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No.66 | |
아라카키 나기사 (新垣 渚) | |
생년월일 | 1980년 5월 9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오키나와 현 나하 시 |
체격 | 190cm 83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2년 자유획득제도 |
소속팀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3~201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15~) |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선수. 오랜 기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선발 투수로 활약하다 현재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소속으로 뛰고 있다.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파워피처로 활약했으나, 다양한 폭투 기록의 보유자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고질적인 제구불안을 가진 선수.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오키나와 수산 고교 시절부터 150km/h가 넘는 강속구로 주목을 받았던 선수로, 1998년 드래프트 당시 요코하마 고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더불어 최대어로 손꼽혔다. 그리고 드래프트 당일, 아라카키를 놓고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경합했는데 여기서 오릭스가 교섭권을 얻게 된다. 사실 아라카키는 이전부터 호크스가 아니라면 대학에 가겠다고 공언해놓은 상태였지만, 아라카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오릭스가 지명을 강행한 것. 이후 오릭스 구단은 스카우트 부장 미와타 카츠토시[1]에게 아라카키와의 협상을 맡기며 "너님이 책임지고 데려오셈"이라고 압박을 줬는데, 아라카키는 그의 집을 방문한 미와타를 만나보지도 않고 돌려보내는 등 오릭스에 입단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미와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결국 구단의 무리한 강행지명이 비극을 부른 셈인데, 이 일로 오릭스 구단은 대차게 욕을 먹었고 본의 아니게 한 사람의 죽음과 엮이게 된 아라카키 역시 심리적으로 큰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2]
이후 큐슈 공립 대학에 진학한 아라카키는 대학에서도 정상급 투수로 이름을 날렸고, 2002년 드래프트에서 역지명 제도를 이용해 원하던 호크스 입단에 성공했다.
2.2 다이에/소프트뱅크 시절
입단 첫 해인 2003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강력한 구위로 주목을 받았고, 2년차인 2004년에는 11승을 거둠과 동시에 177탈삼진을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탈삼진왕에 올랐다. 이후 2006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호크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이 때부터 제구 불안이 서서히 그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2007년에는 NPB 역대 최다인 25폭투를 기록했으며, 2008년 8월 20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전에서는 1이닝 3폭투[3]를 포함해 1경기 5폭투[4]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때문에 일본 야구 팬들은 폭투 자체를 ARAKAKI라 부르기에 이른다(...).[5]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고, 2010년과 2011년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아예 1군 마운드에 서질 못했다. 2012년에는 오랜만에 1군에 돌아와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2014년 7월 20일, 2:2 트레이드를 통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한다.
2.3 야쿠르트 시절
이적 후 두 번째 선발 등판 경기였던 2014년 8월 16일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또다시 4폭투를 기록, 양대리그 모두에서 1경기 4폭투를 기록해본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결국 3경기 등판 2패 평균자책점 7.88이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5년에는 모처럼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지만 불안한 투구로 패만 적립했고, 15경기 3승 10패 평균자책점 4.64의 좋지 않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3 기타
- 친할아버지가 미국 출신이다.
- 2009년 12월 스기우치 토시야의 처제와 결혼했다.
- ↑ 스즈키 이치로를 발굴한 스카우트로 유명했다.
- ↑ 실제로 야구를 그만두는 것도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와타의 아내가 아라카키에게 '당신 책임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열심해 해달라'는 격려를 해주면서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 ↑ NPB 최다기록 타이.
- ↑ NPB 1경기 최다폭투 신기록.
- ↑ 참고로 KBO 리그에서는 2011년 시범경기에서 고효준이 1이닝 3폭투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시범경기라 비공식 기록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2015년 kt 위즈의 심재민이 1이닝 4폭투를 기록, 한 이닝 최다폭투 아시아신기록(...)을 작성하였다.