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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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의 장르

1960년경부터 1960년대 초중반까지 유행했던 록 음악 장르.

1959년, 로큰롤은 기성세대와 언론의 철퇴를 맞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대중음악의 주도권은 다시 스탠더드 팝을 비롯한 "안전한" 음악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되며, 리키 넬슨이나 브루스 채널같은 비교적 얌전한 이미지의 뮤지션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1960년쯤 이르게 되자 이제 과거의 가죽옷을 입고, 머리에 잔뜩 기름을 바른 불량배들은 퇴출된것으로 느껴진다.[1] 더이상 방송에서 흔들고, 비비고, 굴리는 저질적인 가사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음악이 바로 인스트루멘탈 록이다. 가사 없이 연주만으로 구성된 음악이었는데, 디스코텍이나 댄스 파티에서 디제이들이 다른 음악과 믹싱하기 쉬웠기 때문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가사가 없기 때문에 음악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뮤지션은 바로 링크 뤠이(Link Wray)인데, 그는 퍼즈톤을 최초로 사용한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다. 다시 말해, 현대 록음악에서 사용되는 좌우지 좡지지지하는 기타 소리를 최초로 사용한 기타리스트인 것. 아울러 그는 리버브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기타리스트로 평가된다.
링크 뤠이의 대표곡 Rumble
이 곡은 당시 몇몇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 금지를 당했는데, 이유는 청소년들의 폭력을 조장하고 비행을 선동한다는 이유였다. 영상을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잠깐 저거 공식 뮤직비디오 아니잖아

그러던 중 1960년에 이르러 드디어 로큰롤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다. 바로 모든 젊은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해변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기이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뮤지션들로는 듀언 에디, 딕 데일, 비치 보이스, 더 섀도우스, 더 벤쳐스등이 있다.

일단 서프라는 장르에서 기타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의 질적 발전을 가져온 것은 듀언 에디딕 데일이었다. 듀언 에디는 1950년대 후반부터 "wet"한 리버브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 인스트루멘틀 록 음악의 귀재였다. 딕 데일은 1961년 "Let's go trippin"이라는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서프 록 기타 연주를 집대성한 곡이자,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인 Misirlou를 발표한 뮤지션이다. 이 곡은 십수 년 뒤 영화 펄프 픽션을 비롯해 블랙 아이드 피스의 곡까지 안 쓰인 데가 없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당시 딕 데일이 선보인 속주 기타는 훗날 헤비메탈을 비롯한 모든 기타리스트들에게 영향을 준다.
딕 데일의 Misirlou

더 섀도우스더 벤쳐스는 서프의 붐이 불고난 뒤 서프음악의 쌍벽을 이루며 활동한 밴드다. 섀도우스가 클리프 리처드의 백밴드로 활동해서 시작한 베테랑들이라면, 벤쳐스는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온 입지전적인 밴드다. 둘 다 인스트루멘탈 록과 서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록 음악이 테크닉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기여한 뮤지션들이다. 섀도우스의 아파치 벤쳐스의 워크 돈 런 벤쳐스는 1960년부터 활동한, 서프 음악의 원조격인 밴드였다. 듀언 에디가 서프 음악의 프리커서였다면, 벤쳐스와 딕 데일 같은 뮤지션들은 서프 음악을 완성시켰다고 보면 된다. 특히나 벤쳐스의 인기는 당시 엄청났기 때문에, 전 세계의 뮤지션 지망생들의 롤 모델로 작용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비치보이스보다 인기가 좋았다. 흠좀무 어느 정도냐면 당시 한국에서도 벤쳐스의 인기가 엄청났고, 당시 미국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일본에 공연을 하러 올 정도였다. 19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음악평론가들은 당시 한국에서도 티브이로 벤쳐스의 일본공연이 방송될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신중현씨의 밴드 Add-4의 앨범 쟈켓에도 한국의 벤쵸스 애드-훠라고 써있었다.

비치 보이스는 사실상 서프라는 장르로 시작해서 미국 록 음악사에서 하나의 큰 뿌리를 만들어내고 록 음악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밴드이기 때문에 서프에서 다루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 느낌이 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해당 항목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듯 하므로 해당항목 참조.

서프 음악이 왜 중요하냐면, 한국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이 시기가 바로 록 음악의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에는 노래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보다 얼마나 더 아름답고 독특한 사운드를 만드는지에 대한 열과 성이 넘쳐났다. 예를 들자면, 당시 활동하던 더 토네이도스라는 밴드가 텔스타라는 싱글을 발매했을 때, 전 세계 음악 업계 관계자들은 뒤집어졌다. 왜냐하면 역사상 최초로 딜레이 머신을 적극 활용하여 우주적이고 영롱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기 때문. 토네이도스의 텔스타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당시 토네이도스에서 기타를 친 사람이 바로 리치 블랙모어였다(!!). 그리고 이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작곡한 조 믹 또한 이 이후 명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서프 음악은 불행하게도 장르 자체로는 2~3년의 짧은 기간을 거쳐 완전히 멸종하고 만다. 그 이유는 노래 자체에 별 소재가 없고 사운드에만 신경을 쓴 철저히 테크니컬한 음악이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오래 가지 못한 것. 뮤지션들이야 대단한 테크닉과 녹음방식에 입이 쩍쩍 벌어지겠지만 일반 대중들이야 그런거 신경 쓰겠나(...).

서프 음악의 종말은 1963년부터 서서히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이유는 서프음악에서 나올만한건 이제 거의 다 나온데다가, 대서양 건너편에서 영국 밴드들이 점점 미국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

2 소스 엔진 게임의 커뮤니티 모드

맵의 지형을 이용하여 서핑을 하는 거다. 곡면을 따라서 좌우키만 눌러주면 가속이 붙어서 하늘을 날아다닐수도 있다. 버니합과 합해서 하기도 한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소스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등에서는 서프를 타면서 곳곳에 버려진 무기를 주워서 다른 사람들을 공중분해 시킨다.
  1. 물론 이것은 미국의 상황이었고, 관대한 영국은 좀 더 젊은이들 문화에 관대했다. 이는 미국은 청교도 국가고 영국은 성공회 국가였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 시기 영국에서는 빈스 테일러빌리 퓨리가 주름잡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과 블루스음악들, 이를테면 머디 워터스소니 보이 윌리엄슨, 하울링 울프, B B 킹같은 뮤지션들의 음악들이 젊은 음악 매니아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들 중 전자는 훗날 록커들이 되고, 후자는 모드족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자양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