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융

중국의 오랑캐 지칭
북적
서융중국동이
남만

西戎

서쪽의 오랑캐라는 말이다. 서융은 지금의 간쑤성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민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융적(戎狄)으로도 칭해진다. 원래 융(戎)자는 전쟁용 병장기를 일컫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사에서 굉장히 호전적인 민족으로 묘사된다.

중화 사상이 으레 그렇듯이, 중원 기준 서쪽에 있으며 한족이 아닌 민족을 그 민족의 뿌리와는 상관없이 싸잡아서 서융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강했으므로, 시대에 따라 서융이 지칭하는 민족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춘추시대전국시대 때 귀방(鬼方), 험윤(獫狁), 견융(犬戎)을 지칭했고 이후 대에는 저(氐), 강(羌)을 지칭했으며, 대에 이르러선 토번, 중앙아시아와 아랍의 여러 민족들을 지칭하는 말로 변화했다.

주나라를 공격해 주유왕을 죽이면서 수도를 동쪽으로 천도하게 했으며,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국가인 진(秦)나라는 서융의 한 갈래로 진목공이 서융의 여러 국가들을 공격해 평정해 준패자가 되었다고 한다. 진목공 사후에 진강공이 이들의 풍속인 순장을 치뤘다고 한다.

제갈량이 저술한 제갈량집의 서융편에서는 그 특성과 공략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 서융의 성질은 용감하고 사납고 이익에 민감하며, 마을(성)에서도 살고 들에서도 산다. 미곡과 양식은 부족하고 금과 패물은 많으며, 사람들은 용감하게 싸우기 때문에 이들을 쉽게 격파할 수 없다.
||西戎之性,勇悍好利,或城居,或野處,米糧少,金貝多,故人勇戰鬪,難敗。

서융지성 용한호리, 혹성거 혹야처, 미량소 금패다, 고인용전투 난패||

  • 사막(적석)[1]의 서쪽에 있으므로 말미암아 여러 오랑캐가 종족이 많으며, 땅은 넓고 형상이 험준해 그들은 힘을 믿고 저항해 쉽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많고 신하가 없으니 외교 관계의 파탄이나 내란 발생 등의 기회를 잡으면 그들을 격파할 수 있다.
||自磧石以西,諸戎種繁,地廣形險,自負彊很,故人多不臣,當候之以外釁,伺之以內亂,則可破矣
자적석이서,제융종번,지광형험,자부강흔,고인다불신,당후지이외흔,사지이내란,칙가파의||
  1. 당나라 때도 이 지역의 주요 길을 적석도(積石道)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 대한 특유의 명칭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