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구분 | |||||||||||||||||||||||||||||||||||||||||||||||||||||||||||||||||||||||||||||||||||||||||||||||||||
선사 | → | 고대 | → | 중세 | → | 근세 | → | 근대 | → | 현대 | → | 당대 | → | 근미래 | → | 미래 |
목차
1 개요
인간 혹은 자연환경이 지나온 시기를 그 중에서 특징적인 부분을 추려내서 구분하는 방법이다. 역사가 매우 길 경우, 그 수많은 역사를 연대별로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동일한 성질이나 특징을 보이는 것들을 추려내서 크게 몇등분으로 나누는 것인데, 공통점을 찾아내서 분류하는 것은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많고 실제로도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논란이나 논쟁이 꽤 첨예하게 이루어지는 소재이다.
2 시대구분의 종류
2.1 유럽
2.1.1 헤시오도스의 시대구분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로 구분하였다. 이 구분법은 다분히 신화적인 해석이 들어간 구분법이다.
2.1.2 르네상스 시기의 시대구분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서 고대와 암흑시대, 암흑시대와 대비되는 새로운 시대로 구분하였다. 르네상스는 그야말 대로 문예부흥의 시대로 고대 문화를 다시 부활하는 시대로서 이전시대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새로운 시대임을 스스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때문에 르네상스 이전의 시대를 일괄적으로 좋지 못한 암흑시대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1.3 삼시대 구분법
삼시기법이라고도 하는 방법으로 덴마크의 고고학자 C.J.톰센이 고안했다. 석기, 청동기, 철기의 구분으로 나눈다.
2.1.4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사적유물론)
마르크스는 시대를 구분하면서 유물론을 도입하였다. 헤겔의 변증법 철학을 받아들였으나 역사의 원동력을 헤겔식의 세계정신에 의한 관념사관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어려운 용어로 설명했지만, 사실 기본이 되는 원리는 생활기반이나 경제적인 구조가 어떻게 변하였는지에 따라서 시대를 구분하는 것으로 크게 원시공산제, 고대노예제, 중세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구분하였다.
이경우 노동력과 근로계약의 형태에 따라 원시공산제는 모든 생산품을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공유하는 것을 일컫고,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동력 일방의 자유가 박탈되어 속박된 상태로 착취당하는 상태, 봉건제 사회는 노예가 농노로 바뀌어서 영주의 장원에서 농노가 농지를 경작하느 상태, 자본주의는 자본주와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통하여서 임금을 주고 근로를 취하는 상태, 공산주의는 이를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모든 재산을 공유하는 미래의 상태를 일컫는다.
이 시대구분 이론은 소련의 스탈린에 주도하에 세계사적 보편적인 발전법칙이라고 하여 서구사회를 포함하여 다른 지역과 국가에도 일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였고, 이때문에 한국과 일본등에서도 마르크스적인 시대구분론에 착안하여 노동력이나 경제관계등을 고려하여 시대를 구분하는 논의가 꽤 오랫동안 활발히 일어났다.
2.1.5 시대구분에 대한 논의
시대구분에 대하여 여러가지 논의가 있어왔으며 서양식의 시대구분의 한계점이 지적되면서 다방면에서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서양식의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시대구분법이 많이 쓰이고 있으나 이는 유럽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적절할 뿐 다른 지역에서는 적용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또한 서양 사학계 내에서도 기존의 시대구분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2.1.5.1 자크 르 고프의 장기중세
중세는 암흑기라는 인식에 대한 의문에서 나온 이론으로, 중세의 기본적인 구조들은 19세기까지 유럽 사회에서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2.2 동아시아
2.2.1 중국
중국사의 시대구분은 주로 왕조를 중심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전통적인 방법이었고, 고대와 중세, 근대를 나누는 방법은 주로 일본인 중국사 연구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삼분을 하는 방법은 대부분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에 착안하여 경제적인 것과 노동관계등을 입각하여 가늠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시대구분의 기준은 학자나 학파마다 달라 첨예하게 대립하며 논쟁이 일어났다. 중국사를 체계적인 근대학문의 방법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주도한 것은 일본이었으므로 실제로 중국사의 시대구분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일본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