제1방어선은 붕괴했다. 4월 17일에는 낙동강 하류 작원잔도에서 방어전을 벌이던 밀양부사 박진의 군대마저 왜군의 양동공격에 무너졌다. 4월 17일 아침에 왜침을 보고받은 조정은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해 상주에서 적을 요격할 것을 명했다. 4월 18일 밤 4경(2~4시) 무렵 퇴궐한 이일은 60여 명의 군관을 거느리고 먼저 내려갔고 별장 유옥이 남아 군사를 모집해 뒤따랐다.[1] 본래라면 이일이 지휘해야 할 군사는 대구에 모인 군사들이었지만 엄청난 진격속도로 4월 18일 이미 밀양에 도달해버린 탓에 도저히 기한을 맞출수가 없었고 대구의 병사들은 흩어져 버렸다. 이일은 문경을 거쳐 4월 23일에 상주에 도착했으나 상주성을 지켜야 할 상주 목사 김해는 벌써 도망쳐 버렸고 판관 권길만이 상주를 지키고 있었다. 이일은 도착 즉시 군사를 모집하여 자신이 데려온 군관 60명을 합쳐서 병력을 편성했다. 징비록에선 이일이 끌어모은 군사가 8~900정도라고 밝혔고 고니시가 히데요시에게 보낸 서한에선 1,000여명을 베었고 조선군 일부가 뒤쪽의 숲으로 달아났다고 적은걸 보아 대략 1,000여명 선으로 추정된다.
3 전투 전개
4월 24일. 이일이 한창 습진훈련을 시키고 있을때 한 백성이 이일에게 왜군이 코앞에 왔다고 알렸다. 문제는 이 백성이 조용히 청해서 보고한게 아니라 온 군영에 그냥 떠들고 다녔다는 점이다. 이일은 하루동안 기다렸다가 왜적이 나타나지 않자 제승방략 금령 27조 중 18조에[2] 따라 농민을 참수했다. 훈련을 계속진행하던 중 고을의 성안 몇군데에서 불길이 치솟자 척후로 군관 박정호를 보냈지만 왜군이 군관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목을 베어갔다. 이 광경을 본 조선군은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기가 떨어졌고 왜군은 숫적 우위를 앞세워 조총을 쏘며 접근했다. 조선군은 궁시로 대응했으나 훈련도 및 사기부족으로 왜군에 제대로 닫지도 못했다. 왜군이 사면에서 포위하여 압박해오자 이일은 도망쳤고 남아서 싸우던 군사들 모두 전사했다. 이일은 변기와 함께 충주의 신립 진영으로 후퇴했다.
조선군은 1,000여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냈으나 고니시가 히데요시에게 다 잡지는 못했다고 밝혔고 조정의 임란일기에도 이일과 함께 빠져나온 변기가 이끈 소수의 패잔병과 조우했다는 내용이 있는걸로 미루어 볼때 일부는 빠져나온것으로 보인다.
4 규모?
신흠의 상촌집에선 이일이 상주까지 내려가면서 중간에 4천의 병력을 모병했다고 나와있다.
충청도관찰사 윤선각이 6월에 상주와 탄금대에서 충청도 병사중 1만을 잃었다고 장계를 올린것을 보면 이일이 완전히 빈손으로
상주에 내려온것인지는 속단하지 않고 생각해볼 여지가 남아있다.
단 상주전투 자체는 상주에서 모집한 병력을 훈련시키던 도중 일어났기 때문에 전투 당시의 조선군 규모가 1천 이하인것은 확실해보인다.
그와 별개로 그 4000명의 행방이 불확실하다는것도 규모파악에 혼란을 주는 부분인데 이일은 도주중에 조령을 정탐하던 신립과 마주친것으로 나오며, 조령에는 방어사 변기도 있었기에 만약 이일의 뒤에 4000명이나 버티고 있었다면 이런 헤프닝은 아귀가 맞질 않기 때문.
5 창작물에서
이일의 농민참수는 엄연히 제승방략 규정에 따른 행위로 훈련도가 떨어지는 병사들을 다잡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으로 볼 수 있지만 만화고 개설서고 드라마고 간에 항상 이일 본인의 감정적인 행동으로 그려진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20초 정도의 전투장면과 나레이션으로 설명된다.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백성이 왜군이 코앞에 왔다고 알려주자 이일은 군심을 어지럽혔다면서 참수하려고 했는데, 그 백성이 사정하자 하루만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나 왜군이 오지 않아 참수하고 군졸 두 명이 정찰을 나갔다가 왜군을 발견하지만 제대로 보지는 못한데다가 왜군이 온 것을 알렸다가 백성이 이일에게 죽은 것 때문에 두려움에 싸여서 이를 알리지 않았다.
결국 방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규모의 조총 부대가 와서 공격하자 병사들은 혼비백산해서 모두 도망치거나 저항할 틈도 없이 당했으며, 이일은 도망치면 죽이겠다면서 수습하려 했지만 이일도 투구가 조총에 맞아 떨어지는 바람에 기어가서 도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