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

2017 시즌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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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광주대구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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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원울산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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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전북제주포항
K리그 챌린지 구단 사라진 구단
엠블럼마스코트
유티
인천 유나이티드
Incheon United FC
정식명칭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법인명 ㈜인천유나이티드
구단형태 시민구단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 2003년[1]
연고지 인천광역시
구단명 변천 인천 유나이티드 (2003~)
연고지 변천 인천광역시 (2003~)
홈구장 인천문학경기장 (2004~2011)[2]
(50,256명 수용)
인천축구전용경기장 (2012~)
(20,186명 수용)
구단주 유정복 (인천광역시장)[3]
대표이사 박영복[4]
단장 김석현(대행)
감독 이기형(대행)
용품 스폰서 험멜
셔츠 스폰서 신한은행, 인천국제공항[5]
상징색 파란색, 검은색[6]
관련 링크 []> | > | []> | > | []>
우리는 인천
유소년 시스템
U-18 팀 인천대건고등학교
U-15 팀 인천 광성중학교
U-12 팀 인천 유나이티드 (U-12)

연고 구단


SK 와이번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1 구단 소개


K리그 클래식 소속의 프로 축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K리그 13번째 구단으로 대체적으로 중상위권~중하위권을 오가는 시민구단이다. 최고 성적은 2005년 K리그 준우승 및 201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준우승이다.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후의 축구 붐에 힘입어, 전국 곳곳에 지어진 월드컵경기장들의 사후 활용과 K리그 저변 확대를 위해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7] 팀 창단을 추진했고, 인천은 할렐루야 유치와 시민구단 창단을 두고 고민하다가 후자로 방침을 바꾸면서 시민구단으로의 창단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은 인천시와 시민, 기업이 함께 구단을 출범시킨 ‘연합’의 뜻을 나타내 시민구단의 이미지와 어울려 팀의 명칭으로 선정되었다.[#]


2 엠블렘

2003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4개 시안을 놓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총 5,002명의 응모자 가운데 2,296명(46%)으로부터 1순위로 지정받음에 따라 구단 공식 엠블렘으로 선정됐다.

인천 유나이티드 엠블렘은 당시 K리그 다른 구단에서 사용하지 않은 타원형의 모양을 활용하여 창단 주체인 인천시, 시민, 기업이 원만하게 화합하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엠블렘의 문양은 인천을 상징하는 , 바른길로 이끄는 방향키, 비상하는 날개의 형상을 조합하여 인천 구단이 한국프로축구의 새로운 리더가 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 또 노란색의 문양과 테두리에 해양도시인 인천을 나타내는 블루와 블랙의 줄무늬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천구단의 역동성과 진취적인 기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축구 팬들 사이에선 멋진 엠블렘으로 손꼽히는 디자인이다.


2.1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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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시즌 구단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구단 정체성 확립과 함께 2013 시즌 K리그 클래식 상위 스플릿 진출 및 시·도민 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달성[8]하려는 의미를 담은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럼을 선보였다.

기존 항구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닻 모양 형태의 형상을 기준으로 한 기본 엠블럼에다가 K리그 클래식 최고의 경기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단순형상화 하였고 비상의 의미를 담은 날개 형태를 형상화하여 2013년 시즌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3 시즌별 역사

인천 유나이티드 시즌별 역사
2003~2011창단부터 2011 시즌까지
2012파란만장했던 2012 시즌
2013꿈에도 그리던 상위 스플릿! 2013 시즌
2014위기에 봉착한 2014 시즌
2015모두의 예상을 깬 늑대축구의 돌풍, 2015 시즌
2016강등권 탈출을 위한 도전, 2016 시즌


4 역대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감독 명단
순번이름 국적 취임퇴임재임 시즌
초대베르너 로란트[9] 2003년 9월 25일2004년 8월 30일2004
대행장외룡 2004년 8월 31일2005년 1월 2일2004
2대장외룡 2005년 1월 3일2006년 12월 28일2005~2006
대행박이천[10] 2007년 1월 4일2007년 12월 20일2007
2대장외룡 2007년 12월 21일2008년 12월 9일2008
3대일리야 페트코비치 2009년 1월 29일2010년 6월 8일2009~2010
대행김봉길 2010년 6월 27일2010년 8월 21일2010
4대허정무 2010년 8월 23일2012년 4월 11일2010~2012
대행김봉길 2012년 4월 12일2012년 7월 15일2012
5대김봉길 2012년 7월 16일2014년 12월 19일2012~2014
6대김도훈 2015년 1월 13일2016년 8월 31일2015~2016
대행이기형 2016년 8월 31일2016~


5 역대 유니폼

인천 유나이티드/유니폼 항목 참조.


