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만화

신세기 에반게리온/만화판에선 가장 기본적인 설정 외에 TV판과 면모가 상당히 다르다.

일단 출생 과정이 다르다. 아스카의 엄마 소류 쿄코 제플린가 여기선 불임이란 설정으로 변경, 불임 때문에 남편은 다른 여자와 애까지 낳고 이혼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코우코는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정자은행에서 최우수 정자를 구입해서 실험관 시술로 아스카를 낳게 된다. 즉 실험관 아기. 하지만 원작과 마찬가지로 실험으로 정신 이상을 일으킨 뒤 아스카를 자기 딸로 안 보고 인형을 자기 딸 삼다가 결국 자살하게 된다. 출생에서 아스카의 비극성을 좀 더 강조하는 방식이 되었다.

죽기 전, 정확히는 정신 이상을 일으키기 전이라 여겨지는 때 아스카에게 '넌 특별한 아이야. 그 여자의 딸에게 지면 안 돼'(그 여자는 남편이 바람 핀 상대)라고 말을 남겼으며 아스카는 이 말 때문에 우수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눈에 띄는 행동과 자기강화는 모두 과잉보상행동의 결과인 셈이다.

만화에선 아스카를 거둔 양모가 문제의 그 아버지와 바람 핀 새어머니인 것 같은 묘사가 있으나, 정확한 설명은 나오지 않아 현재의 양모가 그 여자인지는 불명. 일단 아스카는 양모에 대해서 "싫은 건 아니지만 좀 껄끄럽다" 라고 말했다.

일단 아스카와의 첫 만남은 2호기의 수송전함에서가 아닌 동네 오락실에서다. 덕분에 가기엘은 아스카가 혼자 처리. 귀가중이던 신지, 토우지, 켄스케와 우연히 동네 오락실에서 마주치는데 불량배들에게 시비가 붙어버리는걸 혼자 때려눕히며 본성질을 톡톡히 드러낸다.

미사토의 집에서 신지와 동거하게 된 과정도 TV시리즈와 다른데, 이스라펠전에서 네르프 본부 숙소에서 합숙훈련을 목적으로 함께 지내다가 신지가 귀가하자 아스카도 신지를 따라 동거를 요청했다고 한다. 아스카 본인은 겉으로 부정하지만 미사토의 말에 따르면 신지와 함께 지낸 시간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후로 발디엘전으로 그동안 잠재되었던 갈등들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상당히 잘 지낸 것으로 보인다.

성격 면에선 TV판에 비해 내숭이 강조되었다. TV판에서는 남들 앞에서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데 비해 만화에선 타인 앞에선 항상 완벽하고 착한 아이처럼 보이려고 연극을 하고 있지만, 신지나 토우지, 켄스케 등의 소수 앞에선 예외라는 설정. 신지 앞에선 그간 억눌러왔던 자신의 거칠고 예민한 본 성질을 여과없이 보여줘서 신지 측에선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러다 사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그들 앞에선 솔직한 모습으로 나가게 된다. 카지도 그녀의 내적 변화의 가능성을 눈치채고 이스라펠 전에서 적극적으로 같은 또래의 친구인 신지를 그녀와 이어주려는 노력을 펼쳤다.

또한 감정표현이 풍부해지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신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거나, 신지를 이끌어주려고 하는 장면이 많다. 성격도 너그러워져서 원작에선 신지와 싸움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하기도. 그래선지 후반에 가서도 신지와 아스카의 관계는 TV판과 달리 친밀하게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신지도 그녀에 대해 레이가 사도와 자폭했을 때만큼 자아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재기불능에 가깝다는 그녀의 파멸적인 상황에 대해 무척 슬퍼한 것 같다.

아야나미 레이의 말로는 아스카가 정신붕괴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신지가 거의 매일 병문안을 갔다고 한다.

자존심이 덫이 되어 스스로 무너져가는 과정은 애니와 같지만, 신지와 화해할 수 있는 여지가 좀 더 있었다. 신지가 매달리는 부분에선 자위 행위를 하던 구극장판과 달리 '평소처럼 화도 내고, 심한 말도 하고, 쓸데없는 참견도 해 봐... 이러고 있는 건 너답지 않아!'라며 매달리는 신지에게 발작적으로 달려들어 목을 조르는 것으로 바뀌어 신지의 죄의식이 사라졌다. 그 뒤 구 극장판과 같은 수순을 거쳐 부활하여 다소 모호했던 원작과 달리 해바리기 밭에서 엄마를 찾는 꿈을 통해서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연출로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이 부분은 원작 이상으로 그녀의 기쁨을 잘 표현한 훌륭한 연출로 평가받는다.) 이후 역시 에바 양산형들과 대치. 여기서는 에바 양산형을 전멸시켰던 구 극장판과 달리, 일 대 다수의 격렬한 전투 도중에 긴장감과 피로도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져 결국 3대 정도 남은 상태에서 뒤에서 역공을 당해 쓰러지고 전력이 바닥나자 팔을 물어뜯기고 여기저기 꿰뚫려 처참한 몰골이 된다. 까마귀밥처럼 잡아먹히는 구 극장판보다는 덜 참혹하지만, 고통 때문에 괴성을 지르며 일그러지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마지막 일격으로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에 신지와 초호기가 공중에서부터 등장해 양산형 에바의 팔을 무기를 든 채로 베어버리며 극적으로 등장해 구출되었다. 이 때 그간 기세등등하며 신지를 업신여기던 아스카가 처음으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격하는 모습은 후반부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다.[1] 신지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기량으로 남은 양산기들을 순식간에 다 물리치고 괜찮냐고 물어보자 "괜찮을 리 없잖아. 구할 거면 빨리 왔어야지, 바보 신지."라고 귀엽게 애교까지 부린다. 극중 아스카가 가장 기쁜 표정을 지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양산형들이 재기동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되고 애처롭게 신지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철저하게 보복당한다. 신지는 아스카를 구하려고 발악하지만, 숫적 열세에 속수무책으로 궁지에 몰려버린다.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신지의 분노와 슬픔이 극에 달하자 다시 싱크로율이 200퍼센트를 뛰어넘으며 폭주상태에 들어간다. 그 뒤 초호기가 롱기누스의 창에 의해 가동정지되자 보완계획을 발동하기 위해 양산형들이 원작과 같이 초호기를 끌고 상공으로 올라가면서 밀려오는 안티 AT필드 충격파로 내동댕이쳐진다. 원작과 달리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조종석에서 무력하게 신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다음에 벌어진 상황은 그야말로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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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L로 환원된다. 원작을 180도 돌려버린 완전한 다른 전개가 되었다. '하나가 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연 사람'으로 카지가 나온 바람에 지금까지 코믹스판 아스카를 지지하던 많은 독자들이 격분했다. 이미 코믹스에서 카지 앞에서 아스카가 서슴없이 옷 벗은 걸보니 예전부터 카지에게 마음에 있었던 모양이다.그래도 그렇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모두가 AT필드를 벗고 LCL로 하나되는 "보완"을 거부하고 개인으로서의 존재(신지와 함께하는)를 끝까지 고집한 아스카가, 카지의 환영을 보고 LCL화해 버렸다는 것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아스카의 정신적 성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명백한 원작파괴이며 캐붕이다.

