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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FC 시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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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 FA컵
2009 시즌에는 막 부임한 신태용 감독 대행이 팀을 개혁한다며 모따와 두두를 방출한다 선언했고, 팀의 전설이 되가던 김상식과 김영철은 이미 방출됐다. 방출된 두두와는 달리 모따는 마음을 다잡고 신태용 감독 대행이 원하던 선수로 변했고 사사 오그네노브스키나 이호 같이 영입된 선수들의 활약으로 세대교체 도중임에도 2009 시즌 전반기를 6위로 마쳤다.
단지 골을 넣어줄만한 확실한 공격수가 없다는 게 흠이다. 라돈치치는 잉여짓을 일삼고 있으며 그 믿던 모따도 5개월 부상을 끊어주자 상호해지로 방출되는 바람에 그리고 모따는 방출되자 마자 브라질의 모 클럽으로 이적하여 에이스급 활약을 했지 성남은 2009 피스컵 안달루시아[1]에서 라돈치치만으로 유벤투스와 세비야에 맞서야 할줄 알았지만...
라돈치치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
몰리나와 파브리시오가 왔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유벤투스에게는 발렸지만 세비야와의 경기에선 야신 모드가 발동된 골키퍼 정성룡의 활약으로 무승부를 거두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였지만 최종적으로는 리그 후반기에 몰리나가 팀을 구원하며 상승세를 타서 4위로 6강 플옵에 진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달리 부자가 망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성공했으나 FA컵에서는 8강에서 포항 스틸러스, 4강에서 대전 시티즌을 이기고 결승에 올랐으나 수원에 승부차기 패배. 준우승을 차지했다. 성남의 신태용 감독은 이 날 전반 일찍 라돈치치가 골을 넣었음에도 너무 일찍 잠그는 축구를 해버리는 바람에 많이 까였다. 심지어는 처음 FA컵 결승전을 보러 갔던 샤빠는….(보러가기)아무래도 롯데보다는 성남에 대한 분노를 더 참을 수가 없는 듯 하다.
이후 벌어진 5위 인천과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선수 2명이 퇴장당하는 악조건 끝에 승부차기 승리. 신태용 감독은 승부차기 직전 연장 후반에 필드플레이어 김정우와 골키퍼 김용대를 교체한 다음, 골키퍼를 맡고 있던 정성룡을 필드플레이어로 돌리는 초강수(경기 중 골키퍼 옷에서 일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ㄷㄷ)를 두고 승부차기 키커로 골키퍼만 2명을 내보냈다. 결과는 비록 세번째 키커였던 정성룡은 킥을 실패했으나 김용대의 2방어 1득점(…)에 힘입어 3:2 승리. 전북, 포항, 수원에 이어 유일하게 한 장 남은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티켓 획득을 위한 4강전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혹자는 이 경기를 두고 축구를 예능으로 끌어올린 경기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3일만에 벌어진 4강 플레이오프에서 몰리나의 골로 전남 드래곤즈에 1:0 승리하면서 리그 3위를 확보. 포항 스틸러스와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다투게 됨과 동시에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어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몰리나의 프리킥골로 1:0 승리. 2007년 K리그에서의 복수를 하는 동시에 전북 현대와 K리그 우승을 놓고 챔피언 결정전을 펼치게 되었다. 다만, 플레이오프 후반전에서 나온 10백(장학영 퇴장 이후에는 9백)전술은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다. 후반전 내내 몰리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페널티 박스에서 나오질 않았다.
어찌됐든 그렇게 간신히 올라간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는 성남종합경기장의 떡잔디와 근성수비 전술로 0-0 무승부를 이끌어냈으나 2차전 전주 원정에서 결국 1-3으로 패배.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챔결 2차전에서도 또 한번의 진상짓을 보여줬으니... 전반 종료 후 차상광 코치가 판정항의하다가 퇴장당했는데 심판의 지시를 쌩까고 후반 초반까지 벤치에 앉아있는 행위를 벌였다. 대기심이 나가라고 지시하자 신태용 감독까지 달려드는 추태를 보이기도. 거기에 성남 서포터들은 후반 내내 물병을 던져댔다.
결과적으로 2009 FA컵, K리그 양대 준우승. 여기에 2군 리그(R리그)에서도 준우승하고 성남 U-18인 풍생고도 전국고등리그 왕중왕전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분이 생각날 수도 있겠다. 본인은 우승을 못했기에 싫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감독 부임 첫해 치고는 만족스러운 활약이긴 하다. 그리고 감독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으로 감독직에 올랐다.
- ↑ 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해외 피스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