6 역대 캐치프레이즈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캐치프레이즈
시즌 캐치프레이즈
2004Blue Heart 2004
2005푸른물결 2005
2006시민속으로 Into the Community
2007~2010 [11]My Pride My United
2011Change & Challenge
2012Into the New ERA
2013인천축구지대본[12]
2014승리, 그 이상의 감동!
2015Play, Together![13]
2016우리는 인천


7 영구결번

인천 유나이티드 영구결번
No. 12
팬#s-2

시민구단으로 출범한 취지를 살려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즈와 팬들을 위해 창단과 함께 12번을 영구결번 처리하였다.[14]


8 유소년 시스템

2006년 가장 먼저 U-12팀이 창단했다. 이후 2007년 4월 인천대건고등학교와 축구부 창단 협약을 맺고[15], 2008년 4월 U-18 팀이 공식 창단했다.[16] 이어서 2009년 12월 U-15 광성중이 창단[17]하면서 인천 유나이티드는 U-12, U-15 광성중, U-18 대건고로 이어지는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더 넓은 대상으로는 인천유나이티드 아카데미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6세부터 13세까지 참여할 수 있으며 서구지부, 연수지부, 동구/남부/중부지부, 부평/계양지부, 남동지부 등 지역별로 운영 중이다. 성인들을 위한 성인축구클리닉도 있으니 답답해서 직접 뛰어야겠다는 직접 하는 축구에도 관심있는 팬이라면 참여해보자.

2016년 2월 프로 선수단 기준, 진성욱김용환, 이태희, 한남규가 U-18 대건고 출신 선수이다.

이 밖에도 K리그에서 뛰는 대건고 출신 선수로는 장현수(수원 삼성), 문상윤(전북 현대), 박지수(경남 FC), 최영훈(FC 안양), 지구민(고양 자이크로 FC) 등이 있다.

함부르크 유스 출신으로, 현재는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 뛰고 있는 권로안도 대건고 출신이다. FC 바르셀로나 B 소속의 이승우발렌시아 CF 유스팀 소속의 이강인 역시 인천 유스 출신이다. 한국 축구의 미래 인천 유나이티드


9 마스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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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마스코트는 유티이다.

인천을 상징하는 시조두루미의 형상으로 프로축구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는 의지와 시, 시민, 기업이 화합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친근한 이미지로 상징화하였다. 붉은 머리털은 축구에 대한 강한 열정을, 큰 날개는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와 페어플레이의 스포츠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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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사항으로는 대전 시티즌 팬에게 폭행당한 전력이 있다 (...)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2012년#s-2.1 참고.


10 인천축구전용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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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경기장.

설계 때부터 오직 인천 유나이티드만을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이다. 관중석 의자 색깔도 인천의 유니폼 색인 파랑색을 기본으로 하고, 검정색과 노란색으로 수놓았다. 동쪽 관중석에는 의자에 ‘인천유나이티드(Incheon United)’라는 인천구단 영문이름을 새겨넣어 인천 팬들의 자부심을 높였다. 이렇게 경기장 전체를 구단의 색상과 이름으로 꾸며놓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최초이다.

그라운드 터치라인에서 관중석까지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축구경기를 가장 생동감있고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골을 넣은 선수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팬들과 껴안는 골 세레모니에 최적화 되어있다.[18]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깝다 보니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선수들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국내의 다른 어떤 구장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관중과의 거리를 좁혔다.

K리그 관중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다른 월드컵 경기장들과는 달리 국내의 축구 관중 규모를 고려하여 약 2만 석의 규모로 지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 항목 참조.


11 라이벌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답게, 주로 수도권이나 경기도권 팀들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11.1 인경전, FC 서울

K리그 팀중에 FC 서울과 사이가 좋은 팀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인천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서포터즈들 호전성도 강하기 때문인지 미묘한 라이벌 감정과 해마다 끊이질 않는 양 측 서포터즈들간의 충돌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다. 자금이나 규모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두팀이지만 인천의 맹렬한 라이벌 의식 덕분에 상대전적은 그렇게까지 밀리지는 않는 편.