다만 코믹스가 사다모토가 공언했듯 다른 주변인물보다도 주인공 신지에 대한 포커스를 좀 더 강화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스카만이 보완거부를 하는 구극장판의 전개보다 극의 통일성 측면에서 더 부합하며, 오히려 신지의 선택에 의해 전 인류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 아스카만이 보완을 거부하고 신지의 곁에 남는다는 구극장판의 설정은 캐릭터의 성향과는 별개로 특별 대우에 가깝다. 나기사 카오루와 마찬가지로 사다모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가장 강하게 반영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러나저러나 원작의 주제의식과는 영 다르다

부연하자면, 원작에서 아스카의 강한 자아는 제레와 겐도가 주장하고 레이로 상징되는 개인이 말살된 인류관에 대항하는 개인의 상징이었다. 아스카 자신은 사건의 진상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 자아의 기저에는 정신병적인 강박관념과 트라우마가 깔려 있기는 했지만 양산형 에반게리온들과의 싸움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양산형 에바를 통한 제레의 물리적 폭력에 사망한 이후에도 그 자아만은 남아 홀로 통합을 거부함으로서 결말에 신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이 만화판에서는 그 강한 자아를 유지하는 대신 인류와 통합하는 길을 걸음으로서 개인의 상징이라는 원작에서의 상징성을 상실한 것.[2]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캐릭터가 붕괴되고 메인 플롯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조연으로 전락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원작에서도 틈만 나면 펑펑 터져나갔던 아스카의 멘탈을 생각해 볼 때 이 쪽이 더 현실적인 묘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원작에서의 아스카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결말부에서 신지가 보완을 거부하고 LCL이 형체로 환원된 세계에서 신지와 처음으로 만나는 히로인의 호사를 누리기도 하였다. LCL의 바다에 단 둘이 남는 구극장판과 달리 약간의 기시감을 느끼고 각자의 길로 가는 식으로 다소 가볍게 연출되었지만, 재구성된 세계에서 만난 이가 미사토도 레이도 아닌 아스카라는 것은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3] 양산기와의 전투에서 완전히 구해내지 못한 아스카를 다른 세상에서는 완전히 구해내는 식으로 리리스가 그의 소원을 들어준 것일지도... 결말까지의 과정을 놓고보면 신지에게 있어 미사토나 레이는 연인이라기보다는 보호자 혹은 죽은 어머니와 못 다한 미련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아스카야말로 작중 신지가 자신의 의지로 유일하게 구해낸 이로서 가장 그에게 연인에 가깝지 않았냐는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역시 구작에서의 최후의 히로인은 애니판이든 코믹스판이든 아스카..카오루 아니였어?[4] 그리고 코믹스 완결 이후 사다모토 본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최종화에 등장하는 아스카는 본편의 아스카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게 될 매력적인 여성의 상징적 역할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물론 아스카빠들은 이딴 값싼 동정 필요없다며 여전히 사다모토를 저주하고 있다[5]
  1. 울면서 "이제와서 혼자 멋있는 척하느냐?"라고 화를 내지만, 분명히 감동에 찬 모습이었다.
  2. 묘하게도 만화판에서 개인의 상징이란 역할은 이카리 겐도에게 돌아갔다.
  3. 게다가 손을 잡는 것은 타인과의 접촉을 뜻해왔지만 만화에선 연인적인 의미도 있다.
  4. 신극장판에서 아스카의 비중을 높이자고 건의한 이도 사다모토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뒤로 갈수록 아스카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반영된 듯 싶다.애정표현 방식이 그따위야?
  5.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의 아스카는 극의 끝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연'이었지만, 만화판 결말의 아스카는 사다모토의 해설에 따르면 결국 새로운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소도구'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른 소도구들도 있는데, 켄스케와 미사토의 목걸이가 그것.(...) 좋게 보면 새로운 세계의 주연이지만, 그럼 뭐 해 완결인 걸.....이래서야 취소선의 '값싼 동정'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