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아나스타샤 베르틴스카야 (Anastasiya Vertinskaya) |
본명 | 아나스타샤 알렉산드로브나 베르틴스카야 Anastasiya Alexandrovna Vertinskaya Анастас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Верти́нская |
국적 | 소련 |
출생 | 1944년 12월 19일, 모스크바 |
러시아의 전 영화배우. 소련의 비비안 리
1 출생과 어린 시절
아나스타샤 베르틴스카야는 1944년 12월 19일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알렉산더 베르틴스키는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였으며, 어머니 리디야 베르틴스카야는 조지아 출신의 화가이자 배우였다. 어렸을 때 그녀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대신 아버지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두 가지 언어를 쓰는 가정에서 (러시아어, 조지아어) 자랐기 때문인지 그녀는 원래 대학에 진학해 언어학을 공부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지극히 평범해 보였던 베르틴스카야의 인생은 16살을 기점으로 해서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2 영화배우로 데뷔하다
당시 학교에 재학 중이던 베르틴스카야는 때마침 베테랑 영화 감독이었던 알렉산더 푸쉬코의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녀의 미모에 반한(...) 감독의 설득으로 영화 '진홍색 돛 (Scarlet Sails)' 의 여자 주인공 역을 맡게 된다. 이전까지는 연기 경험도, 연기를 배운 적도 없었던 베르틴스카야였지만 그녀는 출연을 승낙한다.
'진홍색 돛' 에서의 아나스타샤 베르틴스카야 |
'진홍색 돛' 은 알렉산더 그린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이 영화에서 베르틴스카야는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어부의 딸 아솔 (Assol) 을 연기했다. 아솔은 어렸을 때 우연히 만난 마법사가 그녀에게 해준 말을 떠올리며[1] 본 적도 없는 왕자님을 기다리는데, 나중에 진짜로 왕자가 나타났을 때 사랑에 빠지는 연기가 일품이다.
어찌 됐건 처음 출연한 장편영화였지만 꽤나 괜찮은 연기력을 보여줬고, 또 그녀의 미모에 힘입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 이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영화배우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고, 바로 다음 영화에 출연하는데 그것이 바로 60년대 소련의 컬트 SF 영화인 '앰피비언 맨' 이다. 위의 사진이 바로 '앰피비안 맨' 에서 그녀의 모습.
'앰피비안 맨' 촬영 당시 아나스타샤 베르틴스카야 |
앰피비안 맨은 이름답게 양서류 인간이라 육지에는 오래 있을 수 없고 중간중간 바다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베르틴스카야는 역시나 앰피비안 맨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맡는다. 참고로 이 영화는 수중 잠수 씬 등 여러모로 힘든 촬영이 많았는데, 베르틴스카야는 17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역을 쓰지 않고 모든 장면을 자신이 직접 연기하는 근성을 보인다. 이 영화 역시 대성공을 거두고, 베르틴스카야는 소련 영화계에서 톱스타로 거듭난다.[2]
이후 배우 생활에 매력을 느낀 베르틴스카야는 연기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언니인 마리아나의 도움으로 슈우킨 연기학교에 등록한다. 여기서 그녀는 전 남편 니키타 미할코프[3] 를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진 베르틴스카야는 1966년 22세의 나이로 결혼하나 3년 후에 이혼하고 만다. 이 시기 그녀는 세르게이 본다추크의 대작 전쟁과 평화에도 출연한다.
3 연극 배우 시절과 고충
1967년 베르틴스카야는 바흐탄고프 극단에 들어가 한 시즌을 보내고, 1968년에는 소브레메닉 극단으로 옮겨 그곳에서 1980년까지 활동한다. 이 시기 그녀는 연극과 영화 촬영을 병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러나 자신이 꿈에도 그리던 배우가 되었음에도 베르틴스카야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는데, 많은 관객들이 오로지 그녀의 얼굴만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고, 공연을 할 때도 그녀의 연기 대신 미모에 정신이 팔려 헬렐레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은 베르틴스카야 외 다른 배우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이에 몇몇 배우들은 공개적으로 불평하기도 했다.
또한, 베르틴스카야는 톱 스타인 만큼 소련 정부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정부는 대중들에게 자주 노출되는 그녀가 "전형적인" 소련 여자의 역할만 연기하기를 바랐다. 이 전형적인 소련 여자의 모습이 무엇인가 하니, 바로 붉으스레한 얼굴빛을 띠고 활달하게 돌아다니는 혁명 여동지의 모습(...) 심지어 감독들조차도 그녀에게 어떠한 역할을 주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덕분에 이전에는 매년마다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던 그녀였지만 70년대 들어서 그녀의 출연작 사이의 공백기는 2년, 심하면 4년까지 늘어난다.
4 은퇴, 그리고 현재 활동
이렇게 베르틴스카야가 그녀를 둘러싼 상황에 점차 불만을 품고 있던 중, 1989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기를 강의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오자 그녀는 두말 할 것 없이 영국으로 떠난다. 그 이후 근 10년 동안 베르틴스카야는 영국, 프랑스, 스위스에서 연기를 가르치며 인생을 보낸다. 2000년에 러시아로 귀국한 이후, 그녀는 2002년 딱 한 편의 연극에 출연하고 이후로는 신작 출연 소식이 없다. 2010년에는 지난 5년간 써 왔던 시집을 낸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