그래서 서포터들 중에서는 슈퍼매치를 언론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더비라고 폄하하고, 경인 더비야말로 진짜 더비 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19]

인천이 처음 리그에 참여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인천의 전적이 약간 앞서있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인천이 이기질 못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는 중.(정규리그 기준) 다만 상암 원정에선 지독히도 승률이 좋지 않았으나 2013년 3월 9일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9년만에 첫 원정승리를 기록하였다. 인천에게 있어서는 서울이 가장 큰 라이벌이라고 봐도 될 것이며, 서울에게는 수원과의 슈퍼매치 다음가는 라이벌 더비로 자리잡았다. 언론과 K리그 팬들은 경인더비란 명칭을 사용하나 인천측은 2016년 7월 17일부터 이 더비를 인천광역시의 인(仁)자와 서울특별시의 경(京)자를 따서 인경전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FA컵 결승에서 인천이 서울에게 패함에 따라 이들의 적대감은 다음 시즌에도, 그 후로도 계속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사이 안좋은 것과 별개로 구단끼리 선수 이동은 활발한 편이다. 굴지의 대기업 구단과 열악한 시민구단간의 거래지만 일방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는 점도 이채롭다.


11.2 수원 2중대, 천적관계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반면 수원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약하다. 차범근 시절까진 수원 2중대였고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엔 그나마 좀 할만해졌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 2012년 숭의 아레나 파크에서의 역사적인 홈 첫경기에서도 수원은 자비없이 2:0으로 무참히 홈 첫경기를 패배로 장식해 주었다. 하필 2골 다 인천 출신 라돈치치가 꽂아 넣었다. 반대로 2013년에는 25R에서 인천이 수원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역사적인 첫 상위 스플릿 입성을 결정짓는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11.3 032[20] 더비, 부천 FC 1995

지리적으로 인천부천서울보다도 훨씬 가깝다보니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기전엔 부천 SK를 응원하는 인천 시민들도 많았다. 그리고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고 이 두 팀은 032더비라 하여 많은 명경기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부천SK는 이후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해 제주 유나이티드가 되었고, 두 팀간의 대결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부천 FC 1995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032더비가 다시 부활하였다.

재밌는건 前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김봉길의 아들 김신철이 부천에서 뛰고 있다는 것. 이래저래 다시 만난다면 재밌는 경기가 될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팀 성적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4년 봉길매직은 끝났고, 김신철 선수의 부담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32강전에서 만나게 되어 10년만에 032더비가 부활하였다.


10년 만의 더비 경기에서 2대0으로 완승하자 인천 서포터즈가 선보인 배너. 같은 032 다른 CLASS. 부천이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위트있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훗, 이래야 더비 경기답지


12 문제점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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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프런트의 무개념

돈 때문에 간판 수비수 정인환을 카타르로 임대보내려 했다가 거절당했고, 결국은 시즌이 끝난 뒤 22억에 정혁, 이규로와 함께 정인환을 전북에 넘기며 팬들의 비난을 사게 된다. 그러나 이후 전북으로 넘어간 정인환이 온갖 인천 디스 발언으로 어그로를 끌자 정인환 트레이드건에 대해서는 그냥저냥 넘어가는 분위기. 2013년 개막전 때 종교단체 산하 봉사단체인 위러브유를 초청했다가 괜히 팬들의 반발만 사기도 했다. [21] 그리고 2014 시즌 끝난 후 김봉길 감독을 강제 해임시켰다.


12.2 부천과의 충돌

기사화는 안된 사건. 2011년 부천에 유소년팀을 창단에 부천도 인천권역으로 편입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부천에는 챌린저스 리그팀이긴 하지만 이미 부천 FC 1995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K리그 팬들은 남의 연고지를 왜 침범하냐면서 폭풍같이 들고 일어났지만 인천 구단 프런트는 그 항의를 모두 씹고 강행했다가 결국 철회했다. 그리고 창단 당시에도 부천측과 심각한 마찰이 있었다. 송내역 문서 참조.

팬들과의 충돌도 있었는데 심판판정에 불만을 가진 부천 팬 2~3명이 인천 홈구장에서 열린 경기인데도 W석까지 넘어와 심판과 선수들에게 너트(!!!)를 던지면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3 시즌부터 부천 FC 1995K리그(2부 리그)에 참가하고 2014, 2015시즌에는 잔류하면서 빠르면 2016 시즌에 리그에서 만날 수도 있다.


12.3 만성 적자

2010년 영업적자 52억원, 2011년 영업적자 34억원 등 2년 연속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은 -12억으로 자본 잠식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원래 인천은 타 시, 도민구단과 달리 웬만한 기업구단급으로 예산을 사용했으나 2010년 이후부터는 광고 수입이 줄어들면서 적자가 나기 시작한 것.

시 재정난을 들어 재정문제를 지적하기도 하나 이와 별개로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스포츠, 그것도 인기 스포츠에 거액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12.4 임금 체불

연봉을 열정페이로 준다.

급기야 2016년 4월 17일에는 구단을 상대로 인천지법에 전현직 선수 10명이 2014년과 2015년에 받지 못한 출전 수당과 승리 수당을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걸었다. 사실 이건 극히 일부에 부과하며 2년여간 지급하지 못한 수당이 10억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인천은 선수들 월급 챙겨주기도 빠듯한 상태라 청산이 가능할지 조차 미지수인 상태다.
[관련기사1]
[관련기사2]


12.5 운영비 횡령

2016년 시즌 준비 전 인천 유나이티드는 전지훈련으로 중국 윈난성 쿤밍을 갔다. 그러나 축구단 자체 조사 결과 프런트 일부분과 감독, 코치진이 전지훈련비 중 회식비를 빼돌려 유흥주점에서 술파티를 벌인것으로 확인되었다. 영수증을 부풀린 방식으로 횡령한 것. 인천구단은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에게 징계를 한다고 했으나 코칭 스태프에게 준 징계를 아는 분은 추가바람.
이 문제가 더욱 문제가 되는건 인천 유나이티드는 시민구단으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구단이므로 세금을 횡령한 셈이나 마찬가지인 것. 이 후 여러사건이 터졌으나 어찌어찌 묻혔다.


12.6 승강제에 대한 반대

시민구단이라 승강제 반대를 하는 것을 이해하는 팬들이 많지만, 실상은 시민구단이 기업구단급으로 돈을 쓰면서 성적 안나온다고 승강제 반대하는 것에 대해 까는 축구팬들도 많다.

게다가 2012년 이사회에서 '왜 승강제를 하느냐', '그깟 AFC 챔피언스 리그 따위 안 나가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발언해 축구팬들의 십자포화를 맞기도 했다.


12.7 2011 시즌 허정무 감독 청문회

10경기째 무승에 시달리던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리그 최하위를 달리던 강원 FC와의 경기 마저 무승부를 기록하자 출입구를 막고 허정무 나와!를 시전한다. 당시에는 허정무나 프론트가 뒷구멍으로 도망갔지만(...) 허정무 감독은 팬들의 청문회에 응하겠다고 답하고 K리그 초유의 청문회가 벌어지긴 했는데...[보기] 결국 팀의 발전을 위한 토론 자리기 보다는 그냥 무작정 감독 까기, 분풀이 성 이벤트가 되어 결국 팬과 감독 선수 구단 모두에게 앙금만 낳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실상은 원래 구단 서포터즈와 프런트간의 정기적인 친목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고 그 날은 프런트측에서 치맥을 제공한다고 했었는데 그 와중에 허정무가 기자까지 데리고 갑툭튀한 것. 바닥에 자리 펴고 앉아서 치킨을 뜯고 있는데 감독이 찾아온 것이었다. 감독과 대화하는 자세가 불성실했던 장면은 팬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는 기사의 내용과 달리 오해받는 부분이 많고 애초에 사전 얘기도 없이 갑자기 기자까지 데리고 나타났다는것 자체가 문제였다.


13 그 외

시민구단의 한계상 열악한 재정 탓에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선수들을 다른 돈 많은 구단들에게 팔아 이적료로 수입을 남기는 셀링 클럽이다. 그렇게 선수를 팔고도 꼴지를 기며 적자에 쪼들리는 시민구단들이 비일비재하고 인천도 적자로 인해 재정과 성적에 위기가 왔었다. 인천에서 매각한 선수들을 전부 모아놓으면 리그 올스타에 준할 정도로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이정수, 최태욱, 이근호[22], 최효진, 김치우, 라돈치치, 데얀, 유병수, 정인환, 이석현 등이 있다. 요즘에는 전북 현대의 선수 셔틀노릇을 하고 있다. 2012 시즌 종료 후엔 사실상 수비진을 뜯어내다시피해서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내주더니 2013 시즌 종료후엔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과 공격수 한교원을 전북으로 보냈다. 그리고 2015 시즌을 앞두고 문상윤까지 전북으로 보냈다. 때문에 구단내 선수들이 특출나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 팬들은 기쁨 반, 다른 팀에게 뺏길까 노심초사하는 걱정 반의 감정을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2015 시즌이 끝난 후 케빈, 이윤표, 박대한, 요니치, 조수혁, 진성욱 등 기존의 주전급 선수들 대다수와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전력 유출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하지만 2016년 8월27일 수원FC 전에서 지면서 리그 꼴지가 되었다

과거 2011년까지 인천 문학 경기장 주 경기장을 홈으로 썼을 땐 바로 옆의 문학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인천 SK 와이번스와 묘한 관계에 있기도 했다. 경기시작전이나 끝난 시간이 되면 서로 원수와 같은 두 스포츠의 팬들이 사이좋게 문학경기장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또한 한 쪽에서는 경기를 진행 중인데 다른 한 쪽에서는 폭죽을 터뜨리며 경기에 방해를 주기도 하는 등 구단 간의 협조도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문학경기장이 아무래도 종합 경기장이다보니 축구 관람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기존 숭의야구장을 헐고 그 자리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따로 건설하여 2012년부터 사용 중이다. 중소 구단에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구장으로, 종합 경기장처럼 트랙이 없이 바로 앞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EPL급 시야를 자랑해 직관하기 매우 좋은 구장이다.

2013년 9월 16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5년 간 1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천일보 기사 당초 요구보다는 낮은 금액이지만 점차 연간 지원액을 늘려갈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 20억 지원금액은 그리 크지 않은 숫자고 아니나 다를까 2014년 연말에 2달치 월급이 밀려 일부 선수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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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서포터즈는 미추홀보이즈(MEETYOUHALL BOYS)였으며(2014년 9월부로 해체) 규모는 작지만 적극적인 행동력과 특유의 호전성으로 다른 대형 구단들의 대형 서포터즈들과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악명과 사건기록을 자랑했다. 수원의 프렌테 트리콜로, 서울의 타나토스와 함께 클래식에선 제일 악명 높았던 서포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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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축구 경기장 전광판에 수시로 선수들의 외모 별점이 떠오른다. 경기장 아나운서가 "인천의 소닉붐 김인성!" 이라는 식으로 별명을 부르면 99%의 확률로 전광판에 외모 별점이 나타나는데, 별점이 높으면 기분이 좋을 수 있겠지만 별점이 낮으면 홈-원정 관중 가릴 것 없이 소소한 비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연유로 인천의 김도혁 선수는 자신의 얼굴에 매겨진 별점 반 개 (...)에 애교 섞인 항의글을 페이스북 댓글에 올려 작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

2010년까지 메인 스폰서가 GM대우였고, 초대 단장이자 현 대표이사인 안종복, 전임 감독인 장외룡을 비롯하여 경영진과 선수단에 과거 대우 로얄즈와 관련된 인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유를 로얄즈의 후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 구단은 직접적인 계승 관계가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별개로 취급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우 로얄즈를 계승하는 팀은 부산 아이파크로, 인천과는 연고지부터 시작해서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인천광역시GM대우의 본사와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구단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공식 등록된 중학부 축구 팀이 드는 인천 지역에서 '미들스타 리그'라는 아마추어 중학생 리그를 매년 혹은 격년제[23]로 운영중이다. 인천 지역 남자 중학생들은 이 경기를 통해 어쩌다 부평고나 도화기계공고 같은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뽑히기도 하고, 인유의 U-18팀인 인천대건고등학교에 스카웃되기도 한다. 다만 도서 지역과 강화군 지역은 지역 특성상 참가가 힘들다. 대체적으로 연수구 지역과 계양구 지역 중학생들이 강한 편.

장외룡 감독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호나우두앙리가 나이 들어 은퇴할 때쯤 되면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한 적도 있다. 그리고 팬들은 이를 그냥 지방구단 흥보 차원에서 한말로 이해했고, 실제로 둘 다 은퇴했지만 안 왔다 (...)

일본어 위키에서는 인유가 '유나이티드'라는 명칭을 유럽에서의 쓰임새와 달리 단순히 이념적으로 사용한 거라고 서술했지만, 사실은 유럽에서도 여러 구단이 통합된 게 아니더라도 '유나이티드'는 뜻이 좋아서 (...) 엄청나게 자주 쓰인다.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쓰면서 여러 구단이 통합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구단이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맨유는 철도 회사의 실업 팀에서 프로 팀으로 전환한 경우이며 통합된 구단은 없다.

2016년 3월 기준 구글 검색으로 '마계인천'을 검색하면 자동으로 인천 유나이티드가 소개된다.

인간극장에 나왔던 콩고 난민 욤비를 입단시키려 했으나 난민이라 입단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14 응원가

축구/응원가 참고.


15 2016 시즌 스쿼드

15.1 코칭스태프 명단

인천 유나이티드 2016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 이름국적생년월일
감독대행이기형Lee, Ki Hyung 1974년 9월 28일
수비코치김성일Kim, Sung Il 1973년 4월 13일
GK코치김이섭Kim, Yi Seob 1974년 4월 27일
트레이너이승재Lee, Seung Jae 1978년 9월 29일
트레이너이동원Lee, Dong Won 1985년 11월 25일
트레이너양승민Yang, Seung Min 1986년 7월 23일


15.2 선수 명단

인천 유나이티드 2017 시즌 선수 명단
번호이름영문 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
1정산Jeong, SanGK 1989년 2월 10일
3김용환Kim, Yong HwanDF 1993년 5월 25일
4한석종Han, Suk JongMF 1992년 7월 19일
5코너 채프먼Connor ChapmanDF 1994년 10월 31일
6최종환Choi, Jong HoanDF 1987년 8월 12일
7김도혁(주장)Kim, Do HyukMF 1992년 2월 8일
8윤상호Yun, Sang HoMF 1992년 6월 4일
9달리보르 베셀리노비치Dalibor VeselinovićFW 1987년 9월 21일
10웨슬리Wesley Smith Alves FeitosaFW 1992년 4월 21일
11박용지Park, Yong JiFW 1992년 10월 09일
13김진야Kim, Jin YaMF 1998년 6월 30일
14이학민Lee, Hak MinDF 1991년 3월 11일
15김대중Kim, Dae JungDF 1992년 10월 13일
16이윤표Lee, Yun PyoDF 1984년 9월 4일
17이상협Lee, Sang HyeopMF 1990년 1월 1일
18박종진Park, Jong JinMF 1987년 6월 24일
19송시우Song, Si WooMF 1993년 8월 28일
20고르단 부노자Gordan BunozaDF 1988년 2월 5일
21이진형Lee, Jin HyungGK 1988년 2월 22일
22김동석Kim, Dong SukMF 1987년 3월 26일
23이정빈Lee, Jung BinMF 1995년 1월 11일
24박세직Park, Se JikMF 1989년 5월 25일
25김석호Kim, Seok HoMF 1994년 11월 1일
26김동민Kim, Dong MinDF 1994년 8월 16일
27문선민(부주장)Moon, Seon MinMF 1992년 9월 16일
28이효균Lee, Hyo KyunFW 1988년 3월 12일
29김보섭Kim, Bo SeobFW 1998년 1월 10일
30김경민Kim, Kyeong MinDF 1990년 8월 15일
31이태희Lee, Tae HuiGK 1995년 4월 26일
32명성준Myeong, Sung JoonDF 1998년 3월 18일
33하창래Ha, Chang RaeDF 1994년 10월 16일
35김희수Kim, Hee SooMF 1995년 1월 20일
36김대경Kim, Dae GyeongFW 1991년 9월 2일


경찰 소속 선수들은 2016년 9월 3일, 상무 소속 선수들은 2016년 9월 14일 전역 예정이다.


16 구단 출신 유명 선수

  1. 2003년에 창단하여 2004년 리그부터 참가했다.
  2. 그런데 정작 첫 시즌이었던 2004년은 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치른 홈경기가 몇 번 없다. 2005년 문학경기장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된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 준비(문학경기장 주경기장 육상 트랙 설치 공사) 관계로 숭의공설운동장 주경기장(숭의야구장과 함께 철거됐으며 그 자리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세워졌다.)과 문학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홈경기를 옮겨 치른 적이 있다. 참고로 숭의운동장은 야간 조명시설이 없어서 낮에만 경기를 치러야 했고 야간 조명시설이 있던 보조경기장은 전광판은 물론이고 선수와 심판의 락커룸과 대기실이 없어 선수들과 심판이 큰 불편을 겪어야했다. 관중들도 의자가 없는 스탠드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경기를 관람했다. 안습...
  3. 이 다 그렇듯 시민구단의 구단주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맡는다.
  4. 2016년 2월 취임. 전임 김광석 대표이사와 마찬가지로 인천광역시청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이다. 축구 전문가가 아니다. 인천 출신의 박영복 대표이사는 인천 경실련 집행위원장, 인천시 정무부시장, 인천상의 상근 부회장, 경인일보 인천본사 사장 등을 지냈다. 유정복 시장의 정무특보도 맡고 있다. 인유의 대표는 창단 이후 줄곧 인천시 또는 인천시체육회, 인천시축구협회 등과 연관된 인물이 자주 맡곤 했다.
  5. 인천국제공항공사 운영 공항
  6. 쉽게 말해 구단 상징색과 홈 유니폼 디자인 기반으로만 치면 '한국판 인터밀란'. 팀의 유니폼은 물론 홈 경기장 좌석의 의자 배색도 파란색과 검은색이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를 소개하는 별칭에도 '파검(파랑+검정)의 OOO'라는 명칭을 쓸 정도로 팀의 상징으로 깊게 뿌리 박혀 있다. 물론 2012년에 허정무가 그걸 왜곡해서 욕을 바가지로 퍼먹었다.
  7. 당시 팀이 없었던 도시는 인천, 대구, 광주였다. 이 중 대구는 가장 먼저 대구 FC를 창단했으며, 광주는 차선책으로 상무 불사조를 유치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시민구단인 광주 FC로 다시 참가했다.
  8. 2013 시즌에 상위 스플릿 진출은 성공했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실패
  9. 이스탄불 더비에서 종종 언급되는 페네르바흐체의 6-0 대승리 당시 감독이기도 하였다. 당시 툰자이의 선취골을 보고도 태연히 서서 펩시콜라를 들이키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10. 2007시즌에는 장외룡 감독이 유학을 다녀오면서 한시즌 통째로 박이천 감독대행이 이끌었다.
  11. 4년 연속 사용
  12. '인천이 세상 축구의 중심이다'라는 의미
  13. '투게더'는 2006년에 개봉한 인천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s-3|비상’에 등장하는 현 인천 U-18팀 임중용 감독의 명대사로 유명하다. 라돈치치 의문의 1패
  14. [인천 유나이티드 12번 영구결번]
  15. [인천 UTD-대건고 축구부 창단 협약]
  16. [인천UTD 유소년팀 대건고 11일 창단식]
  17. [인천UTD 유소년 U-15팀 광성중 29일 창단]
  18. 20120715215411_20120715002004_0_0.jpg 2012년 7월 15일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킨 빠울로의 골 세레모니
  19. 다만 이것은 서울과 수원이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분위기로 보나 뭘로 보나 슈퍼매치가 더 격렬하고 관심을 끄는 매치이다. 게다가 경인더비도 처음에는 서포터들에게 언론이 만들어준 더비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천 관중동원력이 수원보다 훨씬 약한데도 지금의 위상을 갖춘데는 언론의 지원사격 덕이 컸다.
  20. 부천은 경기도임에도 지역번호를 031이 아닌 인천과 같은 032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이름.
  21. 구단 측의 얘기는 처음에는 봉사단체인줄 알고 초청했으나 종교단체인걸 알고 조용히 그냥 보고 가달라고 부탁했으나 결국 그 꼴이 났다고 한다
  22. 인천 시절 2군 MVP를 하긴 했지만 인천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대구 FC에서 잘 키웠다고 보는 게 맞겠다.
  23. 연도개최가 가끔 지연되거나 빨라지거